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위해 외출하면서 나눈 딸과의 대화
오월의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던 5월 13일, 나는 딸과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이었다. 내 나이 예순을 넘긴 지금, 딸과의 만남은 언제나 소중한 시간이다. 공직에서 퇴직한 후로는 더욱 그렇다. 오늘따라 유난히 더운 날씨에 이마의 땀을 닦으며 걷는 동안, 우리 대화는 자연스레 다가오는 대선으로 흘러갔다.
"엄마는 이번 대선에서 누구 찍으실 거예요?" 딸이 물었다.
"글쎄, 이제 거의 한 사람으로 정해진 것 같던데,"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다들 그렇게 말하잖아. 이번엔 거의 결정된 것 같아."
딸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다른 후보에게 투표할 거예요."
"어떤 후보?" 내가 물었다.
"계엄을 시도했던 당의 후보요."
나는 걸음을 멈추고 딸을 바라보았다. "뭐라고? 그쪽은... 그리고 그 당의 역사를 생각하면..."
"그래요, 엄마가 무슨 말씀 하시는지 알아요. 하지만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에요." 딸의 목소리는 단호했다.
"그럼 뭐가 중요한데?"
딸은 잠시 숨을 고르더니 말했다. "엄마, 우리 여성들이 필요에 따라 이용당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작년 겨울 매서운 추위속 촛불시위, 야광봉 시위를 하면서 지금의 조기대선과 탄핵을 만들어내는데 우리 여성들이 맨 앞줄에 서 있었어요 눈보라속에 책을 보면서 날을 새웠던거 기억하시죠. 하지만 정작 대선 후보자의 정책에는 어디에도 여성 정책은 어디에도 없어요."
나는 입을 다물었다. 딸의 말이 가슴에 와닿았다.
"그때 여성들은 민주주의를 지키는 데 앞장섰어요.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요? 여성 관련 정책은 뒷전이고, 오히려 여성을 비하하는 발언들이 공공연히 나오는데도 아무도 문제삼지 않아요."
딸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그 모습에서 나는 내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았다. 나도 한때는 그렇게 열정적이었지.
"알아요, 그 후보가 당선될 가능성은 거의 없어. 하지만 그래도 내 한 표가 의미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최소한 여성들이 그저 필요할 때만 동원되는 존재가 아니라는 걸 보여줄 수 있잖아요."
식당에 도착해 자리에 앉았을 때, 나는 딸의 말을 곱씹어 보았다. 공직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얼마나 많은 타협을 해왔던가. 때로는 내 신념과 맞지 않는 일도 '큰 그림'을 위해, '조직을 위해' 묵인했던 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사실... 엄마도 그런 생각 많이 했어." 내가 조용히 말했다. "공직에 있을 때는 말할 수 없었지만."
딸이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우리 세대는 늘 현실적인 선택을 강요받았어. 그리고 그 '현실적'이라는 말 뒤에 얼마나 많은 타협이 숨어있었는지 몰라. 네가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모습이 자랑스럽구나."
"엄마..."
"다만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 그 후보의 정책은 면밀히 살펴봤니? 계엄을 시도했던 그 역사가 있는 당인데, 그들의 여성 정책은 어떤지 확인해봤어?"
딸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사실 완벽하진 않아요. 하지만 적어도 지금 거의 확정적인 후보에게 생각할 시간은 줄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리고 덜 여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겠지요. 저는 그 한 가지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잠시 침묵 속에 식사를 이어갔다.
"알겠어." 내가 말을 꺼냈다. "엄마는 엄마대로의 선택을 할 거야. 하지만 네 말을 들으니 많은 생각이 드는구나. 우리 세대는 항상 '현실'이라는 이름으로 타협해왔어. 그게 옳은 일이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야."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오월의 햇살은 여전히 뜨거웠지만 마음은 어딘가 시원해진 느낌이었다.
"엄마, 저는 제 선택이 옳다고 확신해요. 비록 지금은 미미한 한 표지만, 언젠가 변화를 만들어낼 거예요." 딸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나는 미소를 지었다. "그래, 네 선택을 존중해. 사실 엄마도 젊었을 때는 그런 선택을 하고 싶었어. 하지만 시대가 달랐지..."
우리 둘 사이에 세대 차이는 분명 존재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우리는 서로의 시각을 이해하게 되었다. 나는 딸의 폭 넓은 사고에서 나오는 선택을, 그리고 나의 편협적인 사고의 선택을.
결국 정치란 무엇일까? 이상과 현실 사이의 끊임없는 줄다리기일지도 모른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선택에 책임을 지고, 그 선택이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아닐까.
오월의 뜨거운 햇살 아래, 서로 다른 선택을 하는 우리이지만, 서로의 선택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마음만은 같았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민주주의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