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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바다 Jan 09. 2024

남자는 단골 미용실이 어렵다

저는 머리카락을 자를 때마다 애를 많이 먹어요. 제 아파트 근처에는 제법 미용실이 많은데, 그 중에서 갈 만한 미용실이 없서서죠. 그래서 항상 집주변을 어슬렁 거려요. 과거에는 그러지 않았어요. 어느 동네 미용실이든 한번에 머리를 촤~락 잘라주곤 했는데, 요즘은 예약을 하지 않으면 머리 한번 자르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동네 미용실이 점점 고급화가 되는 건지, 동네 미용실이 사라지고 다른 고급진 미용실이 생기는 건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저는 고급진 미용실을 가기 무서운 이유가 많아요. 제가 말한 "고급지다"는 건 겉으로 보았을 때 꾸미는 사람만 갈 것 같은 미용실을 말해요. 꾸미는 사람만 갈 것 같은 미용실을 제가 무서워 하는 이유는 첫째로 너무 비쌀 것 같아서예요. 전에 서울에서 처음으로 머리를 자르러 갔던 적이 있어요. 저는 아무 것도 몰라 그냥 길가다가 앞에 보이는 미용실을 가자고 생각했죠. 마침 알바를 끝내고 그 근처에 있던 미용실을 들렀는데... 가격이 얼만지 아시나요?? 자그만치 5만원을 달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미용사분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제가 어리숙한 걸 알았는지 원래는 5만원인데 3만원만 달라고 하셨죠. 하여튼 그런 경험이 있어요. 어쩐지 처음에 들어가자마자 찾으시는 디자이너가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둘째는 미용실의 컨셉과 맞지 않을까봐서예요. 아니 무슨 소비자가 헤어샵의 컨셉을 신경쓰냐고 하실 수도 있어요. 그래도 어째요. 신경 쓰이는 걸요. 만약 미용사 분이 여성들에게 머리 시술, 네일아트 등 제공하기 위한 미용실을 차렸다고 생각해봐요. 그런 곳에 갑자기 꾸밈없는 남자가 왔길래 "어떻게 잘라 드릴까요?"라고 하니 "그냥 짧게 잘라주세요."이러면 요청을 받는 입장에서도 분명 난처할 거예요. 게다가 약간 저 또한 위축될 것 같은 느낌이기도 하고요.


셋째는 둘째 이유와 비슷한데 좀 더 미용사 분의 기준에서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어요. 과연 예약을 받지 않은 남자의 머리를 자르는 게 미용사에게 적당한 이득을 주냐는 것이에요. 예약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루에 받아야 할 손님의 수가 미지수라는 것이고, 불예측하다는 걸 뜻해요. 보통 사업에서 예측하기 어려우면 비용이 많이 들죠. 그런데 그렇게 예측하기 어려운 남자 머리 컷트의 가격은 일반 여자 머리에 비해 적죠. 미용사 분이 미용실을 고급화하여 받는 금액치고는 미용사 분에게는 생각한 이윤을 주지 않을 수도 있죠.


사실 그런 분위기가 저는 더 무서워요. 만약 많은 미용 업계가 꾸미지 않는 일반 남자를 받는 것을 약간 꺼려한다고 생각해보면 앞으로 저는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가는 게 더욱 어려울 거예요. 그나마 있던 동네 미용실도 이제는 사라지고 저도 최근에 예약이라는 것을 해봤죠. 누군가는 예약이 뭐가 어렵냐고 할 수도 있지만 단순히 예약뿐만 아니라 기타 모든 분위기를 보건데 예약하는 게 두려운 것이지요. 


이번에 머리를 자를 때는 좀 먼 곳에서 자르게 됐어요. 마침 룽지를 봐야해 누나 집에 갔는데 룽지가 자는 때를 틈타 머리를 잘라야겠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룽지가 잘 때 누나네 집 근처를 어슬렁 거리며 미용실을 찾았어요. 2곳이 문을 닫아 이제는 제법 고급져 보이는 곳이 남게 됐죠. 혹시 몰라 근처 카페에서 음료를 사면서 한번 물어봤어요. "혹시 여기 머리 자를 곳이 없을까요?" 그러자 제가 고급져 보인다고 한 그 미용실을 추천해줬어요. 제가 "거기는 너무 고급져서요. 혹시 남자도 갈 수 있는 곳일까요?"라고 물어봤죠. 그곳은 머리뿐만 아니라 네일이나 발관리 등도 하는 미용실이었거든요.


여하튼 추천을 해주셨으니 서울에서 미용실을 들른 느낌과 같은 마음으로 그곳을 들러 머리를 자를 수 있나요 물어봤어요. 그러자 미용사 분이 친절히 머리 자를 수 있다며 안내를 해주셨죠. 머리를 자르는 도중에 물어봤어요. 혹시 이런 곳은 진입장벽이 있냐고요. 사실 그런 것은 없죠. 하지만 마음 속에서는 그런 느낌이 들잖아요? 다른 분들은 이런 기분이 들지 않을까요? 제가 분명 오버하는 것도 있을 거예요. 그렇지만 그 미용사 분은 제가 말하는 것에 잘 공감도 해주시면서 말씀하셨어요. 다른 곳은 모르겠지만 저희 미용실은 그런 곳이 아니라고요. 맞아요. 무슨 미용실이 고급진 미용실이 따로 있을까요? 그저 이렇게 편안히 잘 잘라주시는 곳이 고급진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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