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기가 떨어질 것 같아요. 들어드릴까요?"

238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나는 조리원에 3주 동안이나 머물러서 조리원 동기가 꽤 많다. 그런데 지금까지 연락하는 조리원 동기는 단 한 명. 언니와 구에서 운영하는 무료 문화센터를 같이 다니게 되면서 교류가 더 잦아졌다.


오늘은 문화센터를 마치고 인생 네 컷 사진을 찍고, 브런치 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아기 둘을 데리고 우리가 두 가지 여정을 잘 마칠 수 있을까?





6월 말인데 벌써부터 무덥다. 너무나 뜨거운 햇살을 뚫고 걸을 자신이 없는 우리는 망설임 없이 택시를 불렀다. 첫 목적지는 인생 네 컷. 택시에서 내려 바로 보이는 셀프사진관에 들어갔다.


힘도 세지 않은 내가 아기를 안고 사진을 찍는 건 쉽지 않았다. 키가 작아 아기를 높이 들어 카메라 앞에 비춰야 했다. 축복이를 떨어뜨리지 않고 촬영 시간을 버틴 게 용한 정도였다. 팔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어떻게 찍히는지도 모르고 사진을 찍었다. 인스타에는 아기 안고 찍은 감각적인 사진이 많던데 나는 사진엔 영 소진리 없나 보다. 딸맘의 예쁜 인생 네 컷은 물 건너갔다.


웃긴 건 동기 언니의 사진이었다. 아들맘 아니랄까 봐 시작하자마자 목마를 딱 태우는데, 자세가 아주 안정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목마에 탄 아기가 언니의 머리카락을 심하게 잡아당기는 것이다. 너무 아프게 잡아당기는 탓에 언니는 당황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고, 그 덕에 우리의 사진은 엽기사진이 되었다.


나는 아기를 떨어뜨릴 것 같은 위태로운 모습,
언니는 아기에게 머리를 뜯기는 안쓰러운(?) 모습.

사진 제목은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딸맘과 아들맘'.




한바탕 웃은 우리는 브런치 식당으로 이동하기로 했다. 그런데 인생 네 컷 사진관은 아기 친화적이지가 않아서 그런지, 어떻게 된 게 의자 하나도 없었다. 의자가 있어야 아기를 잠깐 내려놓고 아기띠를 허리에 두르는데, 바닥에 내려놓고 아기띠를 할 수도 없고 참 난감했다. 엄마 둘에 아기 둘이니 잠깐 아기를 잡아줄 수도 없고.


그래서 우리는 아기띠가 있지만 결국 못하고 식당까지 걸어가로 했다. 사진관에서 5분 거리라 멀지 않았지만 뜨가운 햇살 아래 커다란 짐 가방을 들고 아기를 안고 가는 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힘이 빠져갈 수록 아기도 점점 밑으로 내려갔다.


힘겹게 지나가는 우리를 보고 주위 분들이 한 마디씩 거드셨다.

아이고, 왜 이렇게 힘들게 가?
문 열어드릴까요?


이제는 정말 한계다 싶을 무렵, 겨우 식당 건물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같이 기다리시던 한 분이 우리를 지켜보다가 언니에게 말을 건넸다.


아기가 떨어질 것 같아요.
들어드릴까요?


환하게 웃던 언니는 그 말을 듣자 바로 표정을 굳히고 괜찮다고 말했다. 그래, 아무리 힘들어도 아기를 에게 맡길 수는 없다. 물론 제안하신 분도 그런 부모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하시겠지만, 오죽 안쓰러워 보였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 우리 모습이 그랬다. 아기를 안고 어쩌지 못해 끙끙대는 안쓰러운 모습이었으리라.


옷이 다 젖을 만큼 땀을 흘리며 식당에 들어갔지만 우리 맞아주는 직원은 없었다. 하필 셀프 식당이었던 것이다. 빈자리를 찾고 주섬주섬 아기띠를 한 후에 아기의자를 설치했다. 주문도 당연히 셀프. 아기들을 혼자 둘 수 없으니 안고 키오스크까지 가서 주문해야 하는데, 그것조차도 천근만근이었다. 아기가 없을 땐 한 번도 고려하지도, 상상해보지도 못한 불편함이었다.


어찌어찌 주문도 하고 드디어 자리에 앉았다. 하아...





하지만 육아는 끝나지 않았다. 언니는 식당에서 이유식을 주겠다고 했다. 음식이 나오기 전까지 이유식을 주겠다며 식당에 전자레인지 조리를 부탁했다. 그러는 와중에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우리는 난관에 봉착했다. 이유식을 먹이면서 브런치를 먹어야 하는 것이다.


언니는 미안한지 나부터 먹으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다. 하필이면 아기가 비트를 처음 먹는 날이라 언니가 새로 만든 비트이유식을 낯설어해서 잘 안 먹었다. 시간은 흐르고 음식은 식어갔다. 우리 축복이도 배가 고픈지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친구가 이유식을 먹는 걸 보니 배고팠나 보다. 미안하지만 축복이 껀 없었다. 축복이는 이유식 먹을 때 너무 흘려서 밖에서 먹일 생각은 하지도 못하니까. 나는 축복이를 달래랴, 옆의 아기가 흘린 이유식을 닦으랴 정신이 없었다.


이유식 시간이 끝나고 드디어 우리가 식사할 차례였다. 너무 배가 고파서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우리는 세상 분위기 있는 브런치를, 세상 멋없게 우적우적 먹어댔다. 아기들이 하도 번갈아 소리를 지르는 통에 떡뻥 쥐어주랴, 샐러드를 입에 욱여넣으랴 무슨 맛인지도 못 느꼈다. 그래도 어렴풋이 떠올려보자면, 맛은 전체적으로 꽤 괜찮았던 것 같다.


"아기가 떨어질 것 같아요. 들어드릴까요?"

"아기가 떨어"아기가 떨어질 것 같아요. 들어드릴까요?"질 것 같아요. 들어드릴까요?"

축복이의 수유 시간도 지났고, 아기들도 졸려했다. 식사가 끝나자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바로 일어나서 갈 준비를 했다. 축복이는 어찌나 졸렸던지 아기띠를 하고 밖으로 나가자마자 잠이 들었다. 집에 도착할 때까지 잠자는 숲 속의 공주처럼 곤히 잤다.




아기와의 외출은 이렇게 정신이 없다.

집에만 있으면 편한데 왜 이렇게 외출을 해야 하나?

아니다. 집에만 있는다고 결코 편한 건 아니다.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은 언제나 있기 때문이다.


어차피 편하지 않을 거, 조금만 더 힘들면 기분전환이 된다. 행여나 맘충소리 들을까 밖에서도 언제나 노심초사하지만 그래도 우리는 이래서 외출을 끊을 수 없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