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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12. 코인 노래방

'코인 노래방 못 참지!'

나는 노래 부르는 것을 정말 좋아했다. 노래에 대한 엄청난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재능이 매우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던 최초의 기억이 있다. 초등학교 저학년의 장용준은 '까치 글짓기'라는 교육기관을 통해 4인 그룹 글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했었다. 당시 재밌는 글쓰기들을 많이 했다. 동화 써보기, 나의 책 만들어보기 등(절대 두 가지밖에 떠오르지 않아서가 아니다.) 많았다.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당시 꾸러기라는 음료수가 있었는데(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간단히 말해서 어린이용 비타 500 같은 음료였다.), 이걸 사면 동요 테이프를 주었다. 카세트테이프로 이 동요들을 듣다가,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이라는 노래가 내 귀에 꽂혀버렸다. 아니 뇌 주름 어딘가에 아주 깊이 박혀버렸다. 이 날부터 나는 이 노래를 외우기 시작했다. 1절부터 4절까지 있었다. 심지어 4절은 절반가량이 더 있는 아주 엄청난 노래였다. 하지만, 이 곡의 클라이맥스가 주는 타격감이 초등학생의 나에게 이 노래를 외우게 하는 강력한 동기였다. 그렇게 글짓기 수업이 있는 날이 다가왔다. 지금 내 머리에 남은 기억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오늘은 몇 절 불러요?"라고 묻었고, 선생님께서 2절을 불러보라고 하셨다. "말목 자른 김유신, 통일 문무왕"으로 시작하는 다소 잔혹한 이 노래의 2절은 주로 통일신라 시대의 이야기를 다룬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친구랑 수업시간에 만화 주제가를 흥얼거리다가 선생님께 걸려서 칠판 앞에 서서 노래를 불렀던 일이 있다. 당시 TV에서는 닥터슬럼프라는 만화를 방영해주었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월화수목금토일 뻔한 일주일은 싫잖아! 싫잖아!'라는 가사만 머리에 남은 이 노래를 친구와 열창했다. 너무 짧다며 다른 것도 하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김현정의 '멍'이라는 노래와 돌려놔 춤을 곁들이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중학교 1학년이 되어서는 수학학원을 다녔다. 왕수학학원이라는 수학학원이었는데, 엄청난 체인을 갖고 있는 수학학원의 명가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중년의 아저씨였는데, 요로결석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으셨다는 것이 기억이 난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도 내가 칠판 앞에서 4명 정도의 친구들 앞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때는 싸이의 '챔피언'이라는 노래였는데, 랩을 전부 외웠다. 6학년 때 들었던 싸이의 '새'(당시 엽기 가수라는 뭔가 이상한 컨셉이 엄청 유행했다. 엽기 가수로 유명했던 가수로는 자두가 있다. '잘 가'라는 노래는 당시 엄청난 중독성을 가진 노래였다.)를 들었을 때는 관심이 없었는데, '챔피언'은 좋았다. 슬슬 랩에 눈을 뜨기 시작한 때였다. 


나는 안타깝게도 노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그때, 누나가 나에게 랩을 추천해줬다. MC 스나이퍼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였다. 아름다운 서울 청계천 어느 공장으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전태일을 다루며, 중2병이 다가오는 나에게 엄청난 영감을 주었다. 그렇게 나는 랩을 외우기 시작했다. 어쩌면 나에게 첫 힙합이었다. 그렇게 MC스나이퍼와 배치기, 에픽하이, 다이나믹 듀오, 리쌍 등의 가수들의 랩을 외우고 부르는 것을 즐기게 되었다. 고등학교 때는 MC용준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물론 랩 때문은 아니었고, 당시 스타크래프트가 엄청나게 유행을 했기 때문이었다. 스타리그의 캐스터 전용준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로 MC용준이라고 불렀다. 물론 지금까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은 없다. 요즘은 래퍼들도 랩 네임 앞에 MC를 붙이는 경우가 참 드물다. 


내성적이고 낯가림이 심한 나의 성격 때문에 한동안 사람들 앞에서(노래방을 갔을 때를 제외하고) 노래를 하는 일이 없었다.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나는 변하고자 생각했다. 사람들 앞에서도 말을 잘하고, 당당한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렇게 신입생의 패기로 학교 가요제에 참가했다. 드렁큰타이거의 '난 널 원해'라는 노래에서 랩을 맡았다. 혼자 참가한 것은 아니었는데, 아는 사람 한 명과 모르는 사람 한 명이 함께했다. 내 생각에 나는 랩을 잘했는데, 모르는 사람은 랩을 잘 못했다. 분명 그럴 것이다. 그랬을 것이다. 기억은 원래 나에게 유리하게 왜곡된다. 왜곡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 모르는 사람이 연습을 위해 함께 노래방을 갔을 때 나에게 '랩을 빠르게만 한다고 잘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대전에는 궁동이라는 곳이 있다. 충남대학교 옆에 있는 동네였는데, 대학교 근처라서 저렴하고 맛있는 곳이 많았다. 그중에서도 노래방이 특히나 저렴했다. 7시 이전에는 무려 1시간에 4,000원이었다. 7시 이후에는 가격이 올라갔다. 그런 노래방들 사이에서도 특히나 저렴한 곳이 있었는데, 나와 친구들은 그곳 단골이었다. 그러다 '알바'를 구한다는 사장님의 말을 듣고 바로 지원했다. 주말 12시부터 19시까지 일을 했다. 당시 시급 3,000원을 받으며 일을 했는데, 나에게는 아주 재밌는 기억이었다. 이 노래방은 7시 이전에 1시간에 무려 2,000원이었다. 중고등학생 손님들이 정말 많았고, 방을 어지럽히고 도망가는 학생들이 참 많았다. 


군대를 가기 직전에는 혼자서 가요제에 참여했다. 이번엔 랩이 아닌 락발라드였다. 당시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FT아일랜드의 '나쁜 여자야'라는 노래로 참여했다. 당시 열렬한 짝사랑을 겪으면서 엄청나게 감정을 이입한 노래였다. 열심히 MR을 준비하고 가사도 외우고 노래도 열심히 연습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노래방은 멜로디가 나오기 때문에 음정 박자를 맞추는 것이 얼추 되었는데, MR은 멜로디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기 좋게 박자를 놓치고, 본선 진출도 놓치고, 첫사랑도 놓치고, 그렇게 아무 이변 없이 군대를 갔다. 


성인이 되어서도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는 것을 참 좋아했다. 당시에는 다른 사람이 여러 가지 노래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1절만 부르는 것이 예의였다. 2절을 부르고 싶은 경우에는 노래방 리모컨에 있는 '절 점프' 버튼을 눌러야 했다. 물론 매번 그런 것은 아니었다. 편한 친구들과 갔을 때는 신경 쓰지 않고 끝까지 부르기도 했다. 노래방은 시간제였지만, 시간이 끝나기 전에 서비스로 10분, 20분 넣어주시는 것이 이 노래방을 재방문하는 의사결정에 아주 중요한 요소가 되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코인 노래방이 늘어갔다. 


이제는 혼자서도 노래방을 갈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예전에는 혼자 노래방을 가서 1시간을 할 자신도 없고, 부끄럽기도 했었다. 그렇다고 혼자 노래방을 간 적이 없진 않다. 여하튼 이제는 남의 눈치 보지 않고 1곡을 다 불러도 된다. 구차하게 사장님께 서비스 시간을 달라고 하지 않아도 된다. 내가 부르고 싶은 만큼 돈을 넣고 부르면 된다. 보는 사람도 없으니 다이나믹 듀오의 [빛이 훨씬 더커]를 틀어놓고, 내 랩에 심취해 고개를 끄덕거리며 랩을 해도 된다. 


자동차로 출퇴근하는 길이 꽤나 심심했다. 졸리기도 했다. 차에서 랩을 하면 좀 졸음이 가시지 않을까 해서 랩을 따라 부르려고 시도했다. 하지만, 가사를 몰라 따라 부를 수가 없었다. 내가 생각한 달리는 차 안에서 가사를 모르는 랩을 따라 부르는 방법은 가사를 통째로 외우면 되는 것이었다. 당시에 루피의 'Gear 2'라는 곡에 굉장히 몰두하고 있었다. 특히나 마지막쯤의 가사인 '너보다 세네 배쯤 쎄 이젠 Gotta take 해 그래 main stage 난 메이웨더 넌 패배가 뻔한데 왜 매일 rap 해' 부분이 너무 따라 하고 싶어서 열심히 외웠다. 정말 열심히 외웠다.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열심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별의 슬픔을 랩으로 승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차에서 부르는 'Gear 2'도 좋았지만, 코노에서 부르는 'Gear 2'도 좋았다. 멜로디를 '없음'으로 변경하면 약간은 나만의 멜로디로 랩을 할 수도 있다. 물론 큰 틀을 벗어나진 않지만. 이렇게 가사가 빼곡한 랩을 하고 나면 스트레스가 해소된다. 


혼자 가는 노래방은 외롭게 느껴지지만, 혼자 가는 코인 노래방은 외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특별히 누구를 만나지 않아도 코인 노래방은 갈 수 있다. 그래서 난 코인 노래방이 참 좋다. 작은 방 안에 마치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실컷 소리 지르고 나면 스트레스가 풀린다. 오늘도 퇴근길 보이는 코인 노래방 간판을 보며 생각한다. '코인 노래방 못 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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