대한항공, 시작부터 삐걱댄다?

'좌석 90% 유지' 시장 혼란 속 대한항공의 안일함

by 오후한시오분

인천–괌 노선에서 벌어지고 있는 기현상이 항공업계를 뒤흔들고 있다. 2019년 대비 여객수는 절반으로 줄었는데 대한항공과 계열 저비용항공사(LCC)들은 오히려 운항편을 늘리고 있다. 반면 제주항공과 티웨이항공은 수익성 악화로 이 노선에서 손을 떼고 있다.


이 모든 혼란의 중심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2022년 대한항공–아시아나 기업결합을 승인하며 내린 '2019년 대비 좌석 90% 이상 유지' 조건이 있다. 공정위는 구시대적 일괄 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이 조건을 알고도 제대로 준비하지 많은 대한항공의 안일한 대응에 있다.


1. 예견된 혼란, 준비 없는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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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고객들에게 발송된 동계 비행편이 취소됐다는 제주항공의 알림 메세지 /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위 알림 메시지는 최근 제주항공의 부산~다낭, 인천~괌 노선을 예매한 승객들이 받은 것이다. 공통점은 동계 일정인 올해 10월 26일부터 내년 3월 28일 사이라는 점이다. 대한항공과 계열 LCC들이 동일 노선을 증편하자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해 비행 계획을 취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한항공은 왜 다른 회사들이 비행 계획을 취소할 정도로 증편했을까. 답은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 조건에 있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기업결합에 대한 공정위의 조건부 승인은 2022년 2월에 내려졌다. 40여 개 노선에 대해 2019년 공급 좌석의 90% 이상을 유지하라는 조건은 당시부터 명확했다. 처음 나온 의결서에서는 최초 100% 조건이 담겨 있었지만 공정위는 대한항공과 시장상황을 고려해 서로 합의한 결과 2024년 12월 최종 의결서에서는 이 조건은 100%에서 90%로 낮췄다. 기업결합도 대한항공이 신청한 것이었고, 이런 조건을 지키겠다고 동의한 것도 대한항공이었다.

스크린샷 2025-08-31 133402.png ▲ 공급 좌석 수 90%를 유지하는 기업결합 조건 / 공정거래위원회 보도자료 캡처

대한항공에게는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었다. 그러나 현실은 '울며 겨자 먹기'식 대응의 연속이다. 괌 노선의 경우 올해 1~7월 여객수가 37만 8000명으로, 2019년 같은 기간 66만 9000명 대비 43.5% 급감했다. 그럼에도 대한항공은 연초부터 수익이 나는 다른 노선에 비행기를 투입했고, 지금에 와서 보니 좌석 90% 조건을 맞추기 위해 뒤늦게 괌 노선을 주 14회에서 21회로, 진에어는 주 7회에서 14회로 운항을 늘렸다. 에어서울까지 3년 만에 이 노선 운항을 재개했다.


2. 규제의 경직성 때문인가 vs 기업의 무대책 때문인가


공정위 규제가 경직적이라는 지적은 일리가 없지 않다. 2019년은 코로나 팬데믹 이전 시기로, 현재 시장 상황과는 거리가 멀다. 달러 강세와 비싼 현지 물가로 괌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떨어진 상황에서 일괄적으로 같은 기준을 적용하는 것은 시장 왜곡을 부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정위도 나름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뒀다. 시장 변동을 고려해 대한항공 측에서 요청이 있을 경우 3년마다 공급석을 재검토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 8개월 지난 시점에서부터 규제 탓을 하고 있다.

스크린샷 2025-08-31 134138.png ▲ 대한항공 기내 모습 / 홈페이지 캡처

2022년 전원회의에서 대한항공 측은 이미 여객 공급유지 조치의 어려움을 감지했다. 당시 피심인 대리인(대한항공 측)은 "조치 대상 26개 노선만 한정해도 필요한 좌석의 약 12배에 해당하는 좌석을 공급해야 한다"라며 "사업을 유지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대항항공의 말대로 할 경우 소비자의 편의는 훼손될 수밖에 없다. 수익이 좋은 곳에만 비행편을 집중시켜 다른 노선은 좌석이 줄거나 있다 해도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한항공은 이르면 1년 전부터 항공권을 판매한다. 그러면서 좌석 수는 1년의 절반을 넘겨 이제야 부랴부랴 기준을 맞추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규제 탓만 하기엔 대한항공의 준비 부족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측면이 적지 않다. 우선 공급 좌석 수 기준은 연간으로 통계를 잡는다. 이미 지난해에 공급좌석 수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정해졌기 때문에 계획을 세울 준비와 시간적 여유는 충분했다. 또한 공급 좌석 수는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 에어서울, 진에어, 에어부산을 합산한 기준이다. 항공기가 적은 LCC만 따로 좌석 수는 잡는 게 아니기 때문에 계열사가 좌석 수를 분담한다면 기준을 충족시키기 어려운 것도 아니다. 전원회의 당시 공정위 측도 "경쟁 제한성이 인정되는 26개 국제노선과 14개 국내노선에 대해 운수권 및 슬롯 반납, 운임 인상 제한, 공급 좌석 축소 금지 등 다양한 시정조치를 통해 시장 독점을 방지하고 경쟁 촉진을 도모하는 적절한 조치를 부과했다"라고 말했다.


3. LCC 희생양, 소비자만 피해


결과적으로 시장에서는 기형적 경쟁 구조가 나타났다. 대한항공과 계열사들은 의무적으로 공급을 늘리고 독립 LCC들은 수익성 악화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상황이다. 제주항공은 내년 3월 28일까지, 티웨이항공은 올해 10~11월 인천–괌 노선 운항을 중단한다. 이는 공정위가 애초 의도했던 소비자 편익 증진과는 정반대 결과다. 경쟁사가 줄어들면서 소비자 선택권은 오히려 축소됐고 특가 항공권을 갑작스럽게 취소하는 등 소비자 피해도 발생했다.

스크린샷 2025-08-31 134005.png ▲ 대한항공의 항공기 / 홈페이지 캡처

우리나라 항공업계 최고 지위에 있는 대한항공의 대응은 아쉬움이 크다. 규제 당국과의 사전 협의, 계열 LCC와의 역할 조정, 시장 수요 변화에 맞는 전략적 대응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았다. 특히 대한항공은 2017년부터 델타항공과 조인트벤처를 운영하며 글로벌 협력 경험을 쌓았고 2019년에는 마일리지 제도 개편을 추진할 정도로 장기 전략을 수립할 능력이 있는 기업이다. 그런 기업이 기업결합 조건에 대한 준비 기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러면서 공정위의 규제가 경직적이라고 언론 플레이 하는 모습을 보면 적반하장이라는 생각이 든다.


4. 시장 혼란의 진짜 책임자


물론 공정위도 현실을 반영해 규제를 보완해야 한다. 2019년을 기준으로 한 일률적 규제는 급변하는 시장 상황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소비자의 편익이다. 규제만 풀어준다면 시장은 독점기업에 장악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보수적 접근을 고수하는 이유일 수도 있다. 결국 더 큰 책임은 이 모든 상황을 예견하고도 대비하지 않은 대한항공에 있다.

스크린샷 2025-08-31 134223.png ▲ 한진그룹 / 대한항공 캡처

항공업계 관계자는 "독과점 방지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현실성 없는 규제로 시장 경쟁이 위축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정작 그 현실성을 만들어가야 할 주체는 규제 당국이 아니라 시장의 최대 사업자인 대한항공이었다. 결국 괌 노선 과잉공급 사태는 '안일한 대한항공의 대응'이 만든 결과물이다. 공정위의 규제 개선이 검토될 필요성도 있지만 그보다 더 시급한 것은 우리나라 항공업계를 이끌어갈 기업의 책임감 있는 자세다. 규제 탓만 할 게 아니라 변화하는 시장에 맞는 전략과 협의를 통해 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대한항공의 책임 있는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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