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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꾸준 Oct 28. 2022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온다.

2022-09-12(월)_제시어 글쓰기

제시어

- 광화문

- 신비로운 청록색

- 창조의 신비

- 가볍고 초라한 부메랑






아빠가 낡은 서류 가방을 들고 집에 들어왔다. 하루 종일 나는 아빠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빠와 공을 차기로 했기 때문이다. 해가 지고서야 아빠가 집으로 돌아왔다. 아빠의 표정은 읽을 수 없는 오묘함이 있었다. 


"아빠! 공 차러 가자!" 


아빠는 귀엽다는 듯 내 머리를 빠르게 쓰다듬으시고는 웃었다. 


"그래, 공 차자." 


아빠는 낡은 서류 가방을 방에 던져 놓고는 신발장에서 축구공을 꺼냈다. 


"아빠 옷 안 갈아입어?"

"괜찮아. 내일부턴 이 옷 안 입을 거야." 


아빠의 셔츠엔 점심에 먹었을 김치찌개의 것으로 보이는 흔적이 조금 묻어 있었고, 세 번째 단추의 실은 모두 풀려 단추가 떨어지기 직전이었다. 


"엄마한테 혼날 텐데."

"괜찮아. 진우야. 얼른 신발 신어! 나가자!" 


나는 황금색 축구화를 꺼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축구화였다. 



-



아빠는 회사를 관뒀다. 회사가 아빠를 담지 못한다나. 낡은 서류 가방은 방 한구석에 덩그러니 놓인 채, 다시 자신을 들고나갈 아빠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엄마는 이제 아빠의 셔츠를 다림질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아빠와 더 많이 공을 찰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회사를 관둔지 얼마 되지 않아 아버지는 부메랑에 빠져버렸다. 


"진우야. 부메랑을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가 뭔지 알아?" 


나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저 축구를 하고 싶었다.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오거든. 내가 정말 멀리 던져도 다시 돌아오게 되어있어." 


드라마 천국의 계단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부메랑을 던지며 '사랑은 돌아오는 거야'라는 명대사를 남겼던 그 장면이다. 


"아빠. 진짜 던지면 돌아와?"

"그럼! 물론이지!" 


축구를 하러 나왔기 때문에 나는 아빠의 손에 들려있는 부메랑이 거슬렸다. 부메랑 따위 던지면 던지는 족족 사라져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근데 괜히 진짜 돌아오는지 궁금해졌다. 


"아빠! 한 번 던져봐!" 


아빠는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세를 잡았다. 두 다리를 벌리고는 오른손으로 부메랑의 한쪽 끝을 잡았다. 그러고는 왼쪽 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쭉 디디면서 오른손에 들렸던 부메랑을 허리를 돌려 앞쪽으로 던졌다. 아빠의 손을 떠난 부메랑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며 공중으로 날아갔다. 


"오와!!" 


부메랑이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감탄을 했다. 부메랑은 멀리 날아가더니 나무가 울창한 공원의 숲으로 들어가 사라져버렸다. 


"아빠? 부메랑 언제 돌아와?" 


나는 숲에 들어간 부메랑이 과연 어떻게 다시 돌아오는지 궁금했다. 인공지능을 가진 부메랑이 아빠가 손을 촥 펼치면 돌아올까? 아빠는 나를 바라보고는 잠깐만 기다리라고 했다. 그러고는 부메랑이 떨어진 숲으로 뛰어갔다. 나는 가만히 서서 숲으로 달려가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숲으로 들어간 아빠가 손에 부메랑을 들고 걸어 나왔다. 


"봤지? 돌아오는 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그 부메랑을 아주 소중히 가방에 넣었다. 


"이제 공 찰까?" 


나는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



아빠는 KBS1에서 방영된 부메랑 다큐멘터리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퇴사를 한 아빠가 소파에 누워 여유롭게 TV를 보면서 채널을 돌리다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온다.>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였다. 


제1부 부메랑의 탄생

제2부 부메랑의 비행

제3부 부메랑의 귀환 


총 3부작으로 구성된 다큐멘터리였다. 부메랑의 탄생 과정부터 부메랑이 활용된 사냥 방법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사람들이 즐기는 부메랑을 다룬 내용이었다. 아빠는 이 다큐멘터리를 비디오테이프에 녹화를 하신 후 하루에 꼭 한 번씩은 보셨다. 아빠는 내가 학교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김없이 이 다큐멘터리를 보고 있었다. 


"아빠, 축구하러 가자." 


아빠는 내 말 한마디에 바로 TV를 끄고 축구공을 꺼냈다. 나도 책가방을 방에 던져놓고, 황금색 축구화를 꺼냈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면, 아버지의 가방에 들어간 부메랑도 함께 했다는 것이다. 


-



어느 날부터는 아빠가 직접 부메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문방구에서 파는 플라스틱 부메랑은 아빠의 손을 떠난 후로 다시 아빠의 손으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다큐멘터리에서 본 것을 토대로 재료를 구해 오셨다. 어느 날은 동네 뒷산에 있는 나무를 잘라 오셨다. 그러고는 베란다에서 톱으로 열심히 갈고닦고 하시더니 얼추 부메랑 모양의 형태를 만들어내셨다. 


"진우야. 어떠냐? 얼추 부메랑 같지?"

"응. 이 부메랑은 던지면 돌아와?"

"한 번 확인해 보러 나갈까?" 


아빠는 팔을 들어 이마의 땀을 닦고는 해맑게 웃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축구공과 황금색 축구화를 챙겼다. 공원까지 걸어가는 길에 아빠는 부메랑의 역사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호주의 원주민들이 사냥을 위해 사용하던 도구였으며, 영어 발음은 원래 부머랭인데, 사실 딱히 정해진 발음은 없고 한국에서는 그냥 부메랑으로 읽는다고 했다. 목표물을 맞추지 못하면 다시 돌아오는 사냥 도구였다고 했다. 


"반드시 돌아오는 건 아니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목표물을 맞춘 거니까." 


아빠의 눈이 참 빛났다. 공원에 도착한 우리는 공터에 섰다. 아빠는 다리를 살짝 벌리고 자세를 잡았다. 아빠의 나무 부메랑이 노을빛에 붉게 물들었다. 아빠는 허리를 살짝 비틀었다. 왼쪽 다리를 들었다가 앞으로 쭉 내밀면서 허리를 돌리며 나무 부메랑을 던졌다. 쉬이익 소리를 내며 부메랑이 하늘로 날았다. 그러고는 공원의 숲으로 사라져버렸다. 아빠는 나에게 잠시 기다리라고 하고는 숲으로 달려갔다.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곧 돌아온 아빠의 손에 나무 부메랑이 들려 있었다. 


"목표물을 맞췄어."

"목표물이 뭔데?"

"숲." 


숲을 노리셨구나. 그래서 돌아오지 않았구나. 


-



아빠는 여러 가지 형태의 부메랑을 만들기 시작했다. ㄱ자 부메랑을 만들기도 하고, 십자 모양의 부메랑을 만들기도 했다. 아빠의 부메랑 사랑이 신기해 나도 부메랑에 빠지기 시작했다. 아빠를 따라서 부메랑을 만들기도 했다. 내 손에 맞도록 나는 좀 더 작게 만들었다. 아빠는 우리가 만드는 부메랑은 리터닝 부메랑이라고 했다. 사실 모든 부메랑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했다. 그냥 던지는 손도끼처럼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고, 크고 단단하게 만들어 둔기로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 리터닝 부메랑은 돌아온다고 했다. 반드시. 


아빠는 1달간 공들여 깎아 만든 부메랑에 색을 칠했다. 약간 고려청자의 느낌이 나는 신비로운 청록색의 부메랑이 되었다. 그리고 부메랑에 이름을 붙였다. 


"광활히 날아가는 부메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이 부메랑의 이름을 '고려'라고 불러라 진우야. 마치 광개토 대왕이 영토를 확장하듯이!"

"광개토 대왕은 '고구려'야 아빠."

"고려가 고구려의 뜻을 이었으니깐, 그게 그거지." 


그럼 그냥 대한민국 하지 아빠.라고 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끄덕이기로 했다. 아빠는 뿌듯한 듯 신비로운 청록색 도색이 된 부메랑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올렸다. 왠지 신기한 그 부메랑은 반드시 돌아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진우야. 한글날에 아빠랑 같이 광화문 갈까?"

"광화문 왜?"

"전 세계적으로 부메랑을 기념하는 행사를 하는데, 올해는 한국에서 그 행사를 개최하거든. 부메랑 페스티벌인데, 호주 원주민들이 실제 사용한 부메랑도 전시하고 부메랑 전문가들이 실제 목표물을 맞추는 시범도 보여준대. 부메랑 만들기랑 던지기도 체험할 수 있고. 재밌겠지 진우야?"

"응 재밌겠다." 


아빠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말을 했다. 


"그리고, 부메랑 던지기 대회도 개최한다고 해서. 나가보려고. 두 가지 종목인데, 하나는 얼마나 오래 떠 있다가 돌아오는지를 경쟁하는 '롱 플루트' 그리고 또 하나는 목표물을 정확히 맞추는 '타겟팅' 이야. 아빠가 만든 부메랑으로 한 번 나가보려고. 진우 너도 네가 만든 부메랑으로 도전해 보는 게 어때?" 


나는 재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번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빠는 나를 잠시 바라보더니 말했다. 


"그럼 오늘부터 특훈 할까?" 


오늘은 축구공을 꺼내지 않았다. 오늘은 황금색 축구화를 꺼내지 않았다. 내가 만든 부메랑을 들고나갔다. 아빠랑 공원으로 향하는 길에 부는 바람은 앞에서 불었다가 곧 다시 뒤에서 불어왔다. 마치 부메랑처럼.



-



아빠가 던진 '고려'는 오래도록 하늘에 떠 있다가 아빠의 손으로 돌아왔다. 목재로 만든 묵직한 부메랑은 아빠의 손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아빠의 손은 붉어져있었다. 


"장갑도 있어야겠다 진우야."

"내 건 작아서 괜찮아." 


아빠의 멋지고 우람한 청록색의 부메랑 '고려'에 비하면 나의 '누구인가'라는 그저 작고 초라한 부메랑이었다. 나는 '누구인가'를 힘껏 던졌다. 하지만 날지 못하고 금방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설계가 잘못되었을까. 아니면 내가 만든 것은 부메랑이 아닌 걸까. 아니면, 땅을 목표물로 인식한 걸까. 아빠는 이번엔 접이식 테이블을 펼쳤다. 그리고 그 위에 500미리 생수통을 올려 두었다. 그리고 대충 뒤로 물러났다. 꽤 거리가 멀어진 후에는 다른 부메랑을 꺼내들었다. 그것은 '타겟팅' 종목에 참가하기 위해 새로 제작한 부메랑 '조선' 이었다. 아빠는 역사는 잘 몰라도 역사는 사랑했다. 아빠는 조금 다른 자세를 취했다. 약간 야구공을 던질 때 취하는 포즈를 취한 아빠는 '조선'을 냅다 던져버렸고, '조선'은 생수병을 완벽하게 벗어나서는 멀리 숲속으로 날아갔다. 아빠는 숲으로 뛰어갔다. 나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의 '누구인가'라는 '롱 플루트' 종목에는 부적합해도 어쩌면 '타겟팅' 종목에 최적화된 부메랑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나도 아빠가 던진 곳 비슷한 지점에서 '누구인가'를 던졌다. 나의 '누구인가'라는 아까와는 달리 힘차게 날아가서는 생수병이 놓인 테이블 다리에 부딪혔다. 테이블 다리도 박살 나고 내 부메랑 '누구인가'도 박살 났다. 아빠가 숲에서 '조선'을 들고 돌아왔을 때 박살 난 나의 부메랑과 테이블 그리고 눈물을 글썽이는 내가 앉아있었다. 



-



"여보. 아파트 대출한 거 어떻게 갚으려고 이래?"

"퇴직금 있잖아."

"퇴직금으로는 쥐꼬리만큼도 못 갚아. 그리고 생활도 해야 하잖아. 내가 버는 돈으로는 힘든 거 알잖아. 진우 내년에 중학교 가는데, 다른 애들 다 학원 보내는데. 무슨 돈으로 학원 보내게? 지금 당장이야 퇴직금 받은 거 아껴 쓰면 되겠지. 앞으로는 어떻게 하려고?"

"다 계획이 있어. 큰 그림이 있다고."

"무슨 계획, 무슨 큰 그림! 말을 해 봐. 우리 부부잖아! 그런 큰 계획은 다 공유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게, 좀. 말로 하기 좀 그래."

"그래? 그럼 내가 종이랑 펜 줄 테니까 그림으로 그려봐." 


엄마는 아빠에게 종이와 펜을 들이밀었다. 아빠는 그런 뜻이 아닌 거 알지 않냐는 눈빛으로 엄마를 바라보았지만, 화가 잔뜩 난 엄마는 오히려 더 매서운 눈빛으로 아빠를 바라보았다. 


"나 그림 잘 못 그리는 거 알잖아..." 


엄마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빠를 노려보면서 턱으로 종이를 가리켰다. 아빠는 조금 주눅 든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아빠는 '진짜 그려?' 하는 눈빛으로 엄마를 다시 바라보았다. 


"빨리 안 그려? 당신 몸에 그림 그려줘?" 


하면서 엄마는 부엌으로 걸었다. 


"알았어 여보! 그릴게! 그린다고!" 


엄마는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빠는 탁자 위에 있는 종이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엄마는 어떤 그림 그리나 지켜보았다. 조금이라도 엄마가 납득되지 않는 그림을 그리면 가차 없이 아빠 몸에 그림을 그릴 태세였다. 아빠는 곡선을 크게 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쭉 연결해서 그림을 그렸다. 마치 일본 열도를 그리는 것 같았다. 


"왜? 일본 가려고?"

"아니..." 


아빠는 조금 더 자세히 그리기 시작했다. 그것은 분명 부메랑이었다. 엄마에게는 비밀이었던 것이었다. 부메랑은 엄마에게 비밀이었던 것이다. 


"부메랑인데... 부메랑 프로페셔널리스트가 되려고."

"뭐.. 뭐? 부메랑? 그거 하면 먹고 살 수 있어?"

"응. 그게 국제자격인데, 자격을 획득하면 전문적으로 사냥도 하고 할 수 있어."

"사냥...? 사냥이라고 했어?" 


엄마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빠의 등짝을 쌔게 때렸다. 아빠는 묵묵히 앉아서 등짝을 맞았다. 짝짝짝! 소리가 크게 나고 나서는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났다. 엄마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러고는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빠는 문 앞에서 서서 조용히 엄마를 불렀다. 


"여보... 여보...? 문이 잠겼네...? 여보?" 


여전히 방문은 열리지 않았고, 그날 아빠는 소파에서 잤다. 나는 내 방 옷장에 잘 접혀진 얇은 여름 이불을 꺼냈다. 날이 좀 선선해져서 이 이불로는 추울 것 같지만, 그래도 아예 덮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아빠는 나에게 엄마랑 싸워서 미안하다고 하고는 얼른 들어가서 자라고 했다. 나는 괜히 방문을 닫지 않고 잠에 들었다. 



-



한글날이 되었다. 아빠는 아침에 일어나서 만발의 준비를 했다. 장갑도 챙기고 청록색의 부메랑 '고려'와 표적용 부메랑 '조선'도 챙겼다. 혹시 몰라 준비한 예비용 부메랑인 '신라'와 '백제', '고구려'도 챙겼다. '고려'랑 '고구려'는 같은 거라고 하지 않았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마실 물과 입장권 2장, 그리고 휴지와 물티슈, 연고와 반창고 등 여러 가지를 챙겼다. 나도 내 가방에 지난번에 부서진 부분을 테이프로 붙인 '누구인가'를 집어넣었다. 아빠와 나는 지하철을 타고 광화문광장으로 향했다. 3호선을 타고 40분 정도를 이동했다. 경복궁역에 도착하니 시간이 9시가 조금 넘었다. 행사장에는 조금씩 사람들이 붐비기 시작했다. 외국인들도 많이 있었다. 행사장 입구에는 '창조의 신비, 부메랑의 탄생'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었다. 


행사장의 왼쪽으로는 천막 아래에 부메랑 관련 전시물이 가득했다. 아빠가 말했던 호주 원주민이 처음 사용했던 부메랑도 볼 수 있었다. 용도에 따른 부메랑들이 잔뜩 있었는데, 그중에는 아주 큰 부메랑도 있었다. 거의 1M는 되는 것 같았다. 이 부메랑은 마치 만화 이누야샤에서 산고가 던지는 '비래골'이 떠올랐다. 실제로 사용하는 부메랑은 아니고 장식용이라고 했다. 십자 모양의 부메랑도 많았고, 원반 형태의 부메랑도 있었다. 가장 잘 날아가는 형태를 찾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시도를 했던 과정들도 있었다. 부메랑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미니어처로 표현한 것도 있었다. 미니어처를 보니 괜히 섬뜩했다. 실제 사람들이 어떤 저주를 받아서 미니어처가 되어 어떤 세력에 의해 수집되어 가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서 더 그랬다. 반대쪽에는 기념품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핸드메이드로 만들어진 부메랑 모양의 열쇠고리, 키링, 책갈피 등 다양한 것을 팔았다. 실제 부메랑을 팔기도 했다. 플라스틱부터 시작해서 나무, 알루미늄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아빠와 행사장을 한 바퀴 돌면서 대회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김철수 씨 맞으세요?" 


진행요원은 아빠에게 이름을 물어본 후 종이에 뭔가를 적은 후에 아빠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여기에 사인해 주시고요, 참가번호 14번입니다."

"총 몇 명이나 참가했나요?"

"30명 참가했어요." 


다른 표정을 지을 줄 모르는 사람처럼 처음과 같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김진우 씨?"

"네." 


진행요원은 나에게도 아빠에게 내밀었던 종이를 내밀었다. 나는 싸인 대신 내 이름을 종이에 적은 후에 참가번호 15번이 적힌 작은 종이를 받았다. 


"이따가 대회 시작되기 전까지 대회 참가 부스로 오셔야 해요. 저기 파란색 천막 보이시죠? 저기서 대기하시면 됩니다."

"몇 시에 대회 시작하죠?"

"11시입니다." 


아빠와 나는 다시 전시장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갖고 싶은 거 있냐고 물었다. 나는 아까 소품 중에 부메랑 모양 열쇠고리가 갖고 싶었다. 아빠와 함께 기념품 가게에 갔다. 아빠는 마음에 드는 것을 고르라고 했다. 나는 아까 봐두었던 하얀색 부메랑 모양의 열쇠고리를 골랐다. 


"열쇠도 없는데 어디에 쓰려고 진우야?"

"그냥. 갖고 싶어서." 


열쇠는 없지만, 그래도 갖고 싶었다. 뭐 정 걸어둘 데가 없다면 책가방에라도 걸겠다. 아니면 부메랑 가방에다 걸어도 좋겠다. 아빠는 지갑에서 5천 원짜리 지폐를 꺼내 점원에게 건넸다. 점원은 3천 원을 거슬러 주었다. 기념품 가게를 나와 대회 부스로 향했다. 파란색 천막에는 이미 대기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중에는 외국인도 있었다. 우리가 앉은 자리 옆에 외국인 앉았다. 흰색 피부에 큰 키, 그리고 파란색 눈, 팔에 빼곡하게 난 털, 갈색 수염. 그 외국인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너, 어려. 몇 살?" 


나는 당황했다. 열세살이라고 하려다가 괜히 학교에서 나도 영어 좀 배웠다고 생색내고 싶었다. 


"썰틴!"

"와우! 대단해!" 


외국인은 나에게 주먹을 불끈 쥐며 파이팅을 크게 외치고는 다시 자기 할 일을 했다. 나도 씩 웃으면서 파이팅을 외쳤다. 대회가 곧 시작된다는 방송이 나왔다. 아빠의 표정에서 전에 없던 긴장한 얼굴이 보였다. 엄마에게 등짝 맞기 전에 종이에 부메랑 그리던 아빠의 표정과 흡사했다. 


"신사! 숙녀! 여러분! 대한민국에서 이 행사를 개최할 수 있게 되어 너무나 영광스럽습니다. 저는 이 행사의 진행을 맡게 된 대한민국 부메랑 협회 회장 전회전입니다. 거꾸로 해도 전회전 똑바로 해도 전회전. 전회전 인사드립니다." 


목소리가 굉장히 큰 할아버지였다. 본인의 이름으로 말장난을 구사하는 것이 상당히 재밌어서 나는 크게 웃었다. 아빠를 보니 아빠는 전혀 웃지 않았다. 아빠도 그런 농담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면 긴장을 너무 한 건가. 전회전 회장은 열심히 이 대회의 의의와 자신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대한민국에 부메랑을 들여오는데 자신이 거의 문익점이나 다름없다며 본인의 자랑을 실컷 늘여놓았다. 그러고는 최연소 참가자가 있다며 나를 단상으로 불렀다. 


"김진우 학생은 몇 살이에요?"

"13살이요."

"어떻게 이 대회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아빠랑 같이 부메랑 던지다가 참여했어요."

"부메랑 던진지는 얼마나 되었어요?"

"2달이요."

"좋아요. 좋은 성적 거두길 바랄게요!" 


전회전 회장님은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단상 아래로 슬며시 밀어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부메랑을 처음 던졌을 때의 나이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늘여 놓았다. 우리 옆에 앉아 있던 외국인은 잠에 들었다. 아빠는 여전히 기장한 표정이었다. 이마에는 땀이 몽글 맺혀 있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나서야 대회가 시작되었다. 다른 사람들이 열심히 부메랑을 던졌다. '롱 플루트' 종목에서 드디어 아빠 차례가 되었다. 아빠의 부메랑이 하늘을 날았다. 하늘에 청록색 곡선을 그리며 '고려'가 하늘을 날았다. 한참을 멀리 날아갔던 부메랑이 아빠의 손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니 괜히 내 가슴이 웅장해졌다. 아빠의 부메랑이 이 대회에 참가한 누구의 부메랑보다 가장 많은 시간을 하늘에 떠 있었다. 


"아빠, 1등이야!"

"그래." 


아빠는 로봇 같았다. 고장 난 로봇처럼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어서 진행된 '타겟팅' 종목에서는 아빠의 '조선'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저 멀리 날아가 버렸다. 대회의 순위는 두 종목의 종합점수를 계산하여 정했다. 아빠는 '롱 플루트'는 1등을 했지만, '타겟팅'에서 실격을 하는 바람에 아쉽게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나는 '롱 플루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해 아쉽게도 순위권에 들지 못했다. 


"아빠, 아쉽다. 다음에도 또 하자!"

"그래. 대한민국에서 이 행사가 언제 또 개최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열심히 연습하자."

"응!" 


나는 아빠의 두꺼운 손을 잡았다.



-



"여보. 다녀올게!"

"응, 조심히 다녀와!" 


아빠는 부메랑 행사가 끝난 후에 다시 회사로 복귀했다. 지난번에 다닌 회사와는 다른 회사였지만, 직장인으로 복귀한 것이다. 엄마는 이제 다시 울지 않았다. 아빠는 등짝을 맞지 않았다. 다시 낡은 서류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는 아빠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나는 그런 아빠가 마치 목표물을 맞추지 못하고 아빠의 손으로 돌아왔던 신비로운 청록색의 부메랑 같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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