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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개월 아기 첫 문센, 문화센터 별 거 없네

239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우리 아기, 아직 못 앉는데 문센 가도 되나?


엄마들은 문화센터를 줄여서 부른다. '문센'이라고. 주변 엄마들은 거의 다 아기를 데리고 문센을 다닌다. 그것도 우아하게 차를 끌고 다니면서 여유 있게 시간 맞춰서 말이다.



그러나 나는 장롱면허 소지자. 게다가 우리 축복이는 8개월이 되도록 혼자 앉지를 못하니, 문센에 가면 혼자 앉지 못할 것 같아 선뜻 예약하지 못했다. 축복이가 6개월일 때 즈음부터 가고 싶었는데 이제 8개월이니 한번 가봐도 되지 않을까? 그래서 큰 용기를 냈다.




하지만 대중교통으로 축복이를 데리고 문센에 가는 건 쉽지 않았다. 우선 내가 샤워를 하고 나름의 예의를 갖추기 위해 단장(?)을 해야 했다. 축복이가 깨어 있으면 그럴 짬이 나지 않으므로 축복이가 자는 새에 움직여야 했다. 그만큼 내 휴식시간은 줄어드는 것이다.


그리고 축복이가 문센 수업 중 배고프지 않게 충분히 수유를 해야 했다. 그리고 축복이가 다른 아기들과의 외모 경쟁에서 밀리지 않도록(?) 예쁜 옷을 입히고 머리핀도 꽂아줘야 했다. 기저귀, 손수건과 같은 외출 준비물도 챙겨야 하고 문센까지의 교통편도 한번 더 확인해야 했다.


이 모든 걸 문센 시간에 맞춰 해내야 했다. 참 어려운 일이었다.




나도 해낼 뻔했다!

우아하게 자차를 타고 가지 않더라도, 아기띠를 하고 버스를 타고 시간에 맞춰 갈 수 있을 뻔했다. 하지만 웬걸, 버스를 반대로 탔다. 출산 전 매일 이용하던 버스였는데 어떻게 잘못 탈 수 있는가! 하지만 나는 무슨 이유에선지 착각을 했고, 내려서 반대방향으로 가야 했다. 시간이 촉박하게 나섰기 때문에 지각은 확정이었다. 다시 버스를 잡아타서 도착하면 40분 수업 중 반 이상이 끝나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택시를 잡았다. 백화점 7층까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걸어서' 올라갔다. 엘리베이터를 찾아서 기다리는 것도 사치였다. 그런데 수업은 7층이 아니라 6층에서 한단다. 하, 결국 8분 지각이었다. 수업의 1/5이 날아갔다. 나만 지각이었다. 다른 엄마들은 지각생인 나를 신기한 듯 쳐다봤다. 문센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더욱 민망했다.




땀은 미친 듯이 나는데 강사님은 갑자기 '오늘은 아기들이 하녀인 컨셉'이라며 옷을 입히라고 했다. 우리 축복 공주가 하녀라니. 나는 컨셉부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어쨌거나 입히려고 했다. 그런데 땀도 많이 나고 서두르던 마음이 진정되지 않아 아기 옷을 입히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역시나 꼴찌였다.


우리 축복이는 앉지를 못해 다른 아기들처럼 멋있는 사진이 나오지 않았다. 잠깐 벽에 기대어 앉혔다가 이내 중심을 잃고 쓰러질 뻔하여 민망하기도 했다. 축복이가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잘하지도 못하는 아기를 그렇게 무리하게 시도하는 나 자신이 창피했달까. 다른 사람들은 이미 촬영을 끝내고 있어 마음이 조급했다. 축복이에게 코스튬이 꽤 잘 어울리는 것 같았는데 그걸 감상할 겨를도 없었다.


찍은 사진을 집에 와서 살펴보니 우리 축복이는 하녀옷이 아니라 공주옷을 입은 것 같이 예뻤다. 정신없는 엄마가 미안.



코스튬을 입고 강아지(인형)를 돌보는 하녀 축복이.


코스튬 사진 찍기 놀이가 끝나고 강사님은 또 난데없이 가운데 공간에 쌀을 붓기 시작했다. 아기가 만지도록 해달라고 했지만 축복이는 영 관심이 없었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마라카스 하나를 잡고 그것만 신나게 흔들어댈 뿐이었다. 쌀을 만지며 촉감놀이를 하는 수업이었던 것 같은데 축복이와 아기들은 학습 목표와 동떨어진 행동을 했다.


축복이의 하녀 체험은 계속되었다. 먼지 줍기, 밥 하기, 과일 썰기 모두 축복이는 관심이 없었다. 그저 과일 모형을 입에 넣고, 장난감 칼을 먹기에 바빴을 뿐이다.





지각해서 10분이 날아간 30분 수업은 금세 끝나버렸다. 수업을 같이 들은 엄마들도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로 한 마디도 나누지 않고 쌩하고 가버렸다. 준비한 시간에 비해 수업은 턱없이 짧았다. 좀 허무했다.


짜증 내는 축복이를 데리고 수유실로 가서 젖을 먹이고 품에 안고 재웠다. 바로 집에 들어가기 아쉬워 순두부찌개 한 그릇 시원하게 먹었다. 그래, 밥을 먹어주면 여기에 온 이유가 좀 생기지.



문센 첫 경험 어땠어요?


정신없고 힘들었다.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일단 시간 맞춰 아기를 데리고 가는 게 나에겐 너무나 큰 난제이다. 그리고 수업 시간도 시간은 짧은 데 비해 내용은 너무 다양하고 많아서 아기가 교구를 탐색만 하다가 끝나버리는 것 같아서 아쉬웠다. 영아의 집중력은 짧고, 이 수업이 영아 대상이란 건 알지만 그래도 너무 정신없다 끝났다. 나는 수업을 구성하고 직접 하는 입장이므로 이러한 점들이 눈에 보였다.


그리고 코스튬. 수업 기획자들이 내용과 코스튬을 끼워 맞추느라 노력한 건 알겠다. 하지만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굳이?' 싶다. 나는 차라리 코스튬을 입지 않고 그냥 내실 있는 진득한 수업 진행이 더 나을 거 같다. 인스타를 열심히 하는 엄마들은 코스튬 입히는 걸 매우 만족할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난 아니다. (하녀 복장인 것도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고, 준비된 옷이 다 하녀 원피스라서 남자 아기들은 아예 입지 않거나 모자만 썼다. 배려가 부족했다고 본다.)


이 여름에 매주 문센을 오는 엄마들이 대단하다. 그러니 내가 이토록 만족하지 못하는 건, 이 여름에 아기를 데리고 문센에 가는 게 내 능력밖의 일이라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축복이도 이제 문센수업 받아봤다!
'문센, 문센' 하지만, 뭐 별 거 없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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