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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4. 팝콘과 콜라

팝콘과 콜라 없이 영화를 보라고? 정말 못 참아!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가기도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팝콘과 콜라를 먹기 위해 영화관을 가는 경우가 훨씬 많다. 뭐가 다르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엄연히 다르다. 주목적이 '보기 위해'와 '먹기 위해'로 나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냥 팝콘과 콜라를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매해서 먹으면 될 일이지 왜 영화관을 가서 먹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먹는 팝콘과 콜라는 집에서 태블릿으로 영화를 보면서 먹는 마트에서 산 팝콘과 콜라와는 아주 다르다.


나는 영화관이 참 좋다. 영화관을 떠올리면 괜히 기분이 좋다. 처음 영화관을 갔을 때가 생각난다. 13살 내 인생에는 없던 일이었다.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쯤 인천지하철 1호선이 개통되었던 것 같다. 정확하진 않지만, 신연수 역이 생겨서 아주 좋아했다. 우리 집에서 약 800미터 정도 떨어져 있지만 그래도 꽤나 가까운 곳에 지하철 역이 생겨서 너무 좋았다. 신연수 역이 생긴 기념으로 어머니와 누나와 함께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고집이 참 쌘 편이었다. 어머니와 누나는 당시 장동건 주연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라는 영화를 선택했다. 나는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를 보기로 했다. 영화관에서 본 첫 영화였다. 영화는 무려 3시간이었고, 영화관은 어두웠고, 답답했다. 자리는 꽤나 앞쪽이어서 어지럽기도 했다. 근데, 이 영화에 너무 몰입했는지 기운이 빠져버렸다. 중간에 간달프와 발록의 결투 장면에서는 정말 큰 충격을 받았었다. 영화가 끝나고 나와 어머니와 누나를 다시 만나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당시 휴대폰도 없었는데, 어떻게 그렇게 무사히 만났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당시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영화관은 구월동에 생긴 CGV였다. 신연수역에서 예술회관역까지 지하철을 이용하면 갈 수 있었다. 예술회관역 1번 출구로 나와 조금 걸어가면 지금은 홈플러스가 된 까르푸 건물이 있었는데, 이 건물에 CGV가 있었다. 어머니와 누나 한 번 왔다고 나는 친구들을 이끌고 영화관으로 갔다. 지난번에 반지의 제왕을 보느라 보지 못했던 '2009 로스트 메모리즈'를 함께 보았다. 친구들과 영화관을 가서 본 첫 영화였다. 먼 미래인 2009년에 우리나라는 독립을 하지 못하고 여전히 일본의 식민지로 살아가고 있는 모습을 그린 영화였다. 당시 나에게는 엄청난 스토리와 파격적인 결말이 주는 충격이 컸다. 더욱 충격인 것은 먼 미래였던 2009년이 이제는 꽤나 먼 과거가 되었다는 것이다.


내가 중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연수동에도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섰다. 이제는 영화를 보러 구월동까지 가지 않아도 영화관을 갈 수 있었다. 그것도 걸어서 15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그 멀티플렉스의 이름은 'IMC9'이었다. 뜻은 모르겠지만 대충 인천 멀티플렉스 시네마 9관 정도가 아니었을까. 당시 꽤나 고층 빌딩으로 지어졌고, 연수동 사람들은 전부 여기로 영화를 보러 갈 정도였다. 그 인기가 실로 엄청났다. 여기서 본 영화들이 꽤나 많았다. 기억에 남는 건 중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이 단체로 담임선생님과 함께 성룡 주연의 '턱시도'를 본 기억이다. 아마 영화관에서 본 성룡 영화 중 유일한 영화였지 싶다. 당시 내가 보기에 턱시도를 입으면 강력해진다는 설정도 재밌었고, 액션도 멋졌다. 나도 저런 옷을 가지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많이 웃었다. 우리 반 친구들과 함께 영화를 보는 일이 참 좋았다. IMC9 은 엄청난 인기를 끌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 당시 해당 건물과 똑같은 빌딩을 바로 옆에 쌍둥이 빌딩처럼 올렸다. 영화관은 커지고 사람은 더 많아질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IMC9 없다. IMC9의 운영이 미숙했던 것 같다. 에어컨을 너무 쌔게 틀어 춥기도 했고, 음향이나 영상 상태도 좋지 않았다. 어떤 영화는 화면의 위아래가 거꾸로 상영되기도 했다. 결국 IMC9은 롯데시네마에 인수되었지만, 그나마도 명을 오래 하지 못하고 간판만이 호랑이 가죽처럼 남아있을 뿐이다.


IMC9에 부끄러운 추억이 하나 있다. 그것은 내 친구 J와 있었던 일이다. 당시 톰 크루즈 주연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라는 영화를 보기 위해 친구와 IMC9을 방문했다. 영화관 입구에는 아주 큰 영화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아주 크게 '톰 크루즈'라고 쓰여있는 걸 보고 친구에게 물었다.


"영화 제목 ‘톰 크루즈' 맞아?"

"응 저렇게도 불러."


나는 당당히 매표소로 걸어갔다. 매표소 누나가 친절한 얼굴로 환영했다.


"어떤 영화 관람하세요?"

"톰 크루즈 2장 주세요!"


나는 아주 당당하게 톰 크루즈 2장을 요청했다. 매표소 누나가 입에 미소를 띠더니 되물었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말씀하시는 것 맞으세요?"

"네 맞아요."


난 뭐가 잘못된지도 모르고 당당하게 말했다. 영화가 다 끝날 때 까지도 몰랐다. 그저 친구 J의 말마따나 '톰 크루즈'라고도 하고 '마이너리티 리포트'라고도 하나보다 했다. 나는 영화가 다 끝나고 나서야 톰 크루즈가 배우 이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야, 영화 제목 저거 맞다며!"

"그런 줄 알았지."


매표소 직원 누나는 갓 초등학교를 졸업한 중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가 얼마나 귀여웠을까.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부끄럽기도 했지만 재밌는 추억이다. 요즘도 친구 J와 그때 추억하고는 한다.


IMC9이 롯데시네마에 인수되고 나서도 사람들이 잘 이용하지 않은 이유는 당시 IMC9의 미숙한 운영으로 인한 것도 있었지만, 내가 생각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씨너스 때문이었을 것이다. 지금은 연수역과 푸르지오가 들어섰지만, 아무것도 없는 공터였을 때, 아주 큰 건물 하나가 묵묵히 올라갔다. 그리고 그 건물이 거의 완공될 즈음에는 현수막에 'CINUS 오픈!' 이 걸리며,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게 했다. 아직 모든 층이 임대가 되지 않아 좀 허전한 면들도 있었지만, 아주 깔끔하고 좋았다. 무엇보다 우리 집에서 좀 더 가까웠다. 친구들과 이곳에서 더 많은 영화들을 봤다. 어릴 때는 영화 티켓을 모으는 것이 취미였다. 약간은 단단한 종이 형태의 영화 티켓을 아직까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 한 20년 뒤에 이 영화표가 아주 희귀해서 비싼 값에 팔리지 모르는 일이지 않은가. 이게 다 재테크다.


아주 잘 되던 씨너스는 메가박스가 되었다. 당시에 메가박스에서 씨너스를 인수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씨너스 포인트는 메가박스 포인트로 이전되었다. 메가박스도 아주 열심히 이용했다. 군대를 전역하고 이마트 연수점에서 일을 했었는데, 당시 직원 복지로 이마트 직원 이름표를 보여주면 영화를 4,000원에 볼 수 있었다. 정확하진 않은데, 아마 그랬을 것이다. 오후 2시까지 출근해야 하니깐 이른 아침에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도 했고, 평일에 쉬다 보니깐 평일 낮에도 영화를 봤다. 영화관에 사람이 없어서 아주 쾌적하고 좋았다. 생각해보니 그때 참 좋았다.


메가박스로 꽤 오래 운영되다가 어느 날 메가박스가 없어졌다. 친구 J와 나는 너무 속상했다. 집에서 이렇게 가까운 곳에 영화관이 있었는데 없어진다고 생각하니 아쉬웠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관이 없어진 것이 아니었다. CGV로 재탄생한 것이었다. 우리는 환호를 질렀다. CGV가 들어선 것이 좋아서라기 보단, 영화관이 사라지지 않아서 좋았던 것이다.


코로나가 한창 심각했을 때, CGV 연수역점은 잠시 폐점을 했다. 스퀘어원에 CGV 인천 연수점이 있었기 때문에 아마 운영이 어려워진 연수역점을 잠시 폐점했던 것 같다. 혹시나 이게 지속되어 CGV연수역점이 사라질까 봐 많은 걱정을 했다. 그렇지만 다행히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되면서 다시 운영을 시작했다. 갑자기 영화가 보고 싶으면 걸어서 10분 거리에 있는 CGV 연수역점을 이용하면 된다.


누군가와 함께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혼자서도 영화를 자주 본다. 회사 근처에도 영화관이 있고, 집 근처에도 영화관이 있어 참 좋다. 가끔 일 끝나고 영화 보고 싶은 날, 영화관을 가서 영화를 본다. 누군가에게 영화를 보러 간다고 하면 질문의 유형이 보통 두 가지다. '누구랑?' 혹은 '무슨 영화?'. 물론 둘 다 물어보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질문을 먼저 하는가에 차이가 있다. '누구랑?'이라는 질문에 '혼자'라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많다. '영화관을 왜 혼자가?'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너, 영화에 진심이구나?' 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러 가지 반응들이 재밌다. 몇 가지 질문을 통해 나를 이해하기도 하고,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마치 영화처럼.


혼자 영화를 보러 가면, 거의 매번 팝콘과 콜라를 주문한다. GCV에서는 스몰 세트를 시킨 후 팝콘을 L사이즈로 업그레이드한다. 가만 보면 팝콘을 참 좋아한다. 근데 또 캐러멜 팝콘은 못 먹는다. 먹을 수는 있는데, 조금만 먹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먹으면 속이 느글거려 더 이상 먹을 수 없다. 나와 함께 영화를 보면서 팝콘을 먹는 사람들 중에 나 때문에 캐러멜 팝콘을 못 먹은 사람들이 꽤나 있을 것이다. 물론 반반으로 먹는 경우도 있다. 나는 보통 오리지널을 먹는다. 사실 항상이라고 해도 되겠다.


"왜? 그럼 갈릭도 안 먹어?"


음, 딱히 생각해 본 적은 없지만 갈릭도 먹을 수 있지만 오리지널이 조금 더 저렴하고 맛있다. 아마 그 조금의 비용을 더 내고 먹어야 할 만큼 다른 맛이 먹고 싶지 않다고 할 수 있겠다.


나와 '톰 크루즈'를 함께 본 친구 J와 최근에 '마녀 2'를 보러 GCV 연수역점을 갔었다. 팝콘을 주문하기로 했고, 나는 팝콘을 L사이즈로 혼자 먹겠다고 했다. 친구는 놀라며 '너무 많지 않아?'라고 물었고, '괜찮아. 영화 시간이 길어서 다 먹을 수 있어'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결국 라지 세트를 시켜 각자 팝콘 L사이즈 한 통씩 들고 영화를 보게 되었다. 친구 J의 인스타그램에 팝콘 사진과 함께 스토리로 게시되었다. 이렇게 팝콘과 콜라를 좋아하는 내가 코로나 때문에 영화 상영 중에 팝콘과 콜라를 섭취할 수 없었으니 얼마나 속이 상했겠는가.


영화는 기대가 컸던 탓에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지만,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면서 먹은 팝콘과 콜라는 좋았다. 여전히 과거에 했던 이 멋진 행위를 과거의 친구와 함께 할 수 있다는 것 자체로도 행복이었다. 20년이 지나도 여전한 우리가 좋았다. 20년이 지나 이 글을 읽으면 40년 전의 추억도 함께 회상할 수 있는 멋진 일이 되겠지. 그때도 여전히 팝콘과 콜라를 참지 못하고 L사이즈로 먹고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난 이 글을 마무리하고 CGV연수역점으로 갈 예정이다. 영화를 보면서 팝콘과 콜라를 먹는 건 정말 못 참을 예정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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