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시어 글쓰기'를 참지 못하고, 또 사람들을 모아 본다.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타고난 글쟁이도 아니고, 글을 잘 쓰기 위해 딱히 노력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글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동경을 보내곤 했다. 그런 내가 두려움을 극복하고 글을 쓰게 만든 모임이 있다. '제시어 글쓰기'다.
2년 전, 당시 꽤나 열심히 활동했던 커뮤니티가 있었다. 정기 모임 외에도 여러 가지 활동을 자유롭게 기획하고 즐길 수 있는 아주 좋은 커뮤니티였다. 하지만, 낯가림이 심한 나는 정기모임 외의 다른 모임을 참여하기엔 용기가 부족했지만 결국 극복하고 정기모임 외의 모임을 신청했다. 첫 글쓰기 모임은 서로가 가져온 사진을 보고 떠오르는 글을 쓰는 모이이었다. 짧은 시간에 짧은 글을 써냈고, 반응이 좋았다. 더욱 용기가 생긴 나는 두 번째 글쓰기 모임을 도전했다. '제시어 글쓰기'였다.
규칙은 아주 운명적이면서 동시에 과학적인 방법을 통한 것들이었다. 아래에 설명을 붙이겠다.
준비물
1) 글을 쓸 도구(노트, 랩탑, 태블릿, 스마트폰 등)
2) 제시어를 선정할 책
3)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
순서
1) 각자가 가져온 책을 오른쪽 사람에게 넘긴다.
2) 책을 받은 사람은 해당 책에만 있을 것 같은 제시어를 3개 선정한다. 이때, 제시어는 명사여야 하며, 수식이 붙은 명사도 좋다.
ex) '야채 볶음밥' 혹은 '야채가 들어가지 않은 야채 볶음밥'
3) 나눠준 쪽지에 각 제시어를 적어, 2번씩 접는다.
4) 3개의 제시어 쪽지를 오른쪽 사람에게 넘긴다.
5) 쪽지를 받은 사람은 쪽지를 열지 않은 상태에서 무작위로 한 장을 내려놓는다.
6) 내려진 쪽지 중 4개의 제시어를 선택한다.
7) 4개의 제시어가 모두 들어간 글을 쓴다. 글의 종류는 뭐든 좋다.
일정
13:00 ~ 13:30 인사 및 제시어 선정
13:30 ~ 16:30 글쓰기
16:30 ~ 17:00 글쓰기 추가시간 및 마무리
17:00 ~ 18:00 감상
일정은 제시어 글쓰기에 참여한 사람 수에 따라 변동될 수 있다. 약 2년간 여러 차례 제시어 글쓰기를 참여해본 결과, 약 4명이 참여했을 때가 체력적으로 가장 적절했다. 처음 참여했을 당시에는 7명이 정원이어서, 감상 시간이 굉장히 길었다. '제시어 글쓰기'에 내가 빠진 이유는 이런 규칙 때문만은 아니다. 감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모임을 주최하셨던 J님께서 첫날 감상을 시작하기 전에 이렇게 말씀해주셨다.
"우리는 전문적인 글을 쓰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로의 글에서 좋은 점을 발견해주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장점을 더욱 발전시키는 것이 어쩔 때는 단점을 보완하는 것보다 더 좋은 효과를 내기도 합니다."
그렇게 나는 서로의 글에서 단점보다는 장점을 주로 보게 되었고, 그렇게 하다 보니 서로의 글에서 배울 점도 보게 되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글을 처음 보였을 때의 부끄러움을 잊을 정도로 좋은 피드백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날이 내가 처음으로 완성된 단편소설을 쓴 날이었다. 이후에는 내가 먼저 J님께 '캐릭터 글쓰기', '공간 글쓰기' 등을 제안하였고, 다른 분께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의 첫 문장으로 글쓰기'를 개최하시기도 하셨다. '제시어 글쓰기'를 통해서 여러 가지 글쓰기가 파생되었고, 코로나가 심해지기 전에 정말 많은 글을 썼다. 많다는 것은 물론 나의 주관적인 기준이지만, 어찌 되었든 많이 썼다.
나는 제시어 글쓰기 때 단편소설을 썼다. 어떤 이야기를 떠올리고, 글로 옮기는 일이 참 재밌었다. 마치 어릴 때, 장난감들을 내려놓고 각자의 역할을 정해주고 놀았던 때가 떠올랐다. 어떤 장난감은 악당이 되기도 했고, 배신자가 되기도 했고, 어떤 날은 용사가 되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소설 속에서 주인공을 만들고, 시련을 만들고, 장소를 만들고, 반전을 만들고 하는 것, '제시어 글쓰기'는 나에게 하나의 놀이였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이렇게 재밌게 참여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글쓰기가 모두 끝나면 뿔뿔이 흩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한 곳으로 모여 감상을 나눈다. 처음 감상을 할 때, 내 글을 보여주는 것이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과연, 이렇게 쓴 글을 보여주는 것이 맞나?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하면 어쩌지? 재미없다고 하면 어쩌지? 말도 안 된다고 하면 어쩌지? 등등 많은 걱정들이 내 머릿속을 떠다녔지만 지금은 이런 걱정들을 하지 않게 되었다. 제시어 글쓰기의 묘미다. 서로가 쓴 글을 단톡방에 올린 순서대로 읽고 순서대로 감상을 한다. 감상할 때 항상 먼저 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작가님의 말씀'이다. '작가'라는 말이 참 부끄러우면서도 또 괜히 기분 좋은 말이다.
"그럼, 먼저 작가님의 말씀을 들어볼까요?"
진행자가 이렇게 말하면 글을 쓴 작가는 이 글에 대해서 소개해주고 싶은 내용을 간단히 소개한다. '작가님의 말씀'이 끝나면, 작가님의 오른쪽 사람부터 순서대로 작가님의 글을 읽은 감상을 공유한다. 그 시간이 참 영롱하고, 쑥스럽고, 아름답다. 글에 대한 감상이 모두 끝나면, 그날의 제시어 글쓰기에 대한 감상을 공유한다. 처음 만난 작가님의 글은 새로운 느낌의 글이라 참 좋고, 다시 만난 작가님의 글은 익숙한 느낌이지만 새로운 글이어서 참 좋다. 나는 이런 따뜻한 글쓰기를. '제시어 글쓰기'를 참지 못하고, 또 사람들을 모아 본다.
※ 부록으로 제시어 글쓰기에서 쓴 단편소설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