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알을 새는 혈액암 환자가 불편한 사람들

입맛이 없는 아니 삶에 의지가 없는 그는 늘 밥알을 새고 있다


병실 속 작은 세상


요양원의 복도는 언제나 시끄럽고 분주하다. 늦은 밤이 되어서야 잠시 고요함이 찾아오지만, 그마저도 누군가의 신음소리, 간간이 들리는 기침 소리, 혹은 잠에서 깬 환자의 부름 소리로 채워진다. 이곳은 생과 사의 경계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저마다의 사연을 안고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A동 3층 요양병동은 주로 치매 노인들이 입원해 있는 곳이다. 하지만 때때로 병상이 부족하거나 특별한 케이스의 환자들이 이곳으로 오기도 한다. 노인 환자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는 젊은 환자가 있다. 바로 401호실의 김영수 환자다.


병실을 들여다보면 창가 쪽 침대에 앉아 있는 그를 볼 수 있다. 마른 몸, 창백한 피부, 그리고 항상 무언가에 집중하고 있는 날카로운 눈빛이 인상적이다. 그는 요양원에서 가장 젊은 환자 중 하나이지만, 가장 까다로운 환자로 알려져 있다.


간호사들과 요양보호사들은 그의 병실을 지날 때면 발소리를 죽이거나, 혹은 일부러 더 빠르게 지나친다. 누구도 그와 마주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하다. "밥알을 세는 남자", 그것이 그의 별명이다.


한 알, 두 알, 세어가는 삶


관리1: "오늘도 A라인 선생님은 늦으시네요."


관리2: "김영수 환자 때문이죠. 밥알을 새고 있어요."


관리3: "대책이 없네요. 매일 같은 일이라니..."


이런 대화가 간호사 스테이션에서 매일 아침 들려온다. 김영수, 40대 후반의 이 남자는 백혈병 진단을 받고 요양원에 입원했다. 그의 질병은 급격하게 진행되어 하반신 마비까지 왔고, 그는 이제 휠체어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


김영수 환자에 대한 소문은 요양원 전체에 퍼져 있다. '까다롭다', '예민하다', '요구사항이 많다'... 하지만 내가 처음 그를 만났을 때, 그는 그저 자신의 밥상 앞에서 천천히 밥알을 세고 있었다.


"이유가 있을 거예요."


내가 다른 관리자에게 물었을 때, 돌아온 답변은 짧았다. "그냥 괴짜예요. 시간 낭비하지 마세요."


하지만 나는 궁금했다. 사십대 혈기왕성한 나이에 아내와의 이혼과 백혈병이라는 질병, 그리고 하반신 마비까지. 그에게 생은 무슨 의미일까? 혹시 날마다 무지개가 피어나는 곳을 생각하지는 않을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밥알을 넘겨야 하는 그 심정을 조금만 헤아릴 수는 없는 것인가?


결국 나는 용기를 내어 그에게 다가갔다.


"선생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어요?"


그는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경계심이 가득했다.


"왜요?"


"아니요, 그냥 궁금해서요. 매일 밥알을 세시는 것 같아서..."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러다 그가 입을 열었다.


"먹는 것이 의미가 있나 싶어서요."


"어떤 의미요?"


"사는 의미요. 왜 먹어야 하는지... 왜 살아야 하는지..."


그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지만, 그 짧은 대화가 내게는 큰 울림을 주었다.


며칠 후, 그의 병실에서 또 다시 소란이 일어났다. 간호사가 그의 밥상을 치우려 했고, 그는 아직 다 먹지 않았다며 화를 냈다.


"아직 스물세 알이 남았어요!"


간호사는 눈을 굴리며 나갔고, 복도에서 "또 시작이네"라는 말이 들려왔다.


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병실로 들어갔다.


"선생님, 천천히 드세요. 제가 옆에 있을게요."


그는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혼자 있을 수 있어요."


"네, 물론이죠. 하지만 같이 있어도 괜찮잖아요?"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밥알을 집어 입에 넣기 시작했다.


"왜 밥알을 세세요?"


오랜 침묵 끝에 내가 물었다.


"통제력을 느끼고 싶어서요."


"통제력이요?"


"네. 내 몸은 내 마음대로 안 되고, 내 인생도 내 마음대로 안 되는데... 적어도 내가 얼마나 먹을지는 내가 정하고 싶어서요."


그의 말이 가슴을 찔렀다. 건강하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백혈병 진단을 받고, 이혼까지 겪고, 자신의 하반신을 쓸 수 없게 된 상황. 그에게 남은 통제력이라곤 자신이 먹는 밥알의 숫자를 세는 일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군요... 충분히 이해해요."


"이해해요? 정말요?" 그의 목소리에 약간의 놀라움이 묻어났다.


"네, 적어도 노력하고 있어요. 선생님의 입장이 되어보려고요."


그날 이후로 나는 그의 식사 시간에 종종 함께했다. 처음에는 그저 옆에 앉아 있기만 했지만, 점차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무슨 일을 하셨어요?"


"건축가였어요. 주로 주택을 설계했죠."


"멋지네요. 집을 만드는 일이라니..."


"네, 사람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드는 일이었죠. 지금은..." 그는 말끝을 흐렸다.


"지금은 어떠세요?"


"지금은 그저 내 몸을 견디는 일만으로도 벅차요."


오고 가는 대화에 냉기가 흐르고 두려운 생각마저 들었지만, 나는 그대로 들어주기로 했다. 난 그 환자에게 늘 '선생님'이라 부른다. 그의 과거의 직업, 그의 인격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혹여 저녁 늦은 시간까지 잠을 자지 않는다면, 나는 그에게 다가가 물었다.


관리: "선생님, 무엇에 집중하세요? 언제 주무실 거예요?"


환자: "밀린 숙제 하고 있어요."


관리: "궁금하네요. 숙제가 뭘까요?"


환자: "게임이요."


관리: "네."


그리고 한참 후, 게임에 집중하고 있는 환자에게 "언제 주무실 거예요?"라고 물으면, 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바로 눈을 감곤 했다.


세상에 통하지 않는 진실은 없다. 그게 누구든 나의 마음을 알아주는 이가 있다면, 인간은 누구나 마음을 열 것이다.


무지개를 기다리는 마음


시간이 지날수록 김영수 선생님과의 대화는 더 깊어졌다.


"아내와는 왜 이혼하셨어요?" 어느 날 용기를 내어 물었다.


그는 잠시 침묵했다.


"내가 아픈 걸 견디지 못했어요. 사실... 비난할 수는 없어요. 결혼할 때 이런 상황을 예상한 사람은 없었으니까."


"많이 힘드셨겠네요."


"처음에는 화가 났어요. 왜 나를 버리냐고... 하지만 지금은 이해해요. 그녀도 자신의 삶이 있으니까."


"그래도 외롭지 않으세요?"


"외롭죠. 하지만..." 그는 창밖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사람은 결국 혼자예요. 건강할 때는 그걸 잊고 살았을 뿐이죠."


김영수 선생님의 이야기는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했다. 건강하게 자신의 일을 하며 살아가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게 된 상황. 그는 자신의 몸뿐만 아니라 가족, 직업, 미래의 꿈까지 모두 잃었다.


"가끔은 꿈을 꿔요." 어느 날 그가 말했다.


"어떤 꿈이요?"


"내가 다시 걷는 꿈. 설계도를 그리는 꿈. 그리고 가끔은... 아내와 함께 있는 꿈."


"그 꿈들이 현실이 되면 좋겠네요."


"현실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꿈에서라도 그런 시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요."


그의 말에 내 마음이 아려왔다. 김영수 선생님은 겉으로는 까칠하고 예민해 보였지만, 그 안에는 깊은 상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견뎌내는 강인함이 있었다.


힘들고 지친 일상들의 관리자들이지만, 조금만 마음을 열어 준다면 환자들이 가는 그 길이 결코 외롭고 고독하지 않을 텐데 많이 아쉽다. 그렇다고 내가 특별히 잘한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나의 지난 직업상 갖게 된 상대의 마음을 읽고 감정을 읽는 특별한 기술을 가진 것뿐이다.


우리 사회는 병든 이들, 특히 고통 속에 있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요양원의 벽 안에 갇혀 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들리고 있을까? 40대의 건강한 남성이 갑자기 백혈병 진단을 받고, 하반신 마비가 오고, 아내에게 버림받는 상황. 이것은 단지 한 사람의 불운한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언제든 맞닥뜨릴 수 있는 삶의 한 단면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무지개색일 수만은 없다. 회색일 때도, 까만색일 때도 있다. 그때 촛불 하나 들고 나를 향해 다가오는 손짓 하나 있다면, 그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일 것이다.


김영수 선생님은 여전히 매일 아침 밥알을 세고 있다. 하지만 이제 그 의미를 조금은 이해하는 사람이 한 명 더 생겼다.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그의 하루가 조금은 덜 외롭지 않을까.


내가 아는 모든 이들이 가장 큰 행복을 안고 살아가길 두 손 모은다. 그리고 우리 모두가 서로의 아픔에 좀 더 귀 기울이고, 조금 더 이해하는 사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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