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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10. 변신

더 이상 나는 변신을 참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너는 여자 친구 사귀려면, 패션을 바꿔야 돼."


충격적인 말이었다. 나는 나름 아주 멋있게 입고 갔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누나도 나에게 괜찮다고 했다. 내가 연애를 오랫동안 하지 못한 이유 중 하나가 패션일 것이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2014년 설날에 사촌 형들에게 들은 말은 아주 매운맛 조언이었다. 물론 주변 친구들도 자주 얘기를 해줬지만, 이렇게 직접적으로 들은 적은 없었다. 심지어 21살이 되었을 때, 한 번 큰 변신을 해서 지금은 꽤나 괜찮은 패션감각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내 패션에 대해서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설 연휴가 끝나고, 나는 대학교 기숙사로 돌아왔다. 당시에 학교 총무과에서 국가근로장학생을 하고 있었다. 방학 때도 근로를 할 수 있었기에 기숙사에서 지내면서 근로 장학생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날의 충격에 큰 결심을 했다. 그래. 일단 머리를 바꾸자. 매번 덥수룩한 머리를 하고 그저 생머리를 기르거나 파마만 하면 될 줄 알았던 머리를 용기를 내어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학교 근처에 새로 생긴 미용실에 들어갔다.


"투블럭으로 해주세요. 그리고 펌도 해주세요."


미용실 원장님은 나에게 이것저것 물어보시더니 알겠다고 하셨다. 그렇게 내 변신이 시작되었다. 나는 미용실 원장님을 믿어보기로 했다. 그리고 약 2시간 가까운 시간이 지난 후 거울을 보았을 때, 만족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주 이쁜 투블럭 펌이 완성되어 있었다. 그렇게 미용실을 나와 엘리베이터에 있는 거울을 보았다. 분명 머리는 마음에 들었는데, 뭔가 이상했다. 그래 안경이다. 이 멋진 머리에 어울리는 안경으로 바꾸자.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 L에게 연락을 했다. 안경을 바꾸려고 하는데, 함께 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L은 흔쾌히 나와 함께하기로 했다. 당시 유행하던 스타일이면서도 조금은 독특한 왕뿔테 안경을 골랐다. 아주 큰 뿔테라서 운동하거나 할 때 쓰기는 불편했으나 패션이란 것이 원래 그런 것이 아니겠는가. L도 잘 어울린다며 추천해주었다. 


기숙사에 돌아와 거울을 보니 바꾼 안경과 머리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전과를 하기 전 섬유패션디자인학과였던 친구 B에게 연락했다. 옷을 골라줄 수 있겠느냐고. 친구 B 역시 흔쾌히 수락했다. B는 나를 데리고 둔산동으로 나갔다. 나를 여기저기 데리고 다니며 옷을 골라주었다. 일단 기본적으로 유니클로에서 파는 회색 맨투맨을 기본으로 골라주었다. 여기에 깔끔한 바지만 입어도 꽤 괜찮다고 했다. 


"용준아. 이거 너꺼다."

"내 거라고?" 


검은색 코팅 진이었다. 꽤나 번들번들했다. 조금 부담스러웠다. 이런 패션에 도전해 본 적이 없어 당황했지만, 용기를 내 보았다. 


"나 같은 사람은 이런 거 못 입는데, 너는 말라서 이런 거 입으면 진짜 이쁘다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볼 것 같은데?"

"그건 부러워서 쳐다보는 거여."

"맞아?"

"어 맞어. 용준이 너는 이거 사야 돼." 


나는 코팅 진을 구매했다. 그리고 신발도 사기로 마음먹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변신하고 싶었다. 둔산동에 있던 ABC 마트를 들렀다. 


"용준아. 여기 너 신발 있다." 


B는 내 신발을 마치 신데렐라 유리구두 찾듯이 골라주었다. 


"여기서 이 신발이 제일 예쁘다. 내가 너라면 무조건 이거 산다."


그 신발은 나이키 볼텍스와 꽤 닮은 인터네셔녈리스트라는 신발이었다. 회색 바탕에 검은색 나이키 로고가 있는 깔끔한 신발이었다. 그렇게 나는 변신을 완성했다. 


당시에는 싸이월드를 지나 페이스북을 주로 하던 시기였다. 나는 하늘 사진을 찍는 것을 참 좋아해서 페이스북에 하늘 사진을 주로 올리곤 했다. 아니면, 학기 끝날 때 뭔가 고마웠던 일 같은 것을 써서 감성으로 도배하고 있었다. 꽤 많았던 페이스북 친구들은 안타깝게도 나의 게시물에 좋아요를 눌러주지 않았다. 물론, 스스로 연연하지 않는다고 합리화했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관심이 고픈 사람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인정해야 했다. 여하튼 변신이 끝나고, '변신'이라는 말과 함께 나의 셀카를 올렸다. 그렇다. 나는 셀카 찍는 것이 굉장히 어색했고,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리는 것이 아주 오글거리는 행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이 멋진 '변신'을 나만 알고 있을 수는 없었다. 


내 페이스북의 보통 게시물의 '좋아요'는 10개 내외였으나, 맙소사. 나의 셀카는 무려 30개를 받았다. 평소에 정말 정성을 쏟아 작성한 연말 감성글 보다 훨씬 높은 숫자였다. 그저 셀카 한 장과 '변신'이라는 단어 하나였는데. 그렇구나. 사람들에게 관심을 받으려면 자연과 감사의 글이 아닌 내 사진을 올려야 하는구나. 같은 쓸데없는 생각을 하면서 개강을 기다렸다. 개강하기 전, 하루는 같은 학과 동기였던 J와 학교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약속 장소로 향하는 도중 J를 마주쳤다. 반갑게 인사했다. 


"J야!" 


그러나 J는 나를 그냥 지나쳐 갔다. 


"J야!" 


나는 J의 팔을 톡톡 치며 다시 한번 J를 불렀고, 그제야 J는 나를 보고 놀랐다. 


"용준아! 와, 뭐야. 못 알아봤다." 


그 정도라고? 그렇게 심하게 변했다고? 성형을 한 것도 아닌데?라고 생각했다. 아니 친구도 못 알아볼 정도로 변했다고? 도대체 평소의 나는 어떠했던 것일까. 개강을 하고 나서는 학과 동기나 후배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확실히 달라졌다는 것이 느껴졌다. 자주 같은 조를 했던 후배 K는 이렇게 말했다.


"오빠! 제 동기들이 다 놀랬어요. 오빠 완전 용 됐다고." 


난 용이 된 걸까. 난 이무기였던 것일까. 총무과에서 함께 일하시는 선생님들 중 그래도 친하게 지냈던 선생님 한 분은 이렇게 말했다. 


"용준이 총무과 아이돌이네." 


난 아이돌이 된 걸까. 난 연습생이었던 것일까. 총무과에 우편물을 수령하기 방문하기 위해 방문하던 어떤 학과의 학생은 어느 날 나에게 펜과 종이를 빌렸다. 그리고는 이렇게 쪽지를 남기고 갔다. 


'안녕하세요. 올 때마다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했어요. 혹시 저와 커피 한 잔 하실래요? 괜찮으시다면 연락 주세요. 000-0000-0000' 


뭐지. 왜 순식간에 세상이 뒤집어졌지. 내 세상이 왜 뒤집어졌지. 이상한 일이었다.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래도 조금은 친하다고 생각했던 같은 학과 여자 후배가 있었는데, 평소에 조금은 퉁명한 후배였다. 먼저 인사를 하거나 하는 일이 거의 없었고, 친한 남자 선배들과는 하이파이브도 한다고 했지만 나에겐 전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던 후배였다. 그 후배와 어떤 강의를 같이 듣게 되었는데, 강의 첫날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갑게 인사를 하고는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했다. 나는 당황했지만 하이파이브를 했다. 기분이 썩 좋지는 않았는데, 또 한편으로는 통쾌하기도 했다.


체육대회에서 학과 대표로 농구시합에 나갔을 때도 달랐다. 물론 우리 과 학생들은 2012년, 2013년 모두 열심히 응원을 해주었었다. 우리 과가 단합은 또 기가 막혀서 응원이 끝내줬다. 경기를 뛰는 내내 내가 공을 잡는 순간이 오면 내 이름을 아주 크게 외쳐주었다. 그럼 정말 힘이 났다. 그래서 스포츠 경기들을 보면 홈경기가 유리하다는 말이 정말이라고 생각했다. 여하튼, 성적은 2014년이 3위로 제일 좋지 않았다. 하지만 나에 대한 반응은 가장 좋았다. 나에게 와서 사인을 해달라는 후배들도 있었다. '아니 내가 무슨 선수도 아니고 무슨 사인!'이라고 생각했지만 친절하게 사인을 할 도구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악수라도 해주세요!" 


그렇게 여러 후배들과 악수를 했다. 어떻게 불과 몇 개월 사이에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이렇게 달라질 수 있지? 2013년엔 심지어 우승을 했는데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학과생활을 별로 하지 않았던 나를 친근하게 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변신 이후 사람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 분명 나의 내면은 그대로인데, 껍데기만 바꿨을 뿐인데 그렇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뭔가 판타지를 겪은 것 같은 기분이다. 처음으로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받았던 시기였다. 모든 환경이 처음 겪는 신기한 시기였다. 그래서, 남들이 나에게 '너의 리즈는 언제였냐?'라고 물으면 고민 없이 2014년이다.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도 마케팅이었다. 아무리 내가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상대방이 나를 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으면 알려줄 수가 없는 것이었다. 일단은 나에게 호감이 생기도록 해야 했고, 그중 아주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패션이었다. 그렇게 호감이 생겨야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나는 사실 나의 본질을 잘 보여주려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고, 그저 남들이 나의 본질을 몰라준다고 투정을 부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더 이상 나는 변신을 참으면 안 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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