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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5. 억울하다

억울한 일은 정말 참을 수 없어!

나는 학교를 싫어했다. 내가 싫어하는 부류의 사람들과도 어쩔 수 없이 마주해야 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는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이 있었다. 나는 체구도 작고, 몸도 약했다. 키도 작고 몸무게도 적었다. 육체적인 폭행보다는 장난이 좀 지나친 정도의 괴롭힘이었다. 나는 그 장난이 싫었다. 나를 때리고 도망가는 녀석을 잡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달려도 따라잡을 수 없었다. 약이 오르고 화가 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태권도장에서는 심사 날 자리에 앉아 있던 나의 팔을 꺾던 친구가 생각난다. 왜 그랬을까. 억울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어릴 때는 억울한 일이 참 많았다. 태권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체육관은 이름도 대단한 이흥수 태권도였다. '이흥수' 관장이 체육관을 운영했다. 아이들은 정권 찌르기를 할 때마다 '이! 흥! 수! 태! 권! 도!'를 연신 외쳤다. 아마 당시에 이름 많이 듣기 대회가 있었다면 이흥수 관장이 인천에서 3등 정도는 차지했을 것이다. 여튼 어느 날 오후였다. 나보다 어렸던 녀석 2명이 있었다. 도장의 한쪽에는 창고 같은 것이 있었다. 체육관에서 창고 그리고, 창고에서 복도로 나갈 수 있는 곳이었다. 당시 관장님은 우리들에게 창고에 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나는 가만히 도장에 앉아 수업시간을 기다렸다. 그러나 녀석들은 아니었다. 연신 뛰어놀다가 두 녀석이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창고 문은 도장 쪽에서 잠글 수 있었다. 안에는 매트들이 있었고, 조금 높은 부분에는 도장과 창고를 연결하는 창고가 있었다. 그때 녀석들은, 갑자기 문이 열리지 않는지 나에게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급하게 달려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녀석들은 없었다. 뒤에서 나를 창고 안으로 밀었고, 녀석들은 나를 가두고는 문을 잠갔다. 까르르 웃는 소리가 창고 안에 갇힌 나의 달팽이관까지 때렸다.


"열어줘! 문 열어줘!"


나는 애원했다. 그때 문이 덜컥 열렸다. 나는 다행이다 싶어 고개를 들었다. 이흥수 관장이 서있었다. 나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내가 들어가지 말랬지!"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너무나 소심하고 낯가림도 심하고 부끄러움도 심했던 나는 그저 눈물을 글썽였다. 그때 내 볼이 쫙! 하는 찰진 소리와 함께 뜨거워졌다. 그렇다. 관장이란 사람이 내 귀싸대기를 후려친 것이다. 아직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왜 나를 때렸을까. 그리고 그 녀석들은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방관했을까. 자신들이 저지른 일을 얘기하지 않고 말이다. 당시엔 CCTV도 없어서 3명 중 2명이 맞다고 하면 그냥 맞는 일이 되는 것이었다. 그 맞는 일이 내가 귀싸대기 맞는 일이 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다. 여하튼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잘 앉아 있다가 수업을 듣고 집에 갔는지, 아니면 그냥 집에 갔는지.


더욱 어이없는 일도 있었다. 하루는 놀이터에서 친구들과 동네 형들과 함께 놀고 있었다. 당시 나는 9살쯤이었을 것이다. 놀이터의 정글짐에 올라 친구와 놀고 있었다. 그때, 우리 아파트 4동에 살고 있는 4남매가 나에게 다가왔다. 4남매는 첫째남자 둘째 남자 셋째와 넷째 성별이 다른 쌍둥이였다. 그중에서 쌍둥이였던 막내 중 여자가 갑자기 나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더니 울기 시작했다.


"네가 그랬냐?"

"네?"

"네가 내 동생 팬티 봤다며?"


지금 생각해도 살아생전 가장 황당한 질문이다. 난 그 여자애를 그날 처음 봤다. 근데, 그 여자애는 다짜고짜 내가 그랬다고 한다. 그냥 무조건 나란다. 자기가 봤다고. 막 사정없이 울어댔다. 나는 너무 수치스럽고 억울했다. 그 어린 나이에도 주변 친구들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너무 두려웠고, 힘이 없어 이렇게 당하는 나도 억울했고, 주변에서 아무도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도 억울했다. 당시 심지어 이런 상상도 해봤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자주 농담을 하곤 하셨는데, 이런 것이다. 우리 아파트에 너랑 똑같이 생긴 애가 있다. 이름은 김용준이다. 아침에도 봤다. 식의 농담이었다. 나는 정말로 그 김용준이란 녀석이 한 짓은 아니었을까 하는 막다른 생각까지 했었다. 그 녀석을 다음에 마주친다면 줘 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상을 해보니 내가 줘 터질 것 같았다.


"저 아니에요... 저 안 그랬어요."

"내 동생이 너 맞다잖아? 뒤질래?"


그렇게 한참 욕을 먹고 난 후에 나는 억울함에 울음을 터뜨렸고, 그 여자애는 울음을 그쳤다. 속이 풀렸는지 4남매는 놀이터를 떠났다. 주변에 있던 친구들과 형들은 나를 위로해 준답시고 여러 가지 말을 해줬다. 아직도 생각나는 황당한 위로가 있다.


"너는 태권도 초록띠잖아. 네가 싸우면 이겨."


참 잘도 싸워서 이기겠다. 그딴 걸 위로라고 했나 싶다. 하지만 당시 모두 초등학생이었던 것을 생각하면 나름 나를 위해 해준 고마운 말이렷다. 나는 엄마에게 일렀고, 나중에 엄마와 아파트를 산책하던 중 4남매 중 첫째와 둘째를 마주쳤다. 엄마는 그 녀석들을 불러 혼내셨고, 그 이후에는 그 녀석들을 마주친 적은 없다.


홈플러스가 아직 까르프였을 때의 일도 생각이 난다. 당시 조금씩 까르푸가 지점을 확대해가고 있을 때였고, 포켓몬스터라는 만화영화가 대유행을 탔던 시기였다. 우리 집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곳에 까르푸가 생겨 처음으로 까르푸를 가보게 되었다. 아마도 인하대 앞에 있는 곳이었을 것이다. 까르푸는 엄청나게 컸다. 건물도 크고 볼 것도 많았다. 내가 어릴 때는 보통 대동월드나 로얄백화점, 희망백화점 등에서 장을 보았다. 백화점에서는 버스 운영해서 시간만 잘 맞추면 꽤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그런 시기에 대형마트는 나에게 아주 놀라운 곳이었고, 흥미로운 곳이었다. 특히나 장난감 코너는 마치 울타리라도 쳐 놓은 것 마냥 나는 벗어나지 못했다. 핸드폰도 없던 시절인데 나중에 어떻게 만나려고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무턱대고 장난감을 구경하겠다고 했다. 부모님께서는 알았다고 하시며 장을 보러 가셨다. 4열로 진열되어 있던 장난감을 하나하나 아주 꼼꼼하게 구경하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나보다 훨씬 어려 보이는 꼬마 두 명이 장난감 코너에 왔다. 그러더니 둘은 포켓몬스터 장난감을 자신의 웃옷 안으로 집어넣어 보기도 했다. 그러더니 불쑥 나에게 말을 걸었다.


"형아, 이렇게 하면 보여?"


나는 두 녀석을 바라보았다. 딱 봐도 보였다. 웃옷 안에 장난감을 숨겼다는 것이.


"응. 보여."


두 녀석은 낙심한 듯이 서로를 바라보더니 말했다.


"이건 너무 커. 더 작은 걸로 하자."

"너네 이거 훔치려고?"

"아... 아니! 우리가 이걸 왜 훔쳐? 우린 도둑질 안 해!"


장난감을 훔치려고 그러나 생각해서 질문을 했다. 그래 말이 안 되지. 설마 이 큰 마트에서. 어떻게? 물건을 가지고 나가면 경보음이 울리는 이 첨단 대형 마트에서 어떻게?라는 생각을 잠시 하는 동안 녀석들은 사라졌고, 나는 다시 열심히 장난감을 구경했다. 레고도 잔뜩 있었고, 여긴 완전 천국이었다. 장난감 코너의 모든 장난감을 4번 정도씩 구경했을 때, 정장을 입은 남자 두 명이 나에게 다가왔다. 뭘까? 내가 뭐 잘못했나?


"야. 너 따라와."

"네? 저요? 왜요?"

"따라와 봐. 물어볼 게 있어."

"왜요? 저 부모님하고 같이 왔는데. 지금 가면 저 못 찾으실 거 같은데요."

"잠깐이면 돼. 따라와."


뭔가 잘못된 것 같았지만, 그 아저씨들이 무서워 어쩔 수 없이 따라갔다. 생각해보면 20대의 대학교 휴학생쯤이었을 아저씨 들이었을 텐데. 어찌 되었든 어디 구석으로 나를 끌고 가더니 엘리베이터를 탔다. 지하 몇 층 인지도 모를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어딘지도 모르게 쫓아가다 보니 어떤 창고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그곳은 어두컴컴했다. 안으로 들어가자 큰 책상이 있었고, 그 책상에는 아까 봤던 그 꼬마 두 명이 앉아있었다. 마치 사장이 앉아 있는 것 같은 구도였다. 양 옆으로는 보안 요원들이 몇 명 서있었던 것 같다.


"얘 맞아?"


나는 기가 찼다. 아까 그 녀석들의 행동이 이상했을 때 말을 했어야 하나.


"너는 뭐 훔쳤어?"

"안 훔쳤는데요."


그렇다. 나는 저 꼬마들과 한패인 도둑으로 오해를 받았고, 저 어리석은 보안 요원들은, 저 꼬마 두 명이 하는 말에 성인 4~5명이 휘둘려서 나를 이 지하까지 끌고 온 것이다. 저 꼬마 두 명을 상석에 앉혀놓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들처럼 말이다. 두 꼬마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아, 저 형은 아니에요."

"얘는 아니야?"

"네, 저 형은 아니에요."


기가 막혔다. 보안 요원이 오해가 있었다며 나를 돌아가라고 했다. 나는 심지어 어디로 어떻게 내려온지도 모르는데, '혼자 갈 수 있지?' 이런 질문이나 하고 앉았다.


"아니오. 잘 기억이 안 나요."


장난감 코너에서 없어진 나를 찾고 계실 부모님이 생각이 났다. 보안 요원 한 명이 나를 데리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나를 데려다주던 보안 요원은 나를 찾아다니던 우리 부모님을 마주쳤다. 부모님께 몇 마디 사과하고는 그 사람은 사라졌다. 웃기네. 사과는 나한테 해야지.


고등학교 1학년 때의 일도 기억이 난다. 나와 4살 차이가 나는 누나는 대학교 2학년이었다. 방학을 맞이했는지 주말을 맞이했는지 정확히 기억은 안 나지만 여하튼 나는 혼자서, 공주에서 학교를 다니기 위해 자취를 하던 누나를 찾아갔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누나의 자취방은 원룸이었던 것 같다. 누나의 자취방 근처에는 제법 큰 마트가 있었는데, 1층은 식자재나 생활용품을 팔았고 2층에는 완구점이 있었다. 당시 나는 건담 프라모델에 한참 흥미가 생겨 1~2개 정도 구입해서 조립을 했었다. 근데, 그 완구점에 건담 프라모델이 있었다. 그리고 그 완구점에는 아주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전 품목 50% 세일]


여기는 천국인가?라는 생각에 누나에게 카드를 받아 들고, 완구점으로 향했다. 꽤나 많은 종류의 건담 프라모델이 비치되어 있었다. 나는 그중에 하나를 골라 들고 가격을 봤다. 붙어 있는 가격에 50% 세일을 하면, 거의 공짜(실제로 공짜는 아니지만 말이다.)고, 나는 그걸 들고 계산대로 향했다. 계산대에는 한 아저씨가 앉아있었다. 어릴 때, 문방구에 가서 장난감을 구경하던 나를 아주 지겹다는 듯이 지켜보던 문방구 주인아저씨와 흡사했다. 계산대에 상품을 올려놓았다.


"아저씨, 이건 얼마예요?"


내가 생각한 금액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다.


"네? 50% 세일 아닌가요?"

"수입제품은 10%만 세일해."

"저기에는, 50% 세일이라고 쓰여있는데요."

"아이 진짜. 수입은 10%만 한다고."


나는 실망스러운 마음으로 상품을 다시 들고 제자리에 가져다 두었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누나는 혹시 50% 세일이라는 부분에 '일부 상품 제외' 같은 내용이 함께 쓰여있냐고 물었다. 나는 푯말을 다시 확인했고, 그런 내용은 일절 없었다. 누나는 그럼 '일부 품목 제외' 같은 부분이 없으니 다시 한번 물어보라고 했다. 나는 용기를 내어 다시 계산대 앞으로 갔다.


"저기 '일부 품목 제외'라는 말이 없는데, 50% 할인해주셔야 하지 않나요?"


안 하던 행동을 하면 항상 뭔가 일이 생기더라. 평소 같았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고, 계산대에 앉아 있던 문방구 주인과 흡사한 그 아저씨가 그런 나를 보더니 입을 열었다.


"야이 XXX야! 수입은 세일 안 한다고! 확 XX 죽여버린다! 꺼져! 안 꺼져?"


나는 눈물이 글썽한 상태로 상품을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완구점을 나와 누나의 집으로 갔다. 참 억울했다. 정말 쌍욕을 들을 일이었을까?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그런 욕을 들어야 했을까? 내가 정말 무섭게 생긴 조폭 같은 사람이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와 함께 온 사람이 십여 명이 되었어도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들이 나를 더욱 억울하게 했다.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한테 약한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많은 상상을 했다. 내 상상 속에서 그 아저씨는 아마 수백 번은 목숨을 잃었다. 덕분인지 지금은 그 아저씨의 얼굴이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지금은 괜찮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꽤나 생생하게 기억하는 것을 보면 당시의 나에겐 아주 큰 충격이었다. 성격이 예민해서 마음의 상처는 더욱 컸다. 피부가 예민한 사람들은 조금만 잘못되어도 뾰루지가 나고, 피부가 뒤집어지듯이 내 성격이 그랬다. 어제는 그런 생각을 했다. 내가 가끔은 사이코패스였으면 좋겠다고. 억울한 감정을 못 느끼게 말이다. 그래도 내 스스로를 잘 어르고 달래서 그런 감정 적게 느끼게 하려고 노력하고는 있다. 다만, 그런 노력조차 필요하지 않도록 가끔은 감정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한 것이다. 뭐, '내 피부가 강철 피부였으면 좋겠다.' 같은 부류의 상이다. 억울한 감정이 드는 건 너무나도 참기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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