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담근 김치 5년만인 것 같아요

엄마가 없는 청년은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후로 병워네서 주는 것이 다였다


우린 아직 살아 있어요


겨울의 요양원은 더욱 외롭다. 창밖으로 내리는 눈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조차 병실 안에서는 차갑게만 느껴진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의료진들의 발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TV 소리, 그리고 때때로 들려오는 환자들의 신음소리가 이곳의 일상적인 배경음이다.


병실마다 각자의 이야기가 있다. 젊은 사람들은 이곳이 오직 노인들만을 위한 공간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교통사고, 뇌졸중, 산업재해 등 예상치 못한 사고로 인해 젊은 나이에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 이들도 적지 않다. 그들의 눈빛은 더 깊은 슬픔을 담고 있다. 아직 해야 할 일, 꿈꿔왔던 미래, 이루고 싶었던 목표들이 모두 병실의 천장 아래 갇혀버렸기 때문이다.


요양원의 냄새는 특유하다. 소독약 냄새, 약품 냄새, 그리고 병실 특유의 무거운 공기가 섞여 있다. 그 냄새에 익숙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미 그 냄새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로 무감각해져 있다. 그들에게는 더 이상 바깥세상의 향기가 그립지 않은 걸까, 아니면 그리워도 표현할 수 없는 걸까.


식사 시간은 요양원에서 가장 활기찬 시간이다. 비록 병원식이 맛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루 세 번 누군가가 찾아와 말을 걸어주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간조차도 빠르게 지나가고, 남은 시간은 다시 침묵과 기다림으로 채워진다.


하반신 마비 그리고 조금씩 열리는 마음


환자 나이: 37살 결혼: 미혼 부양의무자: 부(모는 없음) 입원사유: 사설 응급구조사로 일했으나 교통사고로 하반신 완전 마비


한 병실에는 37살의 젊은 남자가 있다. 그는 말이 없다. "좀 어때요?"라고 물으면 "괜찮아요"로 대화가 끝난다. 사실 무슨 대답을 바라겠는가. 한참 일할 나이에 응급구조사로 일하다가 척추를 다쳐 하반신 마비 상태가 되었는데...


2023년 12월 31일, 그의 병실을 지나가던 중 나는 우연히 그가 전화통화를 하는 것을 듣게 되었다.


환자: "아버지,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사랑해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환자의 얼굴을 보니 아마도 "그래, 고맙다"라는 대답이 돌아왔을 것 같았다.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환자의 목소리가 가슴에 박혔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고였다. 왜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고독한 고백. 난 그 고독한 고백마저 나의 아버지에게 하지 못했다.


잠시 후, 그의 병실에 들어가서 말을 걸었다.


관리: "통화하셨네요. 아버지가 좋아하시겠어요."


환자: (잠시 멈칫하더니) "네..."


관리: "혹시 새해 소원 같은 거 있으세요?"


환자: (조금 당황한 듯) "글쎄요... 특별히 생각해본 적은 없어요."


관리: "괜찮아요. 생각나시면 말씀해주세요. 혹시 필요한 거 있으세요?"


환자: "아니요, 괜찮습니다."


대화는 거기서 끝났다. 그러나 나는 그날부터 그의 병실에 조금 더 자주 들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업무적인 질문만 오갔지만, 조금씩 대화의 범위가 넓어졌다.


며칠 후 식사 시간, 그의 식판을 보니 반찬이 처량했다. 병원식은 영양적으로는 균형이 맞춰져 있을지 몰라도, 맛이나 다양성 면에서는 많이 부족했다.


관리: "식사는 괜찮으세요? 뭐 더 드시고 싶은 거 없으세요?"


환자: (잠시 생각하다가) "다 괜찮아요."


관리: "정말요? 뭐든 말씀해보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도와드릴게요."


환자: (망설이다가) "사실... 집밥이 그리워요."


관리: "아, 그렇겠네요. 특별히 좋아하시는 음식이 있으세요?"


환자: "음... 특별히는 없지만..." (다시 망설임)


관리: "혹시 생김치 좋아하세요?"


환자의 눈이 살짝 반짝였다.


환자: "네, 엄청 좋아하는데... 언제 먹어봤는지 기억도 없네요."


관리: "내가 집에서 좀 가져다 줄까요? 제가 직접 담근 김치가 있거든요."


환자: (살짝 웃으며) "네, 그럼 너무 감사하죠."


관리: "다른 반찬도 뭐 좋아하세요? 동치미나 고추장도 있는데..."


환자: "정말요? 와, 동치미도 정말 오래 전에 먹어봤어요. 집에서 엄마가 담그셨었는데..."


그의 목소리에 감정이 실렸다. 평소의 무표정했던 얼굴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다음날, 약속대로 김치, 동치미, 고추장을 가져다 냉장고에 넣어 주었다. 점심 시간에 그가 김치를 한 조각 맛보는 순간, 그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환자: "선생님, 너무 맛있어요! 직접 담그신 거죠?"


관리: "그럼요, 모두 직접 담근 거예요. 맛있다니 다행이에요."


환자: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집김치 맛이에요. 동치미도 새콤달콤하고... 어머니가 담그시던 맛이랑 비슷해요."


관리: "다행이네요. 어머니께서는..."


환자: (눈빛이 조금 슬퍼지며) "5년 전에 돌아가셨어요. 그 후로 집에서 담근 김치를 못 먹었어요."


관리: "아, 그렇군요... 정말 맛있게 드셔서 다행이에요."


환자: "이렇게 신경써주시고... 감사합니다. 그런데 정말 맛있어요. 어떻게 이렇게 맛있게 담그세요?"


관리: (웃으며) "비법이 있죠. 다음에 기회되면 알려드릴게요. 그래요, 많이 드세요. 또 가져다 줄게요."


환자: "정말 감사합니다. 이런 작은 행복... 잊고 살았네요."


그 후로 우리는 종종 김치 맛에 대해, 그리고 그가, 그의 가족이 좋아했던 음식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조금씩 이야기를 늘려갔고, 때로는 자신의 과거 직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환자: "응급구조사로 일할 때는 매일이 긴장의 연속이었어요. 누군가의 생명을 구한다는 사명감으로 살았죠."


관리: "대단한 일을 하셨네요. 많은 사람들을 도우셨겠어요."


환자: (쓸쓸하게 웃으며) "그런데 정작 제 자신은 구하지 못했네요."


관리: "지금도 충분히 대단하세요. 이런 상황에서도 매일을 견디고 계시잖아요."


환자: "때로는 왜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아버지가 계시니까..."


관리: "네, 아버지를 위해서라도 건강하게 지내야죠. 그리고 저도 있잖아요. 제 김치 맛보실 분이..."


환자는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 진심 어린 미소였다.


나눔의 기쁨, 작은 행복의 시작


환자의 얼굴이 환하다. 김치 한 포기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니, 나 또한 행복하다. 이것이 나누는 자의 기쁨이 아닐까? 함께 하는 동안에는 맛있는 김치 나누어 먹으며, 병실에서 한 발도 자립으로 나가지 못하는 환자에게 세상의 행복을 나누어야겠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조금씩 더 말을 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음식 이야기로 시작했지만, 점차 자신의 꿈, 좌절, 그리고 희망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환자: "가끔은 창밖을 보면서 바깥세상이 그리워요. 특히 비가 오는 날이요."


관리: "비 오는 날이요? 왜 하필 비 오는 날인가요?"


환자: "응급구조사로 일할 때 비 오는 날이면 특별히 바빴거든요. 사고도 많고... 그래서 그런지 비 오는 날의 긴장감이 그리워요."


관리: "이해해요. 그럼 다음에 비 오는 날엔 창문을 활짝 열어드릴게요. 비 냄새라도 맡으시라고."


환자: (웃으며) "그거 좋겠네요. 고마워요."


이렇게 우리는 작은 대화들을 통해 서로를 알아갔다. 김치 한 포기, 동치미 한 그릇, 그리고 진심 어린 관심이 그의 단조로운 일상에 작은 변화를 가져왔다.


어느 날, 그는 내게 말했다.


환자: "선생님, 요즘 제가 조금 달라진 것 같아요."


관리: "어떻게요?"


환자: "아침에 일어나면 뭔가 기대되는 게 생겼어요.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어떤 음식 얘기를 할까... 그런 생각들요."


관리: "그거 정말 좋은 변화네요."


환자: "네, 모두 선생님 덕분이에요. 사실... 사고 이후로 제 인생은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이제는... 작은 행복들이 보이기 시작해요."


그의 말에 내 마음도 따뜻해졌다. 사람은 역시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존재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 사회는 요양원에 있는 이들을 잊혀진 존재로 여기곤 한다. 특히 젊은 나이에 사고로 인해 요양원에 들어온 이들은 더더욱 사회로부터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그들에게는 의료적 케어뿐만 아니라 정서적 지지와 소통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요양보호사와 간호사들의 업무 환경 개선도 시급하다. 그들이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충분한 시간과 관심을 쏟을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단순히 신체적 돌봄을 넘어 정서적 케어까지 가능한 시스템이 필요하다.


작은 관심과 정성이 누군가의 삶을 밝게 만들 수 있다. 김치 한 포기가 가져온 변화처럼, 우리 모두가 주변의 외로운 이들에게 작은 관심을 기울인다면, 더 많은 이들이 '살아있음'의 기쁨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사랑이 많으신 주님 감사합니다. 나에게 나눌 수 있는 음식과 마음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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