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무표정, 타인을 위해 관리해야 하나?
장면 1.
우리반 아이들과 감정카드 놀이를 했다.
"이 카드 놀이 방법을 설명해줄게요. 보이지않게 뒤집어져 있는 카드 중 제일 위의 것을 뽑아요. 그럼 이렇게 감정을 설명하는 그림과 글씨가 있지요? 내가 언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모둠 친구들에게 설명해주세요. 맞춘 친구에게 그 카드를 주고 가장 많은 카드를 모은 친구가 이기는 거예요. 연습 한번 해볼까요?선생님은 현장체험학습을 갈 때 이 감정을 느껴요."
우리반 1학년 귀염둥이들은 거침없이 의견을 쏟아냈다.
"힘들다."
"피곤하다."
"두렵다."
"당황하다."
나는 가장 마지막에 대답한 남자아이에게 물었다.
"왜 선생님이 당황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계속 이상한 장난을 쳐서요."
내가 뽑은 카드는 '설레다' 였다.
장면 2.
지난 봄의 어느 날, 2학년1반에 보결을 들어갔다. 그 반 담임 선생님의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선생님이 결근하셨기 때문이다.
갑작스레 보결 배정을 받은 나는 급히 교실로 가 교사용 책꽂이에서 통합교과(예전 교육과정으로 치면 바른생활, 즐거운생활,슬기로운 생활)교과서를 꺼내 요즘 배우고 있는 내용을 확인한 후, 교사용 교수학습 컨텐츠 사이트에서 관련있는 애니메이션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했다. 마우스가 작동하지 않았다.
'이거 왜 이러지?'
마음이 급해진 나는 턱을 괴고 모니터 쪽으로 더 다가갔다. 그때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바로 저 표정이야. 급식실에서 늘 짓는 표정."
"맞아맞아. 나도 만날 봐."
"대박!"
난 거울을 보지 않았지만 내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다음날 출근하신 2학년1반 선생님께 웃으며 어제 일을 말씀드렸더니 고개를 갸우뚱, 하셨다. 잘 이해되지 않는다고.
그날 점심시간, 아이들 잔반 검사를 하던 나에게 그 선생님은 웃음보 터진 얼굴로 다가와 말씀하셨다.
"애한테 다 먹었으니 비타민 줄 거라는 말을 하는데 어쩜 그런 썩소를 짓고 있어."
아이들과 있었던 일이 이 정도. 일상 생활에서도 비슷한 일이 참 많다.
창 밖을 보며 커피 한잔 마시며 '오늘 참 기분 좋다' 생각하고 있으면, 어김없이 누군가 다가와 묻는다.
"오늘 무슨 안 좋은 일 있어?"
오래전 남자친구와 같이 팥빙수를 먹으며 '기분 참 좋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남자친구가 숟가락을 내던지다시피 내려놓으며 화를 냈다.
"넌 나랑 같이 있는 게 그렇게 기분 나빠? 나만 기분 좋은 거냐?"
나는 당황스럽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했지만 어린 시절 나 역시, 늘 화 나 있는 듯 한 아빠 표정을 보며 눈치를 봤고, 거의 웃지않는 아빠를 보며 '우리 아빠는 대체 왜 이럴까?' 하는 생각을 하며 자랐기에 그들의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최근 몇 년간 소개팅을 나가서도 나 역시 상대의 표정과 기색을 살피며 그의 현재 감정과 나에 대한 호감도를 헤아렸다.
다만, 나의 경우를 참작하여 그 사람의 표정과 속마음이 일치할 수도 있고, 정반대일 수도 있다는 생각도 한다. 즉, 웃고 있어도 내가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고, 굳은 표정이지만 나를 마음에 들어했을 수도 있단 걸 다 고려한다는 뜻이다.
결국 상대의 표정으로 의중을 판단하기는 어렵다. 해서, 나는 내 마음이 가는대로 말하고 행동한다. 상대방의 표정과 기색은 그런 내 마음을 결정하는 데 참고만 할 뿐 기준으로 쓰진 않는다.
2015년 5학년 담임을 할 때 한 남학생의 이른바 '띠꺼운' 표정을 두고 토의.토론이 벌어진 적이 있다. 요는, '너는 왜 친구들 기분 나쁘게 그런 표정으로 사람을 보느냐'는 것이었다.
많은 아이들이 그 아이의 표정으로 인한 불쾌함을 토로했고, 당사자인 그 아이는 '내 표정은 나도 모르겠고, 타고난 무표정을 나더러 어떡하라는 거냐?'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표정은 겉으로 드러난 구실일 뿐, 사실은 학급 규칙을 지키지 않고, 수업시간과 쉬는 시간을 가리지않고 다른 사람에게 막무가내 피해를 주는 그 아이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거였다.
그 남학생의 표정에 대해서는 나도 학급의 다른 친구들과 비슷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표정은 고치거나 바꿔야하는 이른바 '지도'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그냥 두고 보고 있었다.
토의.토론도 수업 도중 자연스럽게 시작된 것이라 역시 개입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대화는 어느새 '네가 표정을 조금 더 부드럽고 따뜻하게 해준다면 학급 친구들과의 관계가 더 좋아질 수 있다'까지 진행되고 있었다.
그 때 우리 반의 이른바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심장을 가진 진보지식인' 문@@이 일어나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여러분, 정##님이 왜 우리 모두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자신의 표정을 애써 바꿔야합니까? 누가 여러분들에게 다른 사람을 위해 여러분이 타고난 것을 바꾸라고 하면 기분이 좋으시겠어요? 이런 말을 듣고 정##님이 스스로 표정을 바꾼다면 모를까 우리가 억지로 바꾸라고, 바꿔야한다고 강요할 문제는 아닌 것 같아요. 지난 몇달간 정##님과 함께 지내며 우리는 정##님이 늘 저런 표정이라는 걸 알게 되었잖아요. 그냥 우리가 자연스럽게 저 표정을 받아들이면 안될까요?"
평소 정##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문@@의 발언에 학급 전체는 다시 의견이 나뉘었고 찬반(?)이 갈려 팽팽히 맞섰다.
사회자 없이 진행된 그 토론의 결론은 결국 '서로 노력하자' 였다.
친구들은 정##의 표정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은 자신의 표정이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조금씩 바꿔나가기로 노력하는 것으로.
그런데 아이들은 알까? 문@@의 표정도 늘 어둡고,진지하고, 심각했지만 그 누구도 문@@의 표정을 문제 삼진 않았다는 것을......
내 무표정은 나의 것일까? 다른 사람의 것일까?
나는 타인을 고려(배려?)해 내 무표정을 관리해야할까? 내 본연의 자아 그대로 두어야할까?
아직도 내 결론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