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6일 차(15개월) 아기 육아일기
아, 이건 영재적인 모먼트다.
한때 코미디언 이수지 님의 영상에서 '영재적인 모먼트'라는 표현이 등장해서 참 재밌었다. 내가 대치동에서 근무를 해봤기에 이수지 님의 대치동 패러디 영상은 내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왔다. 어머님들을 학교 밖에서 많이 만나보진 않았기에 솔직히 진짜 대치맘들이 그런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뭔가 그럴 거 같아 재밌게 봤다. 개그는 개그로.
그런데 이 웃긴 단어, '영재적인 모먼트'를 내가 우리 아기 채채에게 말할 날이 올 줄이야!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나는 교대 시절 영어교육 시간이 제일 재미있었다. 영어를 좋아해서 영어를 잘하는 법, 잘 가르치는 법이 그렇게나 궁금했다. 그때 배운 내용 중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으니, '결정적 시기'다. 언어 습득의 결정적 시기가 있어서 어릴 때부터 영어를 하면 자연스럽게 '습득'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아주 아기일 때부터 부모가 두 가지 언어를 같이 사용해 주면 아기는 이중언어 화자로 자랄 확률이 높다는 것도 인상 깊게 배웠다.
그때가 스무 살이었다. 나는 스무 살의 결의를 아기가 태어나자마자부터 행동에 옮겼다. 나는 채채가 100일이 되기 전부터 영어 노래 CD를 틀고 노래를 불러주었다. 가끔 가사에 맞는 율동도 했다. 그런데 솔직히 이게 잘하고 있는 건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아기는 아직 말을 할 수 없고, 내 말이 어떻게 들리는지, 알아듣는지조차 알 수 없기 때문에 허공에 대고 열심히 노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다행히 나는 영어와 음악 모두 좋아한다. 즉, 아기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내가 좋아서 한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영어 노래 CD를 틀어주다가, 한 7개월 무렵부터 CD를 틀어주지 않게 되었다. 채채가 CD플레이어가 재생되고 있으면 가만히 두질 않는다. 플레이어를 만지고 툭툭 치고, CD에는 지문자국을 내서 재생이 안 되게 만든다. 결국 제대로 재생되지도 못하고 고장만 나는 사태가 여러 번 있었다. 그 이후로 우리 집에서 영어 노랫소리는 듣기 힘들어졌다.
아, 그러니 생각한 대로 교육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CD 플레이어를 만지는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문제잖아!)
그리고 오늘...
갑자기 생각나서 오랜만에 CD를 틀었다. 6개월 이전에 많이 들었던 노래라 나는 노래를 외우고 있었고, 책과 매치해서 가끔 육성으로도 불러준 노래였다. 채채는 가만히 듣고 있더니 율동이 나오는 가사에서 율동을 했다. 가사가 'yawn and stretch'인데 'yawn', 하품하는 행동을 했다. 남편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거짓말하지 말라고 했다. 다시 노래를 틀었더니 그 부분에서만 하품하는 율동을 했다.
오, 마이 갓.
이건 영재적인 모먼트야!
너무 신기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내가 채채에게 지난 일 년간 목이 터져라 부른 노래가 허공에 대고 부른 게 아니었다니! 채채가 뭔가를 받아들이고 있었다니! 너무 신기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더 열심히 할걸. CD 플레이어로 장난치면, CD가 보이지 않는 CD 플레이어를 사드지 다른 방법을 찾을걸.
다른 아이들도 다 보여주는 흔한 '모먼트'일지 몰라도, 아기가 처음인 나에겐, 우리 채채의 이런 모먼트는 처음이므로, 분명 영재적인 모먼트일 거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채채, 요즘 언어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 '아빠'만 주야장천 말하던 아기가 어느샌가 '엄마'를 하더니,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과일 '딸기'도 한 번 말했다. (딸기는 딱 한 번 말했고 나와 내 친구만 들은 거라, 남편은 이걸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안아'를 습득했고, '열어' 등 다른 말도 따라 하려고 한다.
아직 걷지는 못하지만 언어에는 관심이 있구나, 우리 딸. 우리 채채가 내 말을 이렇게 유심히 듣고 나의 행동을 관찰하고 있었다니. 다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실감이 난다. 우리 채채를 위하여! 더 열심히 수다 떨어야겠다.
목이 쉴 때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