렌터카 먹튀는 안 된다

공정위, 사모펀드 '엑시트 공식' 깼다

by 오후한시오분

공정거래위원회의 이번 'SK렌터카-롯데렌탈' 기업결합 불허 결정은 대한민국 M&A 역사에 두 가지 굵직한 질문을 남겼다. 하나는 동종업계를 인수하는 사모펀드(PEF)의 볼트온 전략이 어디까지 허용될 것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매각 길이 막힌 롯데그룹은 이 유동성 파고를 어떻게 넘을 것인가이다. 단순한 불허 통보를 넘어 이번 결정이 갖는 함의를 짚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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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시장 1위 탄생 막은 것 넘어 '단기 차익' 노린 투기자본에 경고장


과거 공정위는 독과점 우려가 있을 때 기업결합 자체를 막기보단 가격 인상 금지나 일부 사업부 매각 같은 조건을 다는 행태적 조치나 일부 자산 매각 등 구조적 조치를 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지난 2016년 SK텔레콤-CJ헬로비전 인수 불허나 2024년 메가스터디-에스티유니타스 불허 사례 는 사업을 영속적으로 영위하려는 기업 간의 결합이었다. 이 경우 시장 지배력이 영구적으로 고착화되는 것을 막는 것이 핵심이다.


교묘했던 '반쪽' 인수 시도


반면 이번 건은 사모펀드 어피니티가 주체다. 공정위는 보도자료를 통해 "일정 기간 후 매각(buyout)을 목표로 하는 사모펀드의 특성상 행태적 조치의 영속성을 담보하기 곤란하다"고 명시했다. 쉽게 말해 3년간 가격 올리지 마라고 조건을 걸어봤자 사모펀드는 그 3년만 버틴 뒤 가격을 대폭 올려 기업 가치를 뻥튀기한 후 팔고 떠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공정위는 사모펀드의 이러한 '치고 빠지기(Hit and Run)' 전략이 통하지 않도록 아예 판을 엎어버리는 구조적 조치, 즉 불허를 택했다. 이는 향후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동종 업계 M&A에 강력한 가이드라인이 될 전망이다.


어피니티는 이미 SK렌터카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다. 여기에 롯데렌탈의 경영권(63.5%)까지 확보하려 했다. 내륙 시장 점유율 합계 29.3%로 수치상으로는 낮아 보이지만 3위 사업자(쏘카, 3.7%)와 8배 가까운 격차를 만드는 압도적 1강 체제 구축 시도였다. 공정위는 이를 단순한 점유율 합산이 아닌 경쟁 자체를 소멸시키는 행위로 간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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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8000억 실탄 날린 롯데는 난감


롯데그룹은 당초 롯데렌탈 지분을 팔아 약 1조 8,000억 원 규모의 현금을 확보하려던 계획이었다. 이 빅딜이 무산되면서 롯데는 심각한 유동성 딜레마에 빠졌다. 가장 깔끔한 방법은 어피니티가 아닌 다른 곳에 파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성이 떨어진다. 국내 대기업이나 다른 사모펀드가 업계 1위인 롯데렌탈을 인수하려 해도 이미 렌터카 사업을 하고 있다면 이번과 똑같은 독과점 이슈에 걸린다. 또 2조 원에 육박하는 덩치를 받아줄 매수자를 찾기 힘들다. 렌터카 사업이 없는 대기업이나 외국계 자본을 찾아야 하는데 경기 침체기에 이 정도 메가 딜을 성사시키기는 쉽지 않다.


경영권(63.5%)을 통째로 넘기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지분을 쪼개서 재무적 투자자들에게 파는 방식도 있다. 하지만 경영권 프리미엄을 포기해야 하므로 제값을 받기 어렵다. 1조 8,000억 원이라는 목표 금액을 채우기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결국 롯데렌탈을 계속 안고 가면서 롯데렌탈이 벌어들이는 수익을 배당으로 최대한 빼내 호텔롯데 등 그룹 계열사를 지원하는 방식이 유력하다. 문제는 롯데렌탈이 차량 구매 등 지속적인 투자가 필요한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이다. 무리한 배당은 롯데렌탈의 경쟁력을 갉아먹을 수 있고 이는 결국 기업 가치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부를 수도 있다.


렌터카 매각이 장기 표류할 경우 롯데는 결국 아껴두었던 다른 계열사 지분이나 부동산을 급매물로 내놓아야 할 처지에 몰릴 수 있다. 시장은 롯데가 어떤 출혈을 감수할지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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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허' 탐욕에의 제동


공정위는 이번 결정으로 "사모펀드의 엑시트 전략을 위해 시장 경쟁이 희생될 수 없다"는 원칙을 천명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12%의 요금 인상 폭탄을 피했지만 롯데그룹 입장에선 그룹 전체의 자금줄이 꼬여버린 최악의 결정인 것이다. 자본의 논리로 시장을 재편하려던 시도와 이를 원천 봉쇄한 규제 당국, 그 사이에서 낙동강 오리알이 된 롯데의 위기 탈출기는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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