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은한 커피향과 함께 파고드는 첫사랑의 향기에 취해
30년의 공직생활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진정한 편안함이란 무엇인지를. 아침에 눈을 뜨면서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자유, 커피 한 잔을 천천히 마시며 창밖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 이런 것들이 내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요즘 나는 시와 수필을 쓰고, 타로 카드를 펼쳐 사람들의 마음을 읽어주며, 인문학과 AI 강의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30년간 규칙과 업무에 얽매여 살았던 내가, 이제는 마음 가는 대로 하루를 설계할 수 있다는 것이 때로는 꿈같기도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렇게 편안한 일상 속에서도, 아니 편안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첫사랑의 그 사람.
타로 카드를 섞으며 연애 상담을 해주다가도, 인문학 강의에서 사랑에 대한 철학자들의 이야기를 하다가도, AI 기술로 변화하는 세상을 설명하다가도 문득문득 그때 그 시절이 떠오른다. 스무 살 청춘의 내가 처음으로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던 그 사람.
공직에 있을 때는 바빴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쫓기듯 살아가느라 과거를 돌아볼 틈이 없었다. 그런데 이제 시간이 많아지니까,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해두었던 기억들이 하나둘씩 고개를 든다.
어제는 시를 쓰다가 펜을 놓았다. '첫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시작했던 시가 끝내 완성되지 않았다. 어떤 단어로도 그때의 떨림을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그 사람의 웃음소리, 함께 걸었던 캠퍼스 길, 헤어지던 날의 눈물까지. 모든 것이 선명하게 살아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이미 다른 인생을 살아온 지 오래인데, 왜 지금에 와서 이런 마음이 드는 걸까. 하지만 요즘에는 그 그리움마저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타로 상담을 하다 보면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을 많이 만난다. 첫사랑을 잊지 못하는 사람들, 지나간 사랑을 그리워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말해준다. 그리움이란 죄가 아니라고. 오히려 한때 진실하게 사랑했다는 증거라고.
퇴직 후의 이 편안함은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었다. 바쁘게 살 때는 놓쳤던 내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해주었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을 주었다.
AI 강의를 준비하면서 미래 기술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문득 생각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해도,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사람의 마음, 사랑, 그리움 같은 것들 말이다.
요즘 나는 확신한다. 세상의 모든 첫사랑은 이루어진다고. 비록 현실에서는 만나지 못했을지라도, 그 사랑은 우리 마음속에서 영원히 완성된 형태로 존재한다고.
내 마음 한 구석에 한 순간도 떠나지 않고 자리하고 있는 그 사람. 그 사람을 통해 나는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배웠고, 그 사랑은 지금도 내 삶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이 되어 있다.
퇴직 후의 편안함이 선물해준 것은 단순히 시간적 여유만이 아니었다. 내 인생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의 여유였다. 그리움마저도 감사하게 품을 수 있는 넉넉함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미소짓는다. 타로 카드를 펼치며, 시를 쓰며, 강의를 준비하며. 마음 한 구석에 고이 간직한 첫사랑의 그리움과 함께. 그 그리움이 있기에 내 오늘이 더욱 따뜻하다는 것을 알면서.
세상의 모든 첫사랑은 마음속에서 완성된다. 그리고 그것으로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