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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3. 들기름 막국수

들기름 막국수를 어떻게 참아?

직장동료가 이사를 했기에, 조촐하게 집들이를 하기로 했다. 직장동료 O는 나와 Y에게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해주겠다고 했다. 그중 하나가 들기름 막국수였다. 당시 먹은 음식으로는 3대 초마 짬뽕과 육회, 만두 그리고 들기름 막국수였다. 여러 가지 음식 중에서도 들기름 막국수만은 잊을 수가 없다. 난생처음 먹어보는 음식이기도 했고, 이 음식을 집에서 직접 만들다니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O형! 이걸 직접 만드신 거예요? 너무 맛있는데요?"


참고로 우리 회사는 나이, 직책,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 '형'이라고 부른다. '님'은 좀 거리가 있고, '씨'는 좀 더 거리가 있고, 적당히 '형'으로 하기로 했다. 여하튼 나는 엄청난 감탄사를 유발하며 O형의 들기름 막국수를 칭찬했다.


"아, 용준형. 이거 홈플러스에서 팔아요. 저는 끓이기만 한 거예요."


엥? 이 맛있는 음식을 홈플러스에서 판다고? 거짓말인가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말은 사실이었고, 그날부터 나는 들기름 막국수를 참을 수 없었다. 하루는 회사에서 저녁 식사를 할 일이 있었다. 우리 회사에는 라면 포트가 있었고, 나는 홈플러스에서 들기름 막국수를 샀다. 이건 혁명이다.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만들 수 있지! 나는 포장되어 있던 2인분을 몽땅 끓여 1인분처럼 먹었다. 


하루는 안산에 볼 일이 있어 간 적이 있다. 그날 오전부터 열심히 움직였고, 밥을 먹을 시간이 되었다. 근처 홈플러스에 주차하고 푸드코트를 가려고 했으나, 푸드코트가 없는 홈플러스였다. 아니면 내가 못 찾았거나. 그래서 온 김에 들기름 막국수나 사서 가자 마음먹었고, 실천에 옮겼다. 비가 아주 많이 쏟아지는 날이었다. 오후에도 볼 일이 남아 있어 급하게 점심을 들기름 막국수로 해결했다. 좀 더 음미하면서 맛있게 끓여 먹고 싶었으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부족했다. 다음엔 다시 구매해서 부모님과도 함께 먹어야겠다. 이 맛있는 음식을 아직 부모님께서 못 드셔 보셨으니 말이다!


들기름 막국수는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음식이다. 면을 끓이고, 찬물에 식혀서, 물을 버리고, 소스를 비벼먹으면 된다. 이 단순한 음식이 나에게 이런 행복을 선사하다니. 놀라운 일이다. O형의 말로는 용인에 있는 '고기리 막국수'라는 곳이 있는데, 그곳의 들기름 막국수를 본떠서 인스턴트 음식으로 만든 것이라고 했다. 정말 신기했다. 용인의 고기리...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이름이 생각이 나지 않아서 방금 네이버에 검색했다. 여하튼 들기름 막국수를 파는 곳이 나의 직장 근처인 일산에도 있으며, O형이 미리 가보았다고 한다. 맛은 아주 좋았고, 다음에 함께 가자고 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은 했지만, 아직 가보진 못했다. 들기름 막국수... 정말 참을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현실은 잘 참고 있는 것일까? 다음 주에는 회사의 여려 형들을 설득해 저녁에 들기름 막국수를 먹자고 제안해봐야겠다. 들기름 막국수를 먹어 본 사람이라면 나의 제안을, 들기름 막국수를 정말 참기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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