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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6. 2022

[이건 못 참아] 1. 을밀대 평양냉면

을밀대에서 거냉은 못 참지

때는 2016년 여름이었다. 지금 다니고 있는 회사에서 지금은 함께 일하지 않는 사람들과 함께 냉면을 먹으러 갔다. 일산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일산의 맛집들을 잘 모르는 우리들에게 팀장님은 을밀대를 소개해 주었다. 일산에서는 유명한 냉면 맛집이라고 했다. 가수 '존박'이 좋아하는 냉면이라는 소개도 잊지 않았다. 당시 평양냉면이라는 것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던 나에게 꽤나 신선한 충격이었다. 호불호가 강한 음식이라 우리들 입맛에 맞을지 잘 모르겠지만, 팀장님 본인의 입맛에는 그리 잘 맞는 음식은 아니라고 했다.


을밀대 일산지점은 사거리 모퉁이에 하얀색 벽으로 된 허름해 보이는 냉면집이었다. 입구 앞에는 의자들이 놓여있었다. 각각의 의자에는 번호표를 받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한 명씩 앉아있었다. 햇빛이 닿지 않는 나무 그늘에서 우리들 역시 순서를 기다렸다.


테이블에 앉았다. 주전자를 내려 주었다. 이 주전자에는 고기 육수가 있었는데, 소금을 타지 않은 사골국물 맛이었다. 이 더운 여름날 뜨거운 육수를 내주다니. 안 그래도 더운데, 더욱 더웠다. 하지만 이 육수에는 깊은 뜻이 있었다. 시원한 물을 달라고 하면 가져다주지만, 이 뜨거운 육수를 마시고 나서 먹는 물냉면의 시원함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이 뜨거운 육수는 냉면을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게 하는 일종의 마법인 것이다.


평양냉면은 적어도 3번은 먹어야 그 맛을 알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처음 먹은 날 빠져버렸다. 무려 국밥보다 비싼 냉면이었지만, 날로 그 생각이 깊어졌다. 해가 지나서는 혼자서 이 냉면을 먹기 위해 점심시간에 차를 끌고 나온 적도 있었다. 점점 평양냉면에 빠져가던 나는 친구와 함께 각지의 평양냉면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꽤나 여러 군데의 평양냉면집을 다녀보았더니 그 맛이 전부 달랐다. 내 머리는 평양냉면이라는 것의 정확한 맛을 정의 내릴 수 없게 되었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나는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을밀대의 평양냉면을 좋아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인스타 스토리에 을밀대 평양냉면 사진을 한 장 올렸다. '을밀대는 참을 수 없다'는 멘트도 잊지 않고 말이다. 평양냉면을 아주 좋아하는 친구로부터 DM이 왔다. 을밀대는 '거냉'이다. '거냉'이 뭔지 몰라 친구에게 물었더니, 얼음을 뺀 물냉면이라고 했다. 얼음이 녹으면서 육수의 맛이 조금씩 변할 수 있으니 거냉으로 먹으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고 했다. 몇 년이나 그냥 먹었는데,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었다. 가장 최근에 을밀대를 방문한 것은 지금 함께 일하는 나의 직장 동료와 함께였다. 나는 거냉이라는 말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얼음을 빼고 달라고 했다. 우리 테이블에 내려진 빌지에는 '거냉 2' 이라고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다음에 을밀대를 가게 된다면, 꽤나 용감하게 거냉으로 달라고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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