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못 참아] 2. 시원한 카모마일
카모마일 시원하게 주문하고 구석진 자리에 앉아 글 쓰는 건 못 참지
우리 아파트는 아주 오래되었다. 나도 이 아파트에 아주 오래 살았다. 내 기억에 있는 우리 집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 밖에 없으니, 평생 살았다고 해도 무방하다. 물론 내 기억에는 없는 우리 집이 몇몇이 더 있었다고 한다. 우리 아파트는 단층 아파트이기도 하고, 세대수도 적어서 그런지 아파트 상가가 그렇게 크지 않다. 바로 길 건너의 고층 아파트는 상가도 3층 높이에 아주 컸지만, 우리 아파트의 상가는 2층 높이에 불과했다. 여담으로 내가 어릴 때는 건너 아파트 상가의 옥상에는 놀이동산 같은 것이 있었다. 퐁퐁(다른 지역에서는 방방 등의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 트램펄린)과 펀치 기계 등의 오락기계가 잔뜩 놓여 있었던 곳이었다. 한 번은 펀치 기계 앞을 지나가는데, 펀치를 하라고 기계는 팔을 올려놨는데 아무도 펀치를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어린 꼬마였던 내가 그 펀치를 쳐서 기계의 팔을 뒤로 눕혔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리자 한참 뒤에서 도움닫기를 하던 형들이 보였다. 나는 두려움에 빠르게 도망쳤다.
얘기가 많이 샜다. 여하튼 그런 우리 아파트의 상가에도 아주 메인 자리가 있다. 아파트의 입구 쪽 모서리에 있는 자리인데 길에서도 잘 보이고, 코너이다 보니 두 개의 면에 매장이 노출되는 아주 좋은 자리다. 횡단보도 바로 앞이기도 하다.(내가 아주 어릴 때는 이 횡단보도가 없어 언덕 위의 사거리까지 올라가서 길을 건너야 했다.) 이 자리에는 '성화당 약국'이라는 약국이 있었다. 약국은 내가 어릴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이 자리를 지켰다. 친구들과 만남의 장소이기도 했다. 초등학생이었던 우리들은 '성당'으로 줄여서 '5시에 성당에서 보자.'라고 약속을 잡곤 했다. 내가 군대를 다녀오니 이곳은 휴대폰 매장이 되어 있었다. 직원들이 친절하게 잘 상담을 해줘서 그랬는지 장사도 아주 잘 되었다. 나 역시 첫 스마트폰을 이곳에서 개통했다. 나의 첫 스마트폰은 아이폰4 화이트였는데,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겠다. 사실 더 할 얘기도 없긴 하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여러 이름의 휴대폰 매장이었던 이 자리에, 카페가 들어왔다.
이디야커피가 그 카페의 주인이었다. 우리들은 이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디야가 여기에 들어온다고?'라는 반응들이었다. 멀지 않은 곳에 '이디야 커피'가 있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들었다. 2018년 겨울에 이디야 커피가 들어섰는데, 정말 어렵게 생긴 카페라는 생각이 들어서인지 열심히 이용했다. 주말마다 카페를 이용하기도 했다. 여전히 같은 아파트에 사는 나의 친구 J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난 의무적으로 방문해. 없어지면 안 되니까. 나라도 이용해서 안 없어지게 해야 돼."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했다. 나도 꽤나 열심히 이용했다. 혼자 책을 읽거나 글을 쓸 때면, 이곳에 와서 글을 쓰고 책을 읽었다. 이제는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정할 때 '이디야로 나와.', '이디야에 있을게.' 등이다. 약속시간보다 지나치게 빨리 와도 카페에 들어와서 기다리면 된다.
안타깝게도 의무적으로 이 카페를 방문하던 나의 친구는 이제 자주 방문하지 않는다. 이제는 우리가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이 카페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자리가 불편해서이기도 하다.
"가까워서 좋은데, 의자가 불편해서 허리가 너무 아파서 못 가겠어."
어쩌면 책을 읽기 싫어서 허리가 아플지도 모를 일이다. 사실 여기 테이블이 높지 않아서 글을 쓸 때 편한 곳이 아닌 것은 사실이다. 이곳은 참 모순적인 공간이다. 불편한데, 편한 곳이다. 아마도 육체적 불편함보다 심리적 편함이 더 커서, 지금도 카모마일 시원하게 주문하고는 구석진 자리에 앉아 태블릿을 펼치고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