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못 참아] 14. 방탈출
누군가에게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탈출을 난 여전히 참지 못 하겠다
우리 중에 제일 먼저 친구 J가 방탈출을 경험하고 왔다. 어떤 방에 들어갔는데, 너무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그래서 카운터로 전화해서 불을 좀 켜달라고 했다고 한다. 불을 켜는 것부터가 방탈출의 시작이었고, 힌트 3개 중 1개를 그렇게 날렸다고 했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우리도 방탈출을 해보자고 제안했고, J와 H 그리고 K와 함께 나는 첫 방탈출을 경험했다. 우리는 생각보다 역할 분배를 잘했고, 협동심을 발휘해 순차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난 이 상황을 깊이 생각해서, 우리가 정말 조난이나 어려운 상황이 되었을 때 이런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겠구나 까지 생각해보았다. 여차저차 두 번째 방을 해결하고 문을 열었다. 나는 제일 먼저 그 문을 열고 나왔다.
"우리 다음은 어디로 들어가? 문이 너무 많은데?"
문이 아마 여덟 개는 되었던 것 같다.
"문이 많다고? 끝난 거 아니야?"
친구들이 차례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우리는 멀뚱멀뚱 어떤 문을 열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축하합니다. 탈출하셨습니다."
직원이 다가와 우리를 축하해 주었다. 우리는 '아 탈출했구나.' 하면서 카운터로 걸어갔다. 첫 방탈출이 생각보다 빠른 시간에 해결해서 당황했다. 그러면서 '아, 우리 어쩌면 생각보다 잘하는 걸지도?' 같은 유치한 생각을 하면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당시 찍은 사진은 4X6인치 사진이었고, 그 사진을 이쁜 액자에 담아 내 방에 보관하고 있다. 첫 방탈출의 기억은 그렇게 좋은 기억이 되었다.
그러나 모든 방탈출이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곳은 너무 쉬워서 만족하지 못했고, 어떤 곳은 너무 억지스러워서 만족하지 못했다. 어떤 곳은 몰입이 너무 되지 않아서 만족하지 못했다. 하지만 반대로 문제가 너무 쉽지 않고, 억지스럽지 않으면서, 내부 인테리어가 정말 몰입하게 만드는 곳들도 충분히 많았다. 신기한 장치들이 가득한 곳도 많았고, 스토리가 굉장히 좋은 곳도 많았다. 친구들과 한창 방탈출을 자주 할 때는 방탈출을 너무 많이 해서 구월동에 있는 거의 모든 방탈출을 경험해보았다. 물론 방탈출 카페마다 각자의 느낌이 있어, 해당 카페에서 탈출한 방이 너무 별로 였으면 다른 방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서 그 카페의 다른 방을 아예 시도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결혼해서 천안에 있는 친구 S와도 참 많은 방탈출을 했다. 하루는 내가 천안에 놀러 간 적이 있는데, 천안에서도 방탈출을 했다. 아주 훌륭한 세트와 신기한 장치 그리고 스토리를 갖춘 곳이었다. 전국적으로 체인점이 있어, 믿고 가는 곳 중에 한 곳으로 인식하기로 했다. 문제도 엄청 많고, 탈출해야 하는 방도 많아서 돈이나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다만 탈출에 실패했다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뭔가 처음과 끝이 연결되는 구조로 되어 있어서 몰입도 잘 되었던 것 같다.
친구 S와는 둘이서 방탈출을 자주 했다. 다만 우리 둘이 들어가면 숫자를 조심해야 한다. 문제를 정확히 풀어놓고도 계산을 잘못해서 혹은 숫자를 잘못 봐서 문제를 풀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혹은 자물쇠를 못 연다 거나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떤 방에서는 분명 제대로 문제를 풀었다. 그리고 계산을 해야 했고, 우리는 수십 번 다시 보고 계산을 했다. 하지만 결국 풀지 못하고 카운터에 전화를 걸었다. 그러자 우리가 푼 그대로를 설명해서, 우리는 그렇게 풀었다고 말했다.
"답이 뭐라고 하셨죠?"
우리가 풀어낸 숫자를 말했다.
"네? 숫자를 다시 보시고 풀어보세요."
무슨 소리일까. 숫자를 다시 보라니. 우리가 바보도 아니고 숫자를 못 읽을까 봐? 우리는 다시 한쪽 눈을 감고 장치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아까와 다른 숫자가 보였다.
"36 아니고 63인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너랑 나랑 7번은 넘게 본 거 같은데?"
"우리는 방탈출이 아니라 숫자를 다시 배워야겠는데?"
"초등학교부터 다시 가야 할까."
나는 문과라고 치자. 그 친구는 심지어 이과다. 여하튼 우리는 방을 탈출했지만, 숫자를 똑바로 읽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한 명이 더 필요했다. 내 생각에도 3명이 딱 적당한 것 같다.
그렇게 친구 S와 K 그리고 나는 날을 잡고 방탈출을 하기로 했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알게 된 방탈출 카페가 있는데, 그곳이 아주 몰입도 잘 되고 좋았어서 꼭 친구들과 함께 가고 싶었다. 홍대 쪽에 있는 곳이었다. 천안에서 올라온 S가 서창동에 있는 K의 집에 차를 세우고, K의 차를 타고 홍대로 갔다. 우리는 홍대에 도착해서 방탈출을 했다. 아주 만족스러운 방탈출이었다. 세트도 훌륭했고, 스토리도 좋았다. 억지스러운 문제도 없었다. 다만 우리가 그곳에서 훔친 다이아몬드를 들고 나올 수 없었던 것은 조금 아쉬웠다. 우리는 그렇게 방탈출을 마치자마자 인천으로 돌아왔다.
"홍대 가서 방탈출만 하고 온 거야?"
"응, 방탈출만 하고 바로 왔지."
그만큼 방탈출이 하고 싶었다는 말이지. 우리는 정말 재밌는 방탈출을 하기 위해 인천에서 홍대까지 다른 일정 없이 방탈출만 하고 돌아올 정도로 진심인 것이었다.
방탈출을 하다 보면 재밌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람마다 문제를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해결하는 방식도 다양하다. 어떤 사람을 사진을 보고 A를 떠올리고, 다른 사람은 B를 떠올리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그 A와 B를 결합하여 C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문제의 종류에 따라서도 잘 푸는 사람과 못 푸는 사람이 있다. 단서를 잘 발견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문제를 잘 푸는 사람도 있다. 꼼꼼하게 풀어나가는 사람이 있고, 큼직큼직하게 문제를 풀어가는 사람이 있다. 어떤 상황이 주어졌을 때,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가는지 알 수 있다. 의욕만 앞서는 사람도 있고, 멀리서 천천히 지켜보는 사람도 있다. 리더십을 발휘하는 사람도 있고, 귀찮은 일은 떠넘기는 사람도 있다. 남의 말을 듣지 않는 사람이 있고, 너무 남을 따라가기만 하는 사람도 있다. 그냥 짜증만 내는 사람도 있고, 그냥 욕심만 부리는 사람도 있다. 방탈출은 어쩌면 등산만큼이나 사람의 본성을 잘 알 수 있는 활동일지 모른다.
어느 날 친구 B가 방탈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왜 돈을 내고 방에 갇히는 거여? 어차피 나올 건데."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산도 어차피 내려올 건데, 올라가잖어."
물론 난 등산을 좋아한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생각해보니 누군가에겐 방탈출이 얼마나 어이없는 활동인가. 돈을 내고 스스로 방에 갇혀서는 방을 탈출한다는 활동이 얼마나 어이없겠는가. 누군가에게 등산은 어차피 내려올 것인데 왜 올라가느냐고 할 수 있고. 누군가는 어차피 또 이불을 펼 건데 뭐하로 이불을 접냐고 할 수 있고. 모든 활동은 이성적이고 이론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방탈출을 난 여전히 참지 못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