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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이건 못 참아] 16. 일산호수공원

퇴근하고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는 일은 아주 참기 힘드니까!

나는 달리기를 정말 못하는 어린이였다. 그래서 달리기를 싫어했다. 초등학교 운동회 때는 모든 학생이 반드시 50미터 달리기를 해야만 했다.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부 다. 아마도 초등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4살 차이가 나는 우리 누나는 무려 6학년이었다. 초등학교 2학년인 남동생이 더운 날씨에 달리기를 하기 위해 줄을 서 있었다. 바로 나다. 내 차례가 조금씩 다가오는 동시에 우리 누나도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달고 차가운 아이스크림을 나에게 주고 갔다. 아마 문방구에서 파는 이백 원짜리 쭈쭈바였을 것이다. 나는 그 달고 차가운 것을 다 먹지도 못한 채 내가 달릴 차례를 맞이해야 했다. 한 손에는 반 정도 먹은 쭈쭈바를 들고 열심히 뛰었다. 꼴찌였다. 달리기는 내가 참 싫어하는 운동이었다. 


나에게 아이스크림을 건네주었던 우리 누나만큼 커서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을 때의 일이다. 이 날도 체육대회 날이었다. 6학년은 반 전원(무려 42명)이 전부 달리는 이어달리기를 했다. 총 8개 반 중 4개 반이 결승에 진출했고, 그중 한 반이 우리 반이었다. 규칙은 남녀가 운동장 절반을 번갈아가면서 이어달리기를 하는 것이었다. 순서가 키 순서였는지 번호 순서였는지 여하튼 내가 생각보다 중간 순서였다. 긴장되는 순간인데, 어느새 내 차례가 되었다. 그때 우리 반은 4명 중 꼴찌였다. 내가 바통을 잡았을 때, 다른 반의 바통 터치가 매끄럽지 않았다. 그렇게 내가 2등까지 치고 올라간 것이다. 두 명을 제치고 2등으로 바통을 넘겨주었을 때, 그 짜릿했던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다.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 반은 다시 뒤처져서 4등이 되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여자 선생님이었지만, 체육이 전공이었다. 마지막 한 바퀴는 담임선생님이 달려야 했다. 마지막 바통을 받은 우리 선생님이 두 명을 순식간에 지나치고 마지막 순간에 1등이 되기 직전 넘어지셨다. 그렇게 우리 반은 2등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 반 친구들은 성난 황소처럼 날뛰면서 좋아했다. 모래사장에 모인 우리 반 친구들은 선생님을 들어 헹가래를 거행했다. 아마, 이때부터 달리기가 좋다고 느끼기 시작했던 것 같다. 


중학교를 갔더니 1년에 한 번은 반드시 10km 달리기를 해야 했다. 우리 학교의 오랜 전통이라고 했다. 1학년 때였을까, 당시 마라톤 코스는 우리 학교에서 시작해서 동막역을 거쳐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아마 10 km 까지는 되지 않았을 것 같다) 것이었다. 처음엔 친구들과 같이 수다도 떨면서 천천히 걸으면서 다녀오자 했지만, 중간을 지나고 나자 욕심이 생겼다. 반환점 이후부터는 참 열심히 쉬지 않고 달렸다. 기록이 좋진 않았지만, 내가 쉬지 않고 달렸다는 것이 놀라웠다. 3학년 때는 인천대공원을 달렸다. 정문에서 시작해서 후문을 거쳐 다시 정문으로 돌아오는 코스였던 것 같다. 이 때도 처음에는 친구들과 천천히 달리다가 반환점부터 쉬지 않고 달렸던 것 같다. 참 싫어하는 운동이었던 달리기가 그래도 꽤나 할 만한 것이 되었다.


21살이 되어서는 군대를 가게 되었다. 다른 친구들처럼. 더운 6월에 입대했다.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군대에 가니 나는 근력은 부족한 편이었지만, 체력은 꽤나 좋았다. 논산훈련소에서는 왠지 훈련장도 멀었고, 종교활동도 멀었고, 전역도 멀었다. 완전군장을 하고, 훈련장으로 걸어가야 했는데, 수류탄 훈련을 하기 위해 걷던 날이었다. 소대장님이 걷고 있던 나를 불렀다. 나는 훈련병답게 우렁차게 대답했다. 


"백사십팔번 훈련병! 장! 용! 준! 네!"

"자네는 체력이 굉장히 좋구먼.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았어."

"감사합니다!" 


다들 그렇게 걷는 줄 알았더니 아니었던 모양이다. 괜히 체력에 대한 자부심이 꿈틀 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의 체력을 시험해볼 수 있는 3km 달리기를 하는 날이 다가왔다.  각 소대별로 출발하여 3km 달려 생활관까지 돌아오는 코스였다. 나는 빠르게 뛰는 것보다는 일정한 속도로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소대가 먼저 출발하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속해있던 3소대가 출발했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다들 너무 빨랐다. 내가 체력이 정말 좋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좋은 기록은 포기하고 그냥 내 속도로 꾸준히만 달리자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꾸준히 달려갔다. 점점 나보다 뒤처지는 훈련병들이 보이더니, 어느새 내 앞에 있는 훈련병이 없었다. 나도 놀라웠다. 처음에 그렇게 빨리 나갔던 훈련병들은 어느새 지쳐서 뒤처져 있었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생활관이 보였다. 한 200m 정도 남은 것 같았다. 생활관과 함께 2소대에서 먼저 달렸으나 아직 도착하지 못한 훈련병들이 걷고 있는 모습도 보였다. 나는 전력질주를 시작했다. 그 훈련병들이 뒤돌아보더니 적어도 3소대 훈련병보다는 빨리 들어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뛰기 시작했다. 그러나 내가 더 빨랐다. 그렇게 3명 정도를 지나고 나서 생활관에 도착했다. 우리 소대의 조교였던 병사가 나에게 숫자 1이 적힌 작은 종이를 주었다. 내가 1등이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1등을 해 본 적 없었다. 그런 나를 처음으로 1등으로 만들어 준 달리기를 나는 꽤나 좋아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나는 농구 때문에 달리기를 잊고 있었다. 주짓수 때문에 달리기를 잊고 있었다. 하지만, 점점 인스타그램에서 보이는 달리기 인증 사진들과 주변 사람들을 보면서 달리기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만 갔다. 작년부터 함께 일을 시작하기 시작한 직장동료 중 한 명과 대화를 하다가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분은 달리기를 엄청 좋아했고, 마라톤 대회도 자주 나갔었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지낼 때도 마라톤 대회를 참여했었다고 했다. 나는 그 말에 힘을 얻어 퇴근 후 달리기를 제안했고, 흔쾌히 함께 뛰기로 했다. 그렇게 우리는 일산호수공원을 달리기 시작했다. 


일산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면 5km가 조금 안 되지만, 일산문화광장에서부터 달리기 시작해서 육교를 지나 일산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면 5km가 된다. 우리들은 일산문화광장에서 몸을 풀고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엔 30분 안에만 들어오자가 목표였는데, 점점 그 시간이 줄었다. 목표는 25분 안에 들어오는 것이다. 최근 연이은 장마와 무더위를 핑계로 일산호수공원을 달리지 않았다. 그래도 일요일마다 농구를 하고, 격주 토요일 만다 주짓수를 하고, 가끔은 우리 동네의 공원을 달리면서 체력을 유지하고 있다. 달리기를 하면 사실 힘들다. 달리다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있다. 근데, 그걸 이겨내고 끝까지 달렸을 때 느끼는 성취감이 너무 크다. 내가 목표한 시간 안에 5km를 달려내는 성취감이 아주 크다. 그래서 달리기를 참을 수 없다. 장마와 열대야가 끝나는 날, 다시 일산호수공원을 달릴 거다. 퇴근하고 일산호수공원을 달리는 일은 아주 참기 힘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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