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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9. 괜찮아

아직은 '괜찮아'를 참기 힘드니까.

"괜찮아." 


괜찮다는 말을 참 많이 한다. '그럴 수 있지'와 세트로 많이 활용하는데, 내가 괜찮다고 말하는 모든 순간이 괜찮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건 괜찮다. 문제는 정말 괜찮은 순간과 그렇지 않은 순간을 나 스스로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다. 그건 정말 위험하다. 내가 정말 괜찮은 건지, 아니면 괜찮고 싶은 건지, 그것도 아니면 괜찮지 않은데 상대방의 기분을 생각해서 괜찮다고 하는 건지.


연애를 하는 동안에도 그랬다. '괜찮아.'라는 말이 습관처럼 붙어있었다. 스스로 정말 괜찮다고 생각하는 때도 많았지만, 분명 그렇지 않았을 때도 나는 괜찮다고 했을 것이다. H와 100일을 맞아 작은 파티룸을 빌려 데이트를 했었다. 우리는 각자 서로를 위한 선물을 준비했다. H는 기념일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특히 생일과 100일, 1년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했다. 우리는 치킨을 시켜 먹으며, 함께 양모펠트 인형을 만들었다. 그리고 서로에게 선물을 건네주었다. 우리의 편지는 서로 상반된 내용이었다. 그녀는 내가 좋은 이유를 열거했다. 어떤 이유들 때문에 내가 좋은 지를 기록한 편지였다. 나는 이제 어떤 이유를 따로 떠올리지 않아도 H가 좋다고 썼다. 그녀는 내 편지를 읽고 울었다. 나는 당황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는 그녀를 안아주며 '괜찮아.'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말했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건 감동의 눈물이야." 


나는 왜 괜찮다고 했을까. 지금 와서 생각하면 나는, 그녀의 눈물을 미안함의 눈물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녀가 준 선물은 사용했던 것 같은 종이봉투에 담겨있던 홍삼이었다. 앞으로 건강도 중요하다며 건넨 선물이었다. 나는 계속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녀가 언제라도 나에게 이별을 말할 것 같아서. 그녀의 연락에서 느껴지는 온도가 나를 불안하게 했다. 그렇지만 내가 괜찮다고 말하지 않으면 정말로 그 일이 일어날 것 같아서, 아마도 나는 괜찮다고 했겠다. 


사실 괜찮지 않았다. 그녀와의 연락이 점점 나를 불안하고 외롭게 했음에도 나는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의 선물이 사실은 성의가 없다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고맙다고 했다. 내가 그 자리에서 그 선물을 성의 없지 않냐고 말해버리면 일어날 것 같은 일이 무서웠을지 모른다. 나는 여자 친구가 준 선물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그 정도도 이해해주지 못하는 남자가 되는 것이 두려웠을지 모른다. 속으로는 적절한 선물을 고르지 못했는데, 집에 있는 홍삼을 보니 '건강을 위한 선물'이라는 의미를 부여해서 주면 되겠다고 생각해서 집에 있는 적절한 사이즈의 종이가방에 담아 건네준 선물이라고 생각해서 서운했으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내가 참 비겁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의 감정에 솔직해서 괜찮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그녀에게 괜찮지 않다고 말했으면 달랐을까.


S와 이별할 때도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그녀에게 크리스마스날 나에게 카드 한 장 써달라고 부탁했다. 그녀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까지 밤마다 드라마를 보느라 바빴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그녀에게 전화를 하면 그녀가 드라마를 보고 있었고,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전화를 끊어야 하는 날이 점점 늘어났다. 그녀가 나를 보기 위해 인천을 오는 일이 1년에 하루밖에 되지 않았고,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었다. 그렇게 크리스마스가 되어 나는 선물을 준비했고, 그녀가 나에게 선물을 주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그날 감기에 걸려 있었다. 대전 복합터미널에서 만난 그녀는 내 선물을 보자 자신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며, 이 선물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다. 그날 함께 만날 그녀의 친구 커플 앞에서 보여줄 수 없다고 했다. 친구의 남자 친구가 괜히 위축될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내가 받다고 말했던, 그녀의 크리스마스 카드는 없었다. 그날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속으로는 '어떻게 매일 드라마 볼 시간은 있는데, 나에게 그 짧은 크리스마스 카드를 쓸 시간이 없을 수가 있지?'라고 생각했으면서도 나는 괜찮다고 했다. 나는 성인군자가 아닌데, 괜찮지 않은데, 그래도 괜찮다고 했다. 괜찮다고 말해야 된다고 생각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날이었다. 그녀와 데이트를 하고 집에 돌아와 통화를 했다. 최근 그녀의 태도에 서운하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가 울기 시작했다. 미안하다고. 울었다. 돌이킬 수는 없었다. 나는 여전히 괜찮다고 말했다. 


"괜찮아. 이제 그만하자고 해도 괜찮아."


내 말을 들은 그녀가 잠시 뒤 말했다.


"그만하자." 


괜찮을 리가 없었다. 그녀가 아니라고 말하길 바랐다. 그만하고 싶지 않다고. 그렇게 말해주길 바라면서 괜찮다고 했다. 난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여전히 내 진심은 꽁꽁 숨긴 채 비겁하게 그녀에게 이별을 떠넘겼다.


친구 J와 H가 일산에 놀러 왔다. 나는 친구들에게 양갈비를 사주고 싶었다. 아주 기가 막힌 양갈비 집을 알고 있으니까. 내가 일이 끝나기 전에 도착한 친구들이 먼저 와서 카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일을 마치고 친구들을 찾아 카페에 도착했을 때, 친구 J가 말했다. 자기가 찾은 고깃집이 있다고. 거리를 보니 차를 타고 20~30분 정도 가야 했다. 나는 여기도 고깃집 맛있는 곳 있다고 이 근처로 가자고 했다. 퇴근시간이라 차도 많이 밀릴 것이라 설득했다. 그러다가 태국 음식 이야기가 나왔다. 평점이 꽤 높은 맛집이었나 보다. 


"장용, 태국 음식 괜찮아?"

"응. 괜찮지." 


그때, 친구 H가 말했다. 


"괜찮기는, 용준이 태국 음식 안 좋아하던데. 다른 거 먹자."

"나 괜찮아. 태국 음식."

"아니야. 저번에 먹으러 갔을 때 보니까 거의 안 먹더만." 


친구 J가 말했다. 


"그래? 그럼 다른 거 먹자."

"용준이가 말한 거기 가보자. 양갈비 집."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자신 있게 말했다. 그냥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좋았을 말을 했다.


"그래. 기왕 일산까지 왔는데. 맛있는 거 먹자. 여기 '성심어린'이라고 기가 막힌 양갈비 집이 있어." 


나도 모르게 괜찮다고 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나 보다. 사실 태국 음식이 별로 당기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주 싫은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양갈비를 사주고 싶었는데 왜 말을 하지 못했을까. 친구 H가 아니었으면, 아마 난 태국 음식을 먹었을 것이다. 덕분에 알게 되었다. 나는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하고 있었구나 지금까지. 그전까지는 진짜로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는 양갈비 집에 갔고, 맛있게 먹었다. 누구도 불만 없이.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걱정이 된다. 이 글을 읽고 나서 나를 만나는 사람들은 나의 '괜찮아'를 온전히 괜찮다고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 나는 연습하고 노력해야 한다. 내 사람들이 나의 '괜찮아'를 정말 괜찮다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내 감정에 솔직해져야 한다. 확실히 표현해야 한다. 내 사람들이 헷갈리지 않도록 해야 한다. 모든 감정은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최소한 나의 감정을 최대한 정확하게 전달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예의다. 그러나 여전히 내 사람들에게 참지 못하고, 괜찮지 않은 '괜찮아'를 내뱉을지도 모른다. 아직은 '괜찮아'를 참기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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