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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13. 차이나타운

마지막 보드게임은 '차이나타운'을 참을 수가 없으니까!

인천에 있는 차이나타운이 아니라 보드게임 차이나타운이다. 비슷한 류의 게임으로는 카탄이 있을 수 있겠다. 서로 흥정하고, 협상하고, 교환하고, 건설하고, 정산하고. 어떻게 보면 부루마블을 서로 흥정하고 협상하고, 교환하고, 건설하고, 정산하는 느낌이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아니 오히려 어려울까.


이 게임을 접하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나에겐 태경 아파트 친구들이 있다. 7살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들이다. 우리 넷 한창 보드게임에 빠진 때가 있었다. 그때, 한 보드카페에서 게임을 추천받았다. 어느 보드카페였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4명이서 하기 적당한 게임이 뭐가 있나요?"


사장님은 차이나타운을 가져오셨다. 뭔가 포장을 보니 재밌어 보였다. 차이나타운이라고 하니 인천 사람으로서 친근하기도 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장님의 설명을 들었다.


차이나타운의 게임 목표는 가장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총 6라운드로 진행이 되고, 서로 건물을 짓고, 협상하고, 거래한다. 게임이 시작되면 먼저 본인의 색깔을 정해야 한다. 자신의 소유를 표시할 때 쓸 색깔이다. 그리고 게임 규칙 중 중요한 것들을 보여주는 참조 카드, 그리고 5만 달러를 받는다. 게임 판은 총 6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고, 1번부터 85번까지의 빌딩 칸이 있다. 빌딩 카드를 각자 받는다. 라운드마다 받을 빌딩 카드가 다른데, 받은 후 몇 장은 버린다. 예를 들면 6장을 받아서 자신이 마음에 드는 숫자의 빌딩 카드를 남기고, 필요 없는 숫자의 빌딩 카드는 버린다. 그리고 가게 타일을 받으며, 받는 수량은 각 라운드마다 다르다. 가게 타일은 3에서 6까지 숫자가 쓰여있다. 이 숫자는 가게를 연결할 수 있는 최대 숫자를 표시한다. 즉 3이 써져 있는 가게 타일은 총 3개까지 붙일 수 있다. 가게를 붙이면 그만큼 받을 수 있는 돈이 다르다. 그럼 한 라운드를 시작하기 위한 준비가 되었다.


자신이 남긴 숫자의 빌딩 카드에 자신의 색깔 타일로 영역을 표시한다. 그리고 주변을 살핀다. 가게 타일과 빌딩 칸을 서로 거래한다. 차이나타운에서는 모든지 거래할 수 있다. 빌딩 칸과 가게를 한 번에 넘기기도 하고, 돈으로 왕창 사기도 한다. '6라운드가 끝났을 때, 가장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승자'라는 목표를 위해 뭐든지 거래하고 협상해서 달성하면 되는 것이다. 이렇게 빌딩 칸과 가게들의 거래가 완료되면 자신의 땅에 가게 타일을 건설한다. 그렇게 한 라운드가 끝나면 정산을 받는다. 본인이 세운 가게 타일의 숫자와 이어 붙인 숫자에 따라 다르게 정산을 받는다.


이 게임은 유독 H가 잘다. 워낙 경제관념이 뛰어나기도 하고, 실제로도 자산관리를 아주 잘하고 있는 친구다. H는 어릴 때부터 세상의 유행에 빠르게 적응하고 선도했다. 미니카가 한창 유행하던 때, 우리들은 5,000원짜리 골드 모터 달고 좋아할 때, H는 귀신 모터니 재규어 모터니 하는 몇만 원짜리의 것들을 달았다. 우리들은 조그만 미니게임기로 테트리스 즐길 때, 그 친구는 TV에 게임기 연결해서 게임했다. BB탄 서바이벌을 하면 우리들은 권총 쐈고, 그 친구는 K2 소총 혹은 M16 소총 쐈다. 차이나타운에서도 H는 앞서갔다. 항상 다른 친구들이 H의 협상에 당하는 느낌이랄까.


이 게임의 묘미는 협상이다. 진짜 협상할 때 가관이다. 서로 정신없이 교환하다가 다른 타일을 주기도 한다. 예를 들면 쌀을 주기로 해놓고선 도자기를 주는 경우도 있고, 본인이 뭘 받기로 했는지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한 번은 J가 협상하다가 잘못 교환다. 우리가 너무 어릴 때부터 친구여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모이면 여전히 어린 소년들이었다.


"아, 잠깐! 잘못줬다. 그거 아닌데. 다시 줘."

"그런 게 어딨어. 이미 줬으면 끝이지."


친구 J가 갑자기 약간 울상을 짓더니


"아! 나 안 해!"


그 모습이 너무 웃겨서 우리는 모두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진짜 무슨 초등학생이냐고 막 놀렸다. 친구 J도 웃겼는지 함께 웃었다.


"K! J한테 얼른 돌려줘라. 게임은 해야지."


결국 K는 가게 타일을 돌려... 줬었나? 모르겠다. 뭐 중요하진 않다. 그날 우리가 엄청 웃었던 것만 기억하면 됐지 뭐. 또 다른 날은 보드게임 카페의 마감시간이 임박한 날이었다. 우리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게임을 하다가 어느새 마감시간이 된 것이다. 그 보드카페에 손님은 우리뿐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사장님! 저희 1라운드 남아서 이것만 빨리 마무리하고 가겠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친절하신 사장님은 우리를 보고 흐뭇한 웃음을 짓고는 커튼을 다시 닫아 주셨다. 우리는 급하게 마지막 협상을 하기 시작했다. 난장판도 이런 난장판이 없었다. 서로 뭐가 어떻게 거래된지도 모르고 '빨리빨리'를 외쳤다. 마지막이라 그런지 선심 쓰듯이 과감한 거래가 진행되기도 하고, 손익을 계산하기 전에 느낌만으로 거래를 하기도 하고 하다 보니 거의 시장바닥이었다. 그날의 분위기를 글로 담을 수 없는 내 글솜씨가 미워진다.


하루는 친구 J와 카페를 갔다. J는 책을 읽고,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그러다 J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장용. 너는 동전을 던져서 앞면이 나오면 1억을 받고 뒷 면이 나오면 2천만 원을 잃는 게 있고, 동전을 안 던지고 무조건 2천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있으면 어떤 걸 선택할 거야?"

"난, 무조건 동전 안 던지고 2,000만 원."

"나도 그런데, 반대로 선택하는 사람들이 돈을 많이 번다고 하네."


J가 읽고 있던 책은 <부의 인문학>이었다. 친구와 재산과 관련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나의 성향에 대해서 말했다. 알고 있다고. 이런 나의 성격 때문에 큰돈을 벌 수 없을 것이라고. 사람들은 손실회피 편향이라나 그런 것이 있단다. 나는 100% 공감한다고 했다. 사람들이 맨날 유치하게 물어보는 '너 100억 주면 000도 할 수 있어?' 유형의 질문들에 나는 무조건 안 한다고. 왜냐면 어차피 나에게 없는 돈인데 굳이 할 필요가 없다고. 근데 만약에 '000를 안 하면 100억 빚이 생겨. 너 그럼 000 할 수 있어?' 나는 무조건 한다고. 빚 생기는 건 못 참는다고. 그러면서 차이나타운 얘기를 했다.


"차이나타운도 그래. 나는 맨날 안정적으로만 거래하면서 게임하니까 1등을 못해."


그러자 J가 나에게 말했다.


"근데, 대신 무조건 중간은 하잖아. 안정적으로."


사실 최고가 되는 것에 큰 욕심이 없다. 그래서 안정적으로 하면서 중간 정도만 하는 것 같다. 모든 분야에서 최고가 될 수도 없거니와 최고가 되지 않아도 되니까. 최고가 되기 위해 너무 애를 쓰면서 살지 않아도 되겠다. 하지만, 그래도 최고 근처까지는 가봐야 하지는 않을까?


코로나 이후로 오랜만에 우리 넷은 보드게임 카페를 찾았다. 처음 해보는 게임도 몇 가지 시도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우린 '차이나타운'을 꺼내 들었다. 역시나 차이나타운 보드를 펼치고 빌딩 카드를 선택하고, 타일을 나눠가지고, 가게를 짓고, 협상을 했다. 마지막 보드게임 '차이나타운'을 참을 수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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