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기차는 간다
초등학교 1학년 교실, 갓 입학한 아이들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은 '받아쓰기'다. 선생님이 불러주는 문장을 제때 적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들의 마음을, 나는 환갑을 넘긴 나이에 다시금 절감하고 있다.
퇴직 후 새롭게 마주한 사회라는 교실에서, 세상은 내게 너무 빠른 속도로 문장을 불러준다. "이건 이렇게 처리하시고요, 저건 저 플랫폼을 활용하세요." 젊은 동료의 입에서 쏟아지는 단어들은 내가 평생 써온 사전에는 없는 외계어들이다. 나는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펜을 쥔 손에 힘만 주다가, 결국 하얀 종이 위에 삐뚤빼뚤한 궤적만 남긴다.
어제까지만 해도 나는 채점자였다. 누군가의 기안문에 붉은 펜으로 선을 긋고, '다시 해오게'라는 한마디로 타인의 노력을 평가하던 사람. 하지만 지금의 나는 빵점 맞은 시험지를 가슴에 품고 하굣길을 걷는 겁먹은 초등학생이다. 14권의 저서를 펴낸 작가라는 자부심도, 수십 년간 쌓아온 경력이라는 훈장도, 이 낯선 '사회초년생'의 교실에서는 무거운 가방 속 낡은 교과서만큼이나 거추장스럽다.
하지만 그 갑옷을 벗겨내자, 속살만 남은 번데기가 드러났다. 번데기의 시간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다. 그 안에서는 과거의 장기들이 녹아 없어지고, 새로운 날개를 만들기 위한 치열한 화학 반응이 일어난다. 그 과정은 필연적으로 뜨겁고 아프다.
"과거에 내가 누군데..."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스스로의 뺨을 친다. 그 생각이야말로 나를 다시 날지 못하게 만드는 낡은 껍데기의 잔해이기 때문이다. 껍데기를 벗어내는 아픔은 생살을 찢는 것과 같다. 어제의 나를 부정해야 오늘의 내가 겨우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이 역설. 나는 지금 그 지독한 번데기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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