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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밝은꽃쌤 Feb 10. 2019

모든 생명은 정말 다 소중한 거 맞지요?

내 가족도, 반려견도, 길냥이도...?

2017년 11월, 대한민국은 지진 공포에 휩싸였다. 11월15일 경북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 때문이었다. 2016년 경주 지진에 이어 1978년 본격 지진 관측 이래 두번째로 규모가 큰 지진으로 역대 가장 많은 피해가 발생한 지진이었다.


한번도 가본 적 없는, 멀고도 먼 포항에서 발생한 지진인데 나 역시 교실에서 방과후 업무를 하다 진동을 느꼈고 이내 큰 두려움을 느꼈다.

'방금 이게 뭐지? 혹시...'

라고 생각한 순간, 옆반 선생님이 뒷문을 열고 우리 교실로 뛰어들어왔다. 그 선생님 얼굴을 본 순간, 나도 같은 표정일 거란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지진이 정말 무서웠다.


한참이나 서로 무서움을 토로하다 이내 직시한 현실은

'내일 아이들에게 지진대비 안전교육을 어떻게 하지?'

였다.
그간 대한민국은 이 정도의 지진 피해를 겪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에 준하는 지진대비 안전교육을 할만한 교수.학습 자료가 마땅치 않았다.

'당장 내일 1교시에 꼭 해야 하는데 이거 큰일이네.'


고민으로 끙끙 앓다 다음날 출근해 보니 친한 친구 선생님의 친절한 쪽지가 와있었다.

<어제 너무 무서워 이것저것 검색하다 알게된 책이에요. 역시, 일본은 지진이 잦다보니 이런 책도 나와있더라구요. 현실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내용에 만화같은 구성인데 심지어 한글판이 있고 PDF 파일을 무료로 다운 받을 수 있었어요. 오늘 활용하시라고 공유해 드립니다.>

이름하여 '도쿄방재'

상황에 맞는 단계별 대피요령과 주의사항, 이해를 돕는 삽화들은 보면 볼수록 고개가 끄덕여지는 현실적 내용들이었다. 나는 지진을 직접 겪어본 적 없지만 그 책만 봐도 일본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지진을 겪으며 이 노하우들을 축적해왔는지 알 수 있었다.


나는 1교시부터 PDF 파일 채로 지진대비 안전교육을 시작했다. 내 설명을 듣는 3학년 아이들은 겁에 질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표정이었다. 거울을 못 봤지만 아마 나도 비슷한 표정이었을 것이다.

 "여러분, 잘 듣고 잘 기억해뒀다 집에 가서 부모님께 설명해 드리세요. 집중해야해요. 우리 가족의 생명과 안전이 걸려있어요."


흔들림이 느껴지면 쿠션이나 방석 등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식탁 밑 등에 잠시 대피했다 흔들림이 멎으면 재빨리 밖으로 나가기. 이 때 2차 피해를 막기 위해 반드시 수도, 가스불을 끄고 전기, 가스는 차단하고 나가기. 뒷사람을 위해 창문이나 문은 활짝 열어두고 나가기. 엘레베이터 사용 금지. 반드시 계단으로 이동하기.


가르칠 내용이 많아 조급한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질문이 들어왔다. 내키지 않았지만 질문을 받아줬다.

"네, 김찬님."

"선생님, 그런데 지진 나면 애완동물은 어떡해요?"

그렇다. 녀석은 유명한 동물애호가였다.

"어떡하긴요. 얼른 같이 데리고 나가야지요."
후다닥 다음 내용으로 넘어가려는 내 말머리를 숨가쁘게 자르고 들어온 다음 질문은

"물고기를 어떻게 데려가요?"

였다.
그렇다. 녀석은 유독 물고기를 좋아했다. 점심 시간에 급식 반찬으로 생선만 나와도 눈물 지으며 생선은 물론, 그 국물 떠먹는 것도 완강히 거부하는 '물고기 박애자'였다.


"하... 얼른 바가지로 떠서 데려가세요. 다음은..."

"아, 선생님!"

외마디 비명을 지르다시피 내 말을 자르고 녀석은 다시 간절히 치고 들어왔다.


"다 무너져서 바가지도, 그릇도 가지러 못 가고 어항이 이미 깨졌으면요?"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고여있었다.

'하......'

순간 만상이 스쳐지나갔다.

얘는 왜 아직도 한글을 못 읽을까? 이렇게 머리가 좋은데. 얼마나 사랑해야 순식간에 저기까지 판단이 미쳐 바로 질문을 할 수 있는 걸까?왜 나는 이렇게 똑똑한 아이를 11월이 되도록 한글을 읽고 쓰게 하지 못 했을까?정말 지진이 나 어항이 깨져 애완 물고기가 바닥에서 파닥거리고 있으면 그땐 진짜 어떻게 해야하나?


그리고 다음 순간, 나는 거의 본능적으로 입에서 튀어나온 말로 대답을 해주었다.

"빨리 판단하세요. 그 물고기가 소중한지 내 목숨이 소중한지. 혹시 그 물고기를 구하려다 할머니나 어린 동생같은 내 가족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내 말을 들은 찬이의 얼굴은 번개를 맞은 듯 큰 깨달음과 놀라움으로 눈이 크게 떠지고 입이 쩍 벌어졌다. 동시에 고통스러운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이 표정은 찬이뿐만이 아니었다. 우리반 나머지 아이들의 흙빛 표정엔

'이건 남의 일이 아니야.'

라는 수심 어린 공감이 한가득 얹혀있었다.


1년이 넘도록 잊고 지냈던 이 일이 불현듯 떠오른 이유는 최근 나야말로 이런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아니, 이건 딜레마도 아니다. 나는 본능적으로 판단을 내렸고, 동물적으로 움직였으며, 정신을 차렸을 땐 모든 게 이미 끝나 있었다. 결과는 운이 좋기도 했고, 나쁘기도 했다. 하지만 그게 최선이었단 건 명백한 사실이었고, 어찌보면 최선의 결과가 주어졌으니 나는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하러가다 교통 사고를 냈다. 어쩌다보니 사람과 차가 잘 다니지 않는 어두운 길에 들어섰는데 앞만 보며 차분히 운전하고 있었음에도 갑자기 시야에 들어온 커다란 개(강아지가 아닌 개. 4~5살 꼬마 정도 키의.), 차 바로 앞에 의젓하게 앉아있던 그 개를 치지않기 위해 나는 급히 핸들을 꺾었다.


'피했구나.'

싶었던 순간, 나는 인도에 앉아 차도 위의 개를 바라보고 있던 또 한 마리의 개를 보았고, 바로 이어 쿵, 하는 큰 충돌음을 들었다. 내 뒤로 아무 것도 없는 줄 알았는데 뭔가 오고 있었나보다.   


잠시 멍하니 있다 차에서 내리니 의연하게 나를 바라보던 그 개는 유유히 자리를 떠나 인도 위의 짝꿍과 어디론가 가버렸고, 길 가던 아저씨는 우리 쪽으로 다가와

"아이고, 저 개 피하려다 그랬지. 아주머니! 이 아가씨 저 개 피하려다 그랬소."

외쳤으며, 그 아저씨 옆에 있던 아줌마는

"오지랖 떨지 말고 그냥 와요."

하고 고함을 질렀다.

오른쪽 차선 뒷쪽에서 오고 있던 경차가 그대로 내 차의 오른쪽 뒷문을 들이받은 거였다.


동생은 내리자마자

"뭐야! 왜 여기만 가로등이 꺼있어. 그러니까 저 개가 안 보이지."

라고 날카롭게 짚었고,

뒤따라 내린 아빠와 엄마는

"누구 안 다쳤니?"

하고 물으셨다.

나는 뒤로 가 뒷차를 운전하신 아주머니께서 다치셨는지 확인했고, 죄송하다고 사과 드렸으며, 혹 급한 일로 어디 가시던 중이었다면 이 사고로 지체되어 죄송하다고 한번 더 말씀 드렸다.


여동생이 앉아있던 오른쪽 뒷문은 찌그러져 있었고, 그 아래 사이드 스커트엔 큰 구멍이 나 있었다. 뒷차는 다행히 손상된 곳이 없었고, 왼쪽 앞바퀴 휠에 내 차 사이드 스커트에서 뽑혀 나간 강판 쪼가리가 코피 난 콧구멍에 찔러넣은 휴지처럼 돌돌 말려 들어가 있었다.

여동생에게 다치지 않았냐고 물어보니 그냥 무언가가 부드럽게 밀고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그 누구도 다친 사람은 없었다. 다친 개도 없었다. 차도 내 차만 신나게 찌그러지고 구멍이 났을 뿐, 상대편 차는 휠만 교체하면 되었다. 내 차는 블랙박스가 꺼져있었고, 뒷차는 아예 없었지만 모든 잘못을 전적으로 시인하고 사죄한 내 덕(?)에 시비없이 원만히 끝났다. 뒷차는 정말 휠만 교체했고, 병원 입원은 커녕 렌트카도 쓰지 않으셨다. 내 차만 공장에 들어갔다 새 차가 되어나왔고, 내 자동차 보험료는 곧 멋지게 오를 것이다. 어딘가에서 그 떠돌이 개 부부도 행복하게 잘 살아가겠지......




"선생님, 운전하다가 어떤 생명체 들이받은 적 있어요?"

"아니오, 없어요."

나에게 '도쿄 방재'책 파일을 보내줬던 친구 선생님은 내 질문에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묻고 나서 생각해보니 나도 무언가를 들이받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왜 자꾸 그 개가 내 차에 받히는, 내가 그 개를 치는 장면이 떠오르는 걸까? 어쩜 이렇게 4D로 생생하게?


아무도 안다쳐서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왜 하필 그때 공교롭게 그 개가 앉아있던 그 자리의 가로등 2개만 꺼져있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서로 언성 높이지 않고 조용히 해결되었음에 감사했다... 이런 식으로 한동안 정신이 들어왔다 나갔다 했다.


가장 화가 나는 건 평소 동물을 좋아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던 내가 처음 본 그 개를 위해 핸들을 꺾었다는 것이다. 열이 올라

"감히 그 떠돌이 개 따위를 위해 우리 가족이 다칠 뻔하게 하다니!"

했다가도 이내 슬픈 목소리로

"떠돌이 개 따위, 라니 너무 심한 말이야."

하며 그 개에게 미안해지는 것이다.

만약 내가 그대로 그 개를 치고 지나갔다면, 차에 묻은 핏자국만 닦을 수 있었다면(사체를 치우는 건 다른 누군가의 몫이 되었을 테니까), 그리하여 우리 가족이 털 끝 하나 다치지 않았다하더라도 나는 오래도록 고통스러워하고 죄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우리 가족 누구도 우리가 다칠 뻔했다고, 왜 당연히 그 개를 치지 않았냐고 나에게 화를 내지않았던 것도 미안하고 고마웠다.


결론은 늘 '내 차만 수리하고 내 보험료만 올라서 천만다행'이다. 가로등 관리를 잘 해달라는 내 민원은 잘 처리되었다고 문자도 왔다.


나는 1초도 안되는 시간 동안 재빨리 판단하고 움직였다. 그 개가 소중한지 내 목숨이 소중한지. 혹시 그 개를 구하려다 내 가족을 구하지 못하는 건 아닌지.

그런데 그게 정말 내가 내린 판단이었는지, 가끔 헷갈리기도 한다. 아니, 맞을 것이다. 나의 무의식이 본능적으로 결정해 동물적으로 지시한 철저한 나의 선택.

그저 다시 한번, 운이 좋았음에, 나름 최선의 결과가 나왔음에 하루에도 몇번씩 감사드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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