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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6. 2022년 02월 22일

낭만 없는 삶은 참을 수 없고, 그날 낭만은 가득했다.

"우리 둘 밖에 없으면 그냥 둘이 카페나 갔다가 저녁이나 먹지 뭐."


친구 J에게 말했다. 친구 J도 과연 다른 친구들이 나올까 궁금해했다. 나도 확신은 없었다. 그래도 선생님은 오시지 않을까? 오셔야 하지 않을까? 하고 대답했다. 20년 전에 했던 약속을 지키는 친구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낭만을 품은 친구들이 몇이나 될까. 친구들은 모두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궁금하기도 하고,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되고, 여러 가지 마음이 교차했다. 회사에는 반차를 냈다. 회사에 이 약속에 대해 풀어놓자, 직장 동료들은 신기하게 생각했다.


"형, 진짜 낭만이 있네요."

"근데, 저만 낭만이면 어떡하죠...?"

"에이. 그래도 누군가는 오겠죠."

"저만 낭만이었으면, 인스타 스토리에 올릴게요."


함께 가기로 했던 친구 J에게 약속 전 날 전화를 했다. J는 화들짝 놀라더니 못 간다고 했다. 어이가 없었다.


"네가 먼저 나한테 그날 가는 거 물어보지 않았냐?"

"그랬는데 내가 까먹었네."


J는 멋쩍게 웃었다. J는 아내를 만나기 위해 부산으로 가야 했다. 결국 아무도 안 오면 혼자 카페 가서 글이나 써보자고 생각했다. 그렇게 20년 동안 잊지 않고 기다렸던, 2022년 2월 22일 화요일이 되었다. 점심식사도 하지 않고, 인천으로 출발했다. 차가 조금 밀려서 내 생각보다는 조금 늦게 도착했다. 서둘러 집에 주차를 하고 학교로 걸어갔다. 선생님이 오실 수 있으니 꽃이라도 사야 할까? 근데 선생님이 안 오시면 어떡하지? 일단 그냥 가자. 학교에 도착하자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방학 때문인지 학교는 조용했고, 나의 모교의 전경이 참 정겨웠다. 우리의 만남 장소였던, 문남초등학교 6학년 1반 교실이었던 5층 오른쪽 3번째 교실로 향했다. 중앙현관을 통해 학교로 일단 들어갔는데, 혹시나 수의 아저씨께서 나를 붙잡으시면 뭐라고 대답해야 하나 걱정을 하며 혼자 상상을 했지만 나를 붙잡는 사람은 없었다.


'이렇게 학교에 아무나 들어가도 될까?'


괜한 걱정을 한 번 하고는 5층으로 올라갔다. 중앙계단을 오르자 초등학교 때 기억이 떠올랐다. 내가 초등학생일 때, 학생들은 중앙계단을 이용할 수 없었다. 선생님들 혹은 생활이라는 이름의 일종의 선도부만 다닐 수 있었다. 이렇게 몰래 지나가다가 이름이 적히면 담임선생님께 그 이름이 전달되어 혼나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학교는.


이제는 14살이 되어 중학교 입학을 앞둔 초등학생들에게 20년은 너무 먼 시간이었다. 13년밖에 살지 않은 우리에게 우리가 살아온 날 보다도 많은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니.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선생님! 저희 10년 후에 만나면 안 되나요?"

"선생님은 너희들이 꿈을 이루고 나서 함께 만났으면 좋겠어. 그게 20년 후가 되어야 할 것 같거든."


우리들은 당장은 이해할 수 없었으나, 선생님의 말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졸업식날 아무도 울지 않을 것 같더니 한두 명의 여자애들이 울기 시작하더니 교실은 눈물바다가 되었다. 나도 괜히 울컥했다.


약속한 날이 점점 다가오자 나는 혹시나 친구들을 못 알아볼까 봐, 친구들 이름을 기억하지 못할까 봐 미리 졸업앨범도 보고, 우리 반 문집도 다시 읽어보았다. 나는 학교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기억 정 좋다. 선생님은 우리 반 학생들 모두에게 정말 많은 마음을 주셨다. 우리가 첫 6학년 담임이었다고 하셨다. 그만큼 우리에게 쏟는 정성이 컸고, 우리들은 선생님을 잘 따랐다. 문집도 참 좋았다. 수업시간에 하던 것들을 모아서 문집으로 작성한 것이 아직도 나에게는 좋은 추억이다. 그때도 나는 뭔가 남들이 다 하는 것을 그대로 하는 것은 하기 싫었던 것 같다. 특히 글을 쓸 때.


문집에는 2022년 2월 22일의 모습을 상상하는 글을 모아둔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평범한 상상을 했다. 대부분은 누가 누가 무엇이 되어 있을 것이고, 선생님을 만나면 부둥켜안고 울고 있을 것이고, 못 오는 친구들도 있을 것이고, 몇몇 친구들은 결혼을 했고, 몇몇 친구는 결혼을 하지 못했을 것이고 하는 것들이었다. 나는 소설을 썼다. 아마 그때부터 글쓰기를 운명적으로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소설 속 나는 농구선수가 되어 있었다. 시합을 마치고 20년 전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으로 향하던 중 자동차 사고를 당하게 되었고,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다시는 농구를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과 고통으로 육체와 정신을 동시에 괴롭힐 때, 잠에서 깬다. 눈을 떠보니 내가 알람을 듣고도 일어나지 않자 키우던 진돗개가 내 다리를 물어 깨우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다행이다 생각하며 준비를 마치고 문남초등학교를 향했다. 20220년 2월 22일을 상상하며 소설을 쓰고 있는 그날의 나를 떠올리니 괜히 입꼬리가 스윽 올라간다.


중앙계단을 올라 나는 5층에 도착했다. 우리 교실이었던 곳으로 향했다. 혹시나 먼저 와 있는 친구들이 있을까. 아니면 선생님이 먼저 와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까. 나는 혹시 늦을까 봐 일찍 왔다. 지각은 못 참으니까. 교실 앞을 서성이며 2시가 되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5층의 오른쪽 세 번째 교실을 찾아 올라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는 10분 정도 더 기다리기로 했다. 하지만 결과는 변하지 않았다. 나는 실망한 상태로 1층으로 내려왔다.


"아니, 그래도 선생님은 오셔야 되는 거 아니야?"


서운한 마음이 묻은 육성을 내뱉고는 학교 건물 앞에 있는 독서하는 여인 동상(이 여인 앞에서 이름표를 보이고 지나가면 이름이 적히는데, 전교생의 이름이 적히면 모두 죽는다는 엄청난 전설이 있었다. 그래서 독서하는 여인 동상을 지날 때는 이름표를 손으로 가리고 지나갔다. 산타할아버지도 믿지 않았으면서 이런 건 참 잘 믿었다.) 앞을 서성였다. 혹시라도. 정말 혹시라도. 늦게라도 오는 사람들이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서성였다. 학교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유심히 봤지만, 선생님이나 친구 같은 사람들은 없었다. 그러다 정문 쪽에 차가 두대가 주차되어 있었다. 앞에 있던 사람들은 서로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듯한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래 20년 만에 만났는데 저렇게 친할 수가 없지. 저 사람들도 내 친구들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혹시나 또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계속 서성였다. 그러다가 정문 쪽에 있는 사람들과 몇 번 눈이 마주쳤다. 서로 '혹시?' 하는 몸짓으로 어물쩡거리고 있었다. 그러다 그중 사람이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도 혹시 정말 친구들일까 싶어서 그 두 사람에게  다가갔다. 한 친구를 보자 나는 한 번에 알아봤다.


"B야!"

"와 반갑다. 근데 미안하다. 이름이 뭐였지?"

"괜찮아. 괜찮아. 나 용준이. 장용준."

"아 용준이! 기억난다!"


나에게 인사를 걸었던 친구는 같은 고등학교도 다녔었지만, 기억은 깔끔하게 사라져 있었다. 다른 한 친구는 여자였다.


"용준아. 나 C. 나 기억나?"

"아! 기억나지! 유천아파트 살지 않았나?"

"나 태산아파트 살았는데."

"하하."


이상하다. 유천아파트 사는 줄 알았는데. 여하튼 내가 그 친구를 기억하는 건 확실했다. 두 친구와 함께 다른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두 명의 친구가 더 있었는데, 또 다른 B와 N이었다. 서로가 자신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나는 모든 친구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P가 왔다. P는 부산으로 아내를 만나기 위해 떠난 친구 J의 결혼식에서 잠깐 마주쳤었지만, 인사를 나누진 못했었다. 우리 여섯 명은 서로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기도 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겨울바람이 매서웠지만, 혹시나 다른 친구들이 올까 3시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알고 보니 5명의 친구들은 20살 때부터 계속해서 알고 지내며 친하게 지내고 있었다. 나는 그 친구들의 단톡방에 초대되었고, 저녁에는 친구 C의 집에 초대되었다. C와 N은 엄마가 되어 있었다. C의 집에 모여 저녁과 간단히 맥주를 마셨다.


"와, 진짜 선생님이 안 오실 줄을 몰랐다."

"선생님도 우리를 잊으신 거지. 이런 약속을 한 두 번 하셨겠어?"


각자 선생님에 대한 속상한 마음을 털어놓았다. 나도 참 선생님께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 어린 나이의 그 순수했던 우리에게 그런 낭만적인 약속을 하시고서는, 눈물도 흘리셨으면서. 그 20년 후의 약속이 나에겐, 참 소중한 약속이었는데. 선생님은 아니셨던 걸까 하는 생각에 참 속상했다. 그래도 선생님을 너무 미워하고 싶지 않아, 선생님께 일어나지 않았을 일들을 상상했다. 몸이 아프셨을까. 갑자기 어쩔 수 없는 급한 일이 생기셨을까. 선생님에 대한 마지막 소식은 태안으로 가셨다는 이야기였으므로, 태안에서 인천까지 오시는 길이 너무 막혀서 못 오신 걸까 하는 생각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결국 결론이 '잊었다.' 도달했고, 마음은 아팠다.


"근데, 딱 한 명 왔네."


내 이름을 기억하지 못했던 B가 말을 꺼냈다. 그러자 N이 대답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용준이 한 명 왔지만, 용준이 입장에서는 다섯 명이 온 거야!"


생각해보니, 나는 혼자일 줄 알았는데 5명이나 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친구들의 입장에선 나 한 명이었던 것이다. 친구들의 실망이 더욱 컸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그렇게 5명의 초등학교 동창을 20년이란 시간이 흘러 다시 친구가 되었다. 친구들과 저녁시간을 가진 후에 집에 돌아오면서 생각했다.


'나만 낭만은 아니어서 다행이다.'


2022년 02월 22일. 설렘과 반가움 그리고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겨울밤을 참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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