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개월 아기 데리고 호캉스, 천국일까 지옥일까

2025년 크리스마스이브 아기랑 호캉스 일기

by P맘한입
크리스마스에 뭐 할 거 없나!

아기와 함께하는 두 번째 크리스마스. 집에만 있기엔 좀 서운하고 따분할 것 같았다. 그래서 2주 전, 충동적으로 호캉스를 예약했다. 가을에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 2박 3일 머물렀는데 그때 거금을 썼으니 이번에는 소소한 호캉스를 하기로 했다. 그래서 찾은 호텔이 바로 메이필드호텔. 서울 강서구에 있어 그리 멀지 않고 무엇보다 '온돌룸'이 있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





극도의 P, P맘은 절대 미리 준비하지 않는다...
그리고 후회한다.
가슴에 사무치도록...


출발 전날까지도 우리는 바빴다. 연말 기념 가족 식사에 다녀왔고 그 이후에는 아파트단지 엄마들과 키즈카페에 갔다. 그리고 아기가 자고 나서야 짐 쌀 생각을 했다. 하지만 체력이 따라주지 않는 야속한 몸뚱아리는 '내일이 있다'며 미루자고 나를 꼬셨다.


하지만 할 일이 많았다. 내일 수영장에 간다는 생각에 급하게 헬스장도 다녀왔다. (단 하루의 운동으로 살이 빠지지 않는다는 걸 아는데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채채가 자지러지게 울었다. 그렇지 않던 아인데 이앓이인지 새벽 2시가 돼서야 잠이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할 일이 많았다. 내일 가져갈 유아식도 만들어야 했고, 내 옷, 채채옷, 기타 상비약 등 챙길 게 많았다.


그래서 새벽 3시까지 어느 정도 챙기다가 힘이 빠져버렸다. 너무 지친 나는 우연히 유튜브 영상을 보게 되었고 그 길로 쇼츠의 세계에 빠져버렸다. 5시까지 쇼츠만 고다 지쳐 잠이 들었다.


결국 극도의 피곤이 밀려오는 호캉스 당일 아침. 머리부터 발끝까지 힘이 없었지만 그럼에도 별 여행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눈 뜨고부터는 급박하게 돌아갔다.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 기본적인 육아, 즉 아침식사 제공하기, 응아 치우기, 옷 입히기, 재우기 등을 다 하면서 짐을 싸는 건 너무 어려운 일이었다. 거의 뛰어다니다시피 하고 나가기로 한 시간이 되자 '제발 다 챙겼기를'하고 바라며 집을 나섰다.


하필이면 비가 올까, 눈이 올까 좋지 않은 날이었다.






날씨가 좋지 않은 탓에 호텔에 체크인하니 이미 어둑어둑했다. 또 춥기는 어찌나 추운지, 주변을 탐색해보고 싶은 마음조차 나지 않았다. 처음 보는 호텔 온돌방에 마음이 갔다. 채채도 큰 침대 없이 이곳저곳 탐색할 수 있어서 신이 났다. 하지만 우리는 할 일이 많았다. 채채 밥도 먹여야 하고 수영장에도 가야 했다. 사전조사 없이 온 탓에 어디서 유아식을 먹여야 하는지도 알 수 없어서 물어 물어 행동하느라 시간은 더 지체되었다.


메이필드 호텔은 파라다이스호텔과 확실히 비교과 되긴 했다. 아기가 밥을 먹을 수 있는 라운지 같은 게 따로 없었다. 그래서 음식을 데워가지고 호텔 방 안에서 먹였는데, 채채는 돌아다니는 데 신이 나서 잘 먹지 않았다. 여행과 힐링도 좋지만 아기 먹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 입장에서는 참 힘 빠지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아기 있는 부모들이 놀러 갈 때 범보의자를 챙기는구나 싶었다. 너무 오버한다고 생각했던 내가 틀렸다.


밥 먹인다고 한바탕 치른 후 수영장으로 향했다. 별관으로 가야 했는데 비가 오고 날이 워낙 추워 길이 참 멀게만 느껴졌다. 이럴 때 쓰려고 집에 유모차 방풍커버를 사놨다. 하지만 맨날 써야지, 써야지 하고 처박아두어서 빼먹었다. 스스로를 자책하면서 수영장에 도착했는데 아뿔싸, 정말 큰 걸 빼먹었다. 메이필드 호텔 수영장에는 튜브가 없었다! 우리 채채는 고작 14개월 아기이니 수영을 할 수도 없고 그냥 물에서 잡고 놀아주는 건 한계가 있는데. 나의 큰 실수였다. 좀 알아보고 올 걸. 주변을 둘러보니 아기 데리고 온 부모 중에 튜브가 없는 사람들은 우리뿐이었다.


결국 우리가 채채를 안고 놀아줬는데 충분히 좋아해 줘서 다행이었다. 그래도 내 준비성을 탓할 수밖에 없었다. 약간은 우울하게 아기 옷을 갈아입히는데 이게 참 어려운 과제였다. 파라다이스 시티에 모든 게 구비되어 있던 것만을 생각하고 채채의 목욕타월 같은 걸 가져오지 않은 것이다. 물론, 나는 신생아 때부터 이런 수영 활동을 대비하여 사놓긴 했다. 하지만 그건 집 서랍에 고이 잠자고 있는 상황. 아기는 엄청 춥지, 물에 젖은 상태로 탈의실을 기어 다니려고 하지, 내 옷도 젖어있지, 정말 땀이 삐질 났다.

수영장에 들어가기 전, 수영복 입고 신난 채채. 날씨 탓인지 수영장엔 거의 아무도 없었다.


나는 채채가 옷을 다 갈아입고 머리까지 말린 후에 옷을 갈아입었는데도 쌔한 기분이 들었다. 수영장에서 숙소까지 오는데 올 때 보다 더 추웠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으슬으슬 떨며 숙소로 왔다. 그렇게 걱정했던 일이 일어났다. 채채가 콧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도 목이 아프기 시작했다.



우리의 크리스마스 호캉스는
여기서부터 잘못되어 갔다.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아기 밥을 챙기고 목욕을 시켰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씻지도 못한 채로 배달 피자를 우걱우걱 5분 만에 먹고, 바로 아기 재우기에 돌입했다. 하, 호캉스 와서 이런 그림 꿈꾸는 사람이 있는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편이 요즘 힘들어했으므로 사우나에 다녀오라고 쿨하게 보내주고 아기 재우기를 시작했다. 그런데 채채는 잠자리가 바뀌어서 그런지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래서 침대를 수없이 오르내렸다. 온돌방이라고 해도 방 전체가 요로 되어 있는 게 아니었다. 낮은 침대가 있었는데 채채도 쉽게 오르내릴 수 있는 높이였다. 낮은 침대라 해도 채채가 굴러 떨어진다면 위험할 높이라 아예 바닥에서 재워야 했다. 그래서 부부 중 한 사람은 침대가 아닌 바닥에서 자야 했다. 그리고 그건 주로 내 담당이다.


바닥에서 자는 것쯤은 아무렇지 않다. 집에서도 그러니까. 그런데 채채는 계속 울었다. 뭔가 불편한 듯이 계속 울었다. 혹시나 해서 열을 재보니 37.6도였다. 다른 건 준비를 안 했어도 해열제는 챙겨 온 게 다행이었다. 해열제를 서둘러 먹이고 아기를 관찰해 보니 코가 꽉 막히고 콧물은 줄줄 흘렀다. 채채가 감기에 걸린 것이다.


그래서 채채는 저녁밥도 잘 먹지 않고 보채면서 못 자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굶다시피 한 채채가 안쓰러웠다. 채채는 아직 분유를 먹는데, 분유포트를 가져오기 귀찮아서 킨더밀쉬만 잔뜩 가져왔는데 그게 입에 맞지 않는지 입에도 대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채채가 먹을만한 건 호텔방에 하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난감하고 가여웠다. 내일 아침에 조식이 예약되어 있으니 일단 오늘 밤만 잘 넘기면 내일 조식식사를 잘하면 되지, 하고 스스로를 위안했다.


그렇게 채채가 한 시간을 운 후, 남편이 도착했다.
채채는 여전히 잠들지 않았다.



사우나에서 힐링하고 와 너무 놀란 남편이 채채 재우기에 돌입했고, 10분 만에 채채는 잤다. 아빠가 재웠어야 하나 보다 하고 이제야 내가 씻는 순간, 채채는 울어재꼈다. 혹시 몰라 가져온 아기 코감기약도 먹여봤지만 별로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채채는 계속 비몽사몽 침대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침대에 부딪히고, 바닥에 부딪히고, 울고 불고를 반복했다.


호텔 방 공기가 나빴다. 그래서 그런지 나도 춥고 으슬거렸다. 어젯밤에도 새벽 5시에 잠든 탓에 정말 쓰러질 것 같았지만 채채가 자기 전에는 쉴 수가 없었다. 그렇게 새벽 3시가 되었다. 채채가 집에서는 누워 자는 습관이 들어서 그때까지는 안아주지는 않았는데 너무 울길래 안쓰러워 안아주었다. 그랬더니 채채는 그제야 울음을 그쳤다. 그런데 잠시 앉으려고만 해도 우는 소리를 내고 안고 같이 누우려고 하면 통곡을 했다. 그 바람에 나는 채채를 안고 호텔 방 이곳저곳을 걸었다.


남편은 짜증을 냈다. 그냥 집에 가자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이대로 가다간 운전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리고 내일 조식도 환불도 안 된다 하고. 그 새벽에 집으로 출발하는 것이야말로 정말 고생만 하고 돈만 버린 호캉스가 되는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남편에게 내가 채채를 맡아서 재울 테니 신경 쓰지 말고 자라고 했다. 남편은 잠귀가 어두운 편이라 잘 잔다. 그렇게 남편은 가자고 한지 5분 만에 코를 골며 곯아떨어졌다.


채채도 내가 계속 안고 돌아다니자 잠이 오는지 내 어깨에 머리를 '툭' 떨어뜨렸다. 팔이 끊어질 것 같아 슬며시 내려놓으려고 했지만 바로 울면서 못 내려놓게 했다. 너무나 지옥 같았다. 남편의 코 고는 소리, 답답한 내 콧구멍, 바닥은 따끈한데도 으슬거리는 내 몸. 정말 이게 지옥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돈을 30만 원 넘게 내고 내가 이 지옥에 들어온 이유는 무엇인가. 이게 다 얼어 죽을 낭만 때문이라지. 채채 내려놓기를 여러 번 시도하니 드디어 바닥에서 잠이 들었다. 채채가 4개월 무렵 이렇게 재우곤 했는데 10kg가 다 되어가는 채채를 타지에서 재우는 건 몇 배로 힘들었다.


채채가 잠든 시각,
새벽 5시였다.


채채 옆에 누워 나도 눈을 붙였다. 7시 30분이 되자 채채도 깨어났다. 나는 그때 일어나서 바로 조식을 먹어야 할 것 같았지만 남편은 아직 자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채채를 안아재웠다. 그렇게 우리는 8시 30분에 기상을 하고 10시까지인 조식을 먹으러 헐레벌떡 뛰어갔다. 채채는 아파서 그런지 거의 입에도 대지 않았다. 소리만 지르고 장난만 쳤다. 우리는 그런 채채를 달래랴, 음식 떠오랴, 먹으랴, 정신이 없었다.


내가 기대한 호텔 조식은 조금 더 우아하고 차분한 느낌이었다. 특히나 크리스마스이브 조식이라면 더욱. 결국 10시 땡 할 때까지 뭐라도 더 먹다가 우리는 시간에 쫓겨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씻지도 않고 그 길로 짐을 챙겨서 바로 소아과로 향했다.

비가 그친 아침의 메이필드호텔. 산책을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날씨가 안 좋은 날 투숙객으로서는 만족도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다.


잠을 3시간 정도밖에 못 잔 채채는 호텔보다 공기가 좋은 차 안에서 숙면을 취했다. 나도 너무 졸렸지만 운전하는 남편이 졸리다기에 걱정돼서 간신히 눈을 뜨고 아무 말이나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호캉스, 당분간 절대 안 온다.






'호캉스' 아닌 '헬캉스'를 마치고

우선 내가 준비가 많이 미흡했던 게 가장 후회됐다. 나 혼자 가는 여행이라면 또 모르지만 아기와 함께 가는 여행이라면, 며칠부터 짐을 싸고 또 체크했어야 하는 게 맞다. 분유포트를 가져갔더라면, 미리 수영장 준비물을 챙겼더라면, 이렇게 최악의 결과를 보진 않았을 것 같아 자책하게 된다. 내 닉네임이 'P맘한입'이라고 해서 내가 무계획적인 이런 내 모습을 사랑하는 건 절대 아니다. 정말 고치고 싶고, 고쳐야 한다.


메이필드 호텔도 겨울에 오기에는 별로였던 것 같다. 호텔 내 자연이 아름답다는데 비나 눈이 온다면 산책은 불가능하기에 호텔 내에서 할 게 없다. 아무리 아기와 있어할 게 없다고는 해도 너무 심심한 호캉스다. 아기와 오기 유명한 호텔로 유명하다는데 왜 그런 칭호가 붙었는지 모르겠다. 따로 아기 라운지도 없는데 솔직히 별로 아기친화적이지 않았다. 온돌방이라고 해서 아기와 자기 그렇게 편한 것도 아니었다는 데 한 몫했다.


이 모든 이유를 다 떠나서 우리 아기가 아프게 되었다는 것이 이번 여행의 힘든 점이었던 것 같다. 저녁 8시 30분부터 새벽 5시까지 8시간 정도를 아기 달래면서 지옥을 경험하는 호캉스라. 누구도 원치 않을 것이다. 호캉스가 아니라 헬캉스다. 괜히 내 욕심으로 우리 채채를 힘들게 한 것 같아 미안하고 자책이 된다.


그런데도 우리 채채는 호텔방에서 그 짧은 새에 많은 성장을 보여줬다. 혼자 갑자기 서는 시간이 길어졌고, 여러 번 섰다. 온돌방이 편해서 그랬나 보다. 그리고 잘 말해주지 않던 '엄마'도 여러 번 말해주었다. 고맙다.


내가 참 부족한 부모임을 매일매일 깨닫는다. 특히나 여행지에서는 더욱. 더 겸손하고 현명해져야 한다.


다음 여행은 언제 어디로 가게 될까?
당분간은 여행 갈 일 없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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