냄비 한 가득 담긴 엄마의 카레가 참을 수 없이 맛있었다.
"엄마 어디 가세요?"
"왜?"
"카레 하셨길래요. 엄마 어디 가실 때 꼭 카레 하시잖아요."
이렇게 얘기하면 어머니께서 멋쩍게 웃으신다. 보통 이렇게 큰 냄비에 카레를 잔뜩 해놓으실 때면 멀리 여행을 가신다. 집을 며칠 비우실 때면 집에 있는 두 남자가 걱정이 되시는 모양이다.
"안 해 놓으면 밥 안 먹잖아."
"밥을 왜 안 먹어요. 제 나이가 몇인데. 알아서 챙겨 먹죠."
"그러니?"
네. 그럼요. 물론 어머니께서 카레를 해 놓으시면 나는 밥을 아주 잘 먹는다. 나는 삼시세끼 카레를 먹을 수 있다. 보통 아침밥을 잘 안 먹는데, 카레가 있으면 아침에도 밥을 먹는다. 다른 반찬도 딱히 찾지 않는다. 카레랑 밥만 딱 먹는다. 어머니의 카레에는 뭔가 다른 점이 있는 것 같다. 사실 엄청 특별한 요리 방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그냥 내가 카레를 너무 좋아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 맛있다. 3분 카레와 다른 담백하고 건강한 맛이 참 좋다. 이러니 어머니께서 항상 카레를 해 놓으실 수밖에 없겠지. 내가 너무 잘 먹으니까.
나에게 카레는 집에서 카레가루를 사용해 만든 어머니의 카레뿐이었다. 그러나 대학생 때, 일본식 카레를 접하고 나서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었다. 처음 일본식 카레를 접한 것은 대전에서였다. 대전 탄방동에 있는 '미세노센세'다. 내가 제일 사랑하는 일본식 카레집이다. 매운 일본식 카레를 메인 메뉴로 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사케도 마실 수 있다. 매장의 크기는 크지 않다. 대기를 하는 경우도 있다. 지금 네이버에 찾아보니 백종원의 3대 천왕 77회에 출연했다고 한다.
여기서 처음 먹은 일본식 카레가 잊히지 않는다. 요즘 대전을 자주 갈 수 없지만, 대전을 가게 된다면 꼭 먹고 싶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입에 침이 고인다. 일산에서 일을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비꼬'와 '코코이찌방야'를 접하게 되었다. 기본 카레와 토핑을 추가하여 먹을 수 있는 일본식 카레집들이다. 회사 점심시간이면, 자주 찾았다. 요즘은 회사 점심식대를 넘어서는 가격으로 인해 자주 방문하진 않지만, 내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식 카레를 지나서는 인도 커리를 맛보게 되었다. 동대문에 있는 '에베레스트 레스토랑'에서 처음 인도커리를 맛보게 되었다. 지하 3층에 있는 이 식당을 찾아가는데 조금 길을 헤맸지만, 보람은 있었다. 너무 맛있었으니까. 난을 카레에 찍어 먹기도 하고, 우리가 먹는 쌀과 달라 새로운 식감이었다. 뭔가 더 질퍽한 느낌이 나는 것 같았다. 향신료의 향도 내 혀를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우리 회사의 Y형은 못 먹는 음식 중 하나로 카레를 꼽았다. 어릴 때 먹던 3분 카레가 너무 싫어서 카레를 싫어한다고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식 카레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형 괜찮아요? 못 먹는다고 하지 않았어요?"
"사실, 못 먹는 건 아닌데. 한 번 먹어보려고요."
그렇게 함께 '아비꼬'로 향했다. 그리고 첫 입을 먹고 난 후 나와 눈이 마주쳤다.
"맛있는데요? 이걸 왜 안 먹었지?"
하고는 맛있게 먹었다.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동료들과 함께 나눌 수 있어서도 분명 이유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렇게 Y형에게 카레는 못 먹는 음식에서 자주 먹지 않는 음식으로 한 단계 상승했다. 여전히 3분 카레는 먹지 못한다.
나는 3분 카레가 원래 어머니께서 해주시는 카레와 맛이 같은 줄 알았다. 대학교 기숙사에서 3분 카레에 햇반을 돌려 먹던 시절이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주신 카레가 정말 맛있었다는 것을. 비슷한 음식으로는 김밥이 있다. 어머니께서 만들어 주신 김밥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김밥이다. 이 김밥에는 특별한 요리법이 있다고 하셨다. 근데 정말 정성이 제일 가미된 음식이기도 하다. 어머니의 김밥은 두툼하고 맛있다. 나는 소풍 가는 날을 참 좋아했다. 수업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바로 어머니의 김밥을 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김밥은 원래 소풍날이나 되어서야 먹을 수 있는 특별한 음식이었지만, 김밥천국과 같은 분식집이 생기면서 가성비가 좋은 음식이 되었다. 물론 지금은 프리미엄 김밥이 많이 생기면서 김밥 한 줄에 국밥 한 그릇 가격을 내고 먹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하튼 김밥을 밖에서 사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어머니의 김밥이 얼마나 맛있는 김밥인지 알게 되었다. 분식집에서 김밥을 시켰는데, 뭔가 재료들이 전부 따로따로 인 느낌을 많이 받았다. 나는 김밥이 원래 이렇게 밋밋하고 푸석한 음식인가 싶었을 정도였다.
내가 군대에 있을 때의 일이다. 나의 보직 때문에 주말에도 24시간 대기하는 상황근무를 서야 할 때가 있었다. 아버지의 휴무날과 함께 맞춰 어머니께서 면회를 오시기로 하셨는데, 내 근무 날과 겹친 것이었다. 그때 나의 선임이었던 J형이 나의 면회시간 동안 대신 근무를 서주기로 했다. 근무를 하면 컴퓨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는데, 해야 할 작업이 있다며 흔쾌히 근무를 대신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무사히 면회를 할 수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면회 날이면 항상 음식을 잔뜩 싸오셨다. 그것도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로 온통 가득 채워서 말이다. 전복죽, 피자, 회, 김밥 등등 거의 매번 다 먹지 못하고 남기기 일쑤였다. 하지만, 이렇게 먹고 싶은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면회 날이 참 좋았다. 그날은 김밥을 싸오셨는데, 깔끔한 종이상자에도 소분하여 가져오셨다. 먹고 나서 어머니께서 근무를 교대해준 선임을 가져다 주라며 남은 김밥을 건네주셨다. 나는 그 김밥을 들고 상황실로 복귀했다. 아직 식사를 하지 않았던 J형은 고맙다고 하며 김밥을 먹었다. J형은 정말 말도 없이 김밥을 흡입했다. 그러더니 감탄사를 뱉으며 나에게 물었다.
"와, 이거 진짜 맛있다. 이거 어디서 사 온 거야?"
"저희 어머니께서 직접 만드셨습니다."
"진짜? 와, 이 상자에 들어있어서 파는 건 줄 알았어. 진짜 너무 맛있는데?"
하고는 꽤 많이 들어있었던 김밥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먹었다. 괜히 내 어깨가 쫙 펴지는 기분이었다. 확실히 맛있는 음식이 맞았구나. 나만 맛있다고 느낀 것이 아니었구나.
최근에 어머니께서 장을 보고 오셔서는 냉장고에 이것저것 집어넣고 계셨다. 어머니께서 내 방으로 향하던 나와 눈이 마주치셨다. 손에 든 3분 카레를 냉장고에 집어넣으시고 계셨다.
"여기 3분 카레 있으니까 해서 먹어라."
"엄마 어디 가세요?"
"아니."
"근데 웬 카레?"
"아니, 엄마가 토요일에도 일 하니깐."
"아, 밥 못 챙겨 먹을까 봐요?"
하고는 웃었다. 어머니의 눈엔 내가 아직도 혼자 있으면 라면만 먹던 중학생 같은가 보다. 근데 진짜 혼자 있을 때 라면을 끓여 먹는다. 평소에 안 먹으니까 이럴 때 먹어야지 같은 심보인데, 이러니 어머니께서 걱정하시지 싶다. 하지만 요즘은 어머니께서 나의 끼니를 걱정하셔도 큰 소용이 없다. 너무 약속이 많아 집에서 밥을 안 먹기 때문이다. 가끔 내가 늦게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아들이냐?"
"네. 다녀왔습니다."
"이러다 아들 얼굴 잊어버리겠어."
나는 멋쩍게 그냥 방으로 들어가곤 한다. 독립하기 전, 내가 부모님과 함께 사는 동안에라도 좀 더 부모님께 얼굴도 자주 비추고 시간도 자주 보내면 좋으련만. 다음 주말에는 꼼짝 말고 3분 카레를 먹으며 집을 지켜야겠다. '카레는 못 참지!'라는 핑계라도 좀 대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