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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15.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

그래,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는 참을 수 없지!

연수동에는 BYC 사거리라 불리는 사거리가 있다. 우리 집에서 연수고가차도를 건너 동춘동으로 향하는 길에 있는 큰 사거리다. 이곳에는 꽤나 큰 BYC가 있는데, 그 큰 BYC 덕분에 이 사거리는 BYC 사거리로 불렸다. 그리고 이 BYC 건너편 건물의 사거리 쪽 모서리(1층에서도 가장 비싼 자리일 것이다.)에는 배스킨라빈스가 있다. 내가 더 어릴 때는 연수동에 있는 유일한 배스킨라빈스였다. 내가 이 배스킨라빈스에서 일을 시작한 지 4개월쯤 지났을 때였다. 배스킨라빈스에서 BYC 쪽을 바라보면 거리 안 쪽에 있는 건물들이 보였는데, 그중 아주 잘 보이는 위치의 건물에 아주 큰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주짓수 체육관이 들어선 것이었다. 나는 격투기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왜소하고 작은 체구이다 보니 힘에 대한 갈망이 더욱 컸다. 하지만 그만큼 열정이나 지식이 있지는 않았다. 난 주짓수 체육관에 들어가 상담을 받기 전까지 주짓수가 타격기인 줄 알았을 정도니까. 여자가 남자를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무술이라는 말에 엄청난 타격 기술이 있는 줄 알았다. 엽문의 영춘권이라던가 하는 그런 느낌으로다가 말이다. 그렇게 입관 상담을 받으러 갔다. 관장님께서 나에게 주짓수가 어떤 운동인지 알고 있냐고 물어보셨고, 나는 모른다고 했다. '앞으로 배우게 될 주짓수는 스포츠 주짓수다. 도복을 입고 하는 운동이고 쉽게 생각하면 유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된다. 상대와 더 좋은 포지션을 두고 겨루는 운동이다. 체급이 낮아도 체급이 높은 사람을 이길 수 있는 운동이다.'라며 설명해주셨다. 나는 바로 등록했고, 당장 오늘부터 운동을 하겠다며 의지를 불태웠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오늘은 수업이 없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한다고 말씀하셔서 어쩔 수 없이 집으로 갔다.


첫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너무 선명한 기억이라 날짜도 기억한다. 2015년 5월 4일 월요일 오전 11시였다. 배스킨라빈스에서 주로 오후 3시에 출근을 했던 덕분에 나는 오전부를 등록할 수 있었고, 내가 다니는 체육관의 첫날 첫 수업의 첫 관원이 되었다. 첫 수업에 참여한 관원은 나를 포함해 총 5명이었다. 나와 비슷한 체급은 한 명도 없었다. 관장님을 따라 모두 스트레칭을 하며 몸을 풀었다. 관장님의 첫 수업은 '헤드락 디펜스'였다. 상대가 나에게 헤드락(레슬링에서 팔로 상대의 머리를 감싸는 잡기 기술)을 걸었을 때, 상대를 넘어뜨린 후 빠져나가는 기술이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었지만, 그중에서 한 가지 기술이 기억에 남는다. 오른손으로 상대의 오른쪽 어깨를 잡고 왼쪽 손으로 상대의 왼쪽 다리의 오금을 치면서 몸을 기울여 상대를 넘어뜨린 후 상대를 압박하여 감고 있는 팔을 풀고 탈출하는 것이었다. 나보다 30kg 이상 나가는 사람을 넘어뜨리고 빠져나갈 수 있다는 것이 나에게 너무나 기적적인 일이었고, 상대의 헤드락에서는 빠져나왔지만, 주짓수에서는 빠져나올 수 없었다.


스포츠 주짓수에서 상대방을 이기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더 많은 점수를 얻어 승리하는 방법과, 상대의 기권을 받아 승리하는 방법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상대의 기권을 받아 승리하는 방법을 좋아했다. 물론, 대부분이 그럴 것이다. 상대에게 탭(기권의 의사표현으로 손으로 바닥이나 상대의 몸을 치거나, 손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서는 입으로 표현하기도 한다.)을 받을 때 그 짜릿함이 있다. 장기로 치면 외통수 같은 것이고, 유도로 치면 한판승 같은 것이다. 상대에게 탭을 받을 수 있는 기술들이 아주아주 많다. 가장 많이 나오면서, 가장 기초적이고, 강력한 기술이 암바와 트라이앵글 쵸크이다. 그래서 체육관에서도 이 두 가지 기술을 참 많이 연습했다. 나는 주짓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다. 나보다 늦게 들어온 관원들에게도 좋은 포지션을 자주 빼앗기고 탭도 많이 쳤다. 체육관에서 내가 스파링에서 이길 수 있는 관원들은 거의 없었다. 하루는 관장님이 함께 기술 연습을 하자고 하셨다. 정규 수업시간이 아니었지만, 운동하고 싶으면 같이 하자고 하셔서 나는 흔쾌히 하겠다고 했다. 암바를 시도하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영상으로 보고 갔다. 관장님과 암바를 시도하는 기술 드릴(한 가지 동작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방식)로 2시간 동안 체육관 바닥에 땀을 적셨다.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하루 전에는 내가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던 상대에게 관장님과 드릴을 한 다음날은 5분 동안 무려 7번이나 탭을 받았다. 7번 모두 암바였다. 그때, 드릴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깨달았다. 어떤 기술을 완벽히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반복해서 연습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어떤 기술을 완벽히 구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반복해서 연습했을지 생각했다.


주짓수의 벨트는 보통(학생들은 옐로나 그린도 있더라.) 다섯 가지로 나뉜다. 화이트, 블루, 퍼플, 브라운, 블랙 순이다. 그리고 각 벨트마다 네 개의 그랄로 단계를 나눈다. 즉, 화이트 4 그랄이 되면 다음 승급엔 블루벨트가 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꼭 그 순서를 따르는 것도 아니다(물론 거꾸로 가는 경우는 없다). 때로는 블루벨트 2 그랄이었던 사람이 스승의 판단하에 퍼플벨트가 되기도 한다. 즉 관장님이 원하면 승급을 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는 물어본다. 그러면 아무나 블루벨트가 되고, 아무나 퍼플벨트가 되는 것 아니냐고. 나는 그 질문에 대해 오히려 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주짓수는 결국 누군가와의 시합을 통해 자신의 실력을 증명하게 된다. 즉 사람마다 주관적으로 상대의 실력을 가늠하게 되는데, 이 주관적인 의견들이 생각보다 하나의 지점으로 수렴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엄격하게 기간을 기준으로 15개월 하면 블루벨트가 된다거나 하는 것보다, 관장님의 축적된 경험과 주관적인 시선으로 블루벨트를 받는 것이 그 사람의 실력을 평가하는 데 있어 더 정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련한 시간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가르친 스승님이 나를 인정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승급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보고자 한다.


우리 체육관은 승급에 인색한 편이었다. 다른 체육관의 동 기간 수련생에 비해 그랄이나 벨트가 더 낮은 편이었다. 그 때문인지 다른 체육관에서 오픈 매트(주짓수를 수련하는 다른 체육관의 사람들도 함께 모여 수련하는 것)로 우리 체육관을 방문하면 유독 당황스러워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강력한 화이트벨트는 아니었다. 특히나 나는 그런 강력한 화이트벨트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더욱 나의 승급이 부담스러웠다. 체육관의 개관 멤버이기도 했고, 오래 다니기도 해서 체육관의 유일한 4 그랄 화이트벨트였음에도, 블루벨트가 되는 일은 부담스럽기만 했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주짓수를 시작해 블루벨트를 받게 될 친구들도 사실은 받고 싶으면서도 조금은 부담스러워했다.


"난 아직 화이트 2 그랄한테도 맨날 탭 치는데. 무슨 블루냐 내가."


같은 자조적인 문장을 뱉는 경우도 많았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4번의 대회를 출전해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했다. 승급식은 다가오는데, 내 실력은 계속 머물러 있는 것 같았다. 난 아직 블루벨트를 받을 마음의 준비도 실력의 준비도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블루벨트가 되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책임감이 생겼다고 할까? 화이트벨트인 관원들이 나에게 뭔가 물어보거나 했을 때, 잘 알려주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스파링을 할 때 무조건 이겨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상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움직여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실력이 더 좋아졌다. 벨트의 색이 나의 실력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지만, 나에게 책임감을 주기도 했다. 성취감도 주었고, 더 열심히 배우는 동기도 주었다. 내가 멈추지 않도록 동력을 주었다.


나는 가드(주짓수에서 상대보다 아래의 위치에서 상대를 넘어뜨리거나 서브미션을 받아낼 수 있는 포지션)를 잘하는 편이 아니었고, 그렇다고 가드패스(상대의 가드 포지션을 뚫어 내는 행위)를 잘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도 나에게는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가 있었다. 특히나 잘하는 것은 내가 불리한 상황에서 시도하는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다. 기습이면서 동시에 도박 같은 기술이다. 나의 가드가 뚫려 사이드 포지션을 빼앗겨있을 때 시도하는 기술이다. 보통 사이드 포지션을 빼앗기면 상대방에게 서브미션을 당할 수도 있고, 니온밸리 등에 의해 대량 실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빼앗기면 안 되는 포지션이다. 근데, 이 불리한 상태에서 역으로 상대방에게 서브미션을 받아 내는 것이다. 이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로 넘어가기 전에 다른 기술을 시도할 수도 있다. 보통은 사람들이 쓰지 않는 기술이다.


'아메리카나'라는 기술이 있다. 키락이라고도 하는데, 열쇠 돌리듯이 상대 팔을 돌려버리는 무서운 기술이다. 보통 사람들은 사이드포지션을 선점한 후에 상대의 팔을 잡아 돌린다. 근데 나는 이 기술을 사이드포지션을 빼앗겼을 때 시도하고, 심지어 팔이 아닌 다리를 사용해 시도했다. 처음 이 기술을 성공시킨 것은 나와 운동을 함께 시작했던 S와의 스파링에서였다. S에게 사이드포지션을 빼앗겨 강력한 압박을 당해 숨을 쉬기 힘든 상황이었다. 근데, 문득 내 다리에 S의 팔이 어찌어찌 얽혀 있었고 꺾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S에게 처음 이 기술을 성공시켰다. 우리 체육관 사람들은 전부 처음 당하는 이 기술에 나에게 한 번씩은 당했다. 관장님은 나에게 이 기술을 되도록이면 시도하지 말라고 하셨다.


"용준아 우선은 사이드포지션을 뺏기지 않도록 해야 돼."


관장님 말씀이 옳았다. 나도 최선을 다해 가드를 유지하려고 했지만, 여지없이 사이드 포지션을 빼앗겼다. 그렇게 되면 나는 참지 못하고 여지없이 이 기술을 시도했다. 나도 이 기술을 쓰고 싶지 않았다. 뭔가 치트키 같은 느낌이랄까. 이런 기술을 써도 되나 싶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관장님께서 이 기술을 계속 쓰라고 하셨다. 어떤 날은 세부적인 부분을 여쭤보시며 영상을 촬영하시기도 하셨다. 아마도 관장님의 생각이 바뀌게 된 것은 아직 화이트벨트였을 때, 부평 본관에서 합동훈련을 했을 때였을 것이다. 당시 블루벨트였던 분과의 스파링에서 내가 이 기술을 사용했다. 그때, 팔을 꺾는 기술을 시도한 후에 다리의 위치를 바꾼 후에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를 시도했다. 그분이 쵸크에 당해 나에게 탭을 쳤다. 물론 그 이후로 내가 5번 정도는 탭을 쳤을 것이다. 여하튼 그 장면을 관장님께서 보시고 생각을 바꾸셨다고 한다. 그리고는 아메리카나 느낌인데, 한국에서 시작했으니 '코리아나'라고 하자며 이름도 붙여주셨다. 그렇게 우리 체육관 사람들도 나의 기술을 '코리아나'라고 불러주었다.


이 기술은 내가 드릴을 해서 연습한 기술이 아니다. 사이드포지션을 빼앗긴 후, 나의 생존 본능이 알아낸 기술인 것이다. 드릴을 해서 내 것으로 만든 기술이 아님에도 주짓수를 자주 하지 않는 지금도 몸이 기억하는 기술이다. 분명 드릴을 통해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렇지만 그만큼 실전에서 시도해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도 생각해보게 되었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연습을 많이 해도 실제 스파링에 들어가면 하던 기술만 시도하는 편이다. 내 삶도 그렇게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도전보다는 안정을 선택하는 삶. 마음은 도전을 선택하면서도, 몸은 안정을 선택하는 삶. 내 삶에도 코리아나를 갖고 싶다. 코리아나가 실패했을 때 바로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로 전환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갖고 싶다. 그래, 리버스 트라이앵글 쵸크는 참을 수 없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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