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미 없는 장미원에 다녀왔어요

209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장미 보러 왔는데 장미가 없네...


나와 남편, 우리 딸이 겪은 일이다.


남편과 나는 둘 다 MBTI 성향 P이다. 어딘가에 가기 전에 자세히 알아보고 계획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둘 다 그러니 좀 곤란할 때도 있다. 그게 바로 오늘이었다.






누군가가 서울대공원에 가면 '장미원'에 꼭 가보라고 했다. 흐드러진 장미를 볼 수 있고 아이와 산책하기도 좋다고 했다. 장미가 언제부터 피는지, 장미축제가 언제부터 언제까지인지는 듣지 못했다.


봄이니까 장미가 피겠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우리는 준비 없이 장미원에 갔다. 결혼기념일을 맞아 특별한 나들이를 하고 싶은 마음에 굳이 찾은 장소였다.


장미원에 입장하는 순간, 축복이는 화가 났다. 배가 고팠나 보다. 장미원 입구에 있는 수유실에서 축복이를 배부르게 먹이고 장미원을 진짜로 마주한 순간, 우리는 탄성을 내질렀다. 멋있어서? 아니다.


장미가 없었기 때문이다.






초록잎이 무성한 장미원을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를 탓하랴. 나도, 남편도 조사가 부족했던 것을.


굳이 굳이 눈을 씻고 찾아보니 조금 이르게 핀 장미가 10송이 정도는 있었다. 우리 세 명은 그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래, 뭐 카메라 화면 하나 채우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장미였다.


장미원에 나서면서 보니 지금은 알고 보니 장미 축제 기간이 아니었다. 6월 초는 되어야 만개할 것 같다. 그때 다시 오기로 했다.





축복이의 첫 동물원

아쉬운 대로 동물원에도 갔다. 로랜드 고릴라가 멸종위기라며 고릴라 앞에서 동물해설사가 해설을 해주었다. 그냥 고릴라를 봤다면 별 감흥이 없었을 텐데 설명을 들으면서 보니 고릴라가 짠하기도 하고 흥미로웠다. 얼마나 외롭고 무료할까. 이 고릴라는 나보다도 나이가 많았는데, 이제 사람들을 보는 게 익숙한지, 우리 가까이로 아기들이 다가가자 박수도 치고 손뽀뽀도 하는 개인기를 선보였다.




나는 갑자기 직업병이 발동하여 '나중에 만날 우리 반 아이들에게 설명해 주어야지' 하고 머릿속으로 곱씹는 사이, 정작 축복이는 잠에 빠져들었다. 엉덩이에 빨간 혹이 너무 크게 나서 (실제로 아프지 않다 하지만) 아파 보이는 원숭이도, 아주 큰 타조도, 밀림의 왕 사자도, 축복이에게는 관심 밖의 대상이었다.


축복이는 유모차에 누워 세상 편한 낮잠에 빠져들었다. 아직 축복이가 동물원에 오기에는 어리구나 싶었다. 아쉬우면서도 귀여웠다.


우리는 '오히려 좋아'를 외치며 유모차를 끌며 결혼기념(?) 동물원 산책을 했다. 이쯤 되면 우리가 보고 산책하고 싶어서 동물원에 온 모양새가 되었다. 그만큼 축복이는 오래 잤고, 동물원은 넓고, 사람은 없었다. 곧 무더워질 것이다. 이런 가벼운 산책도 더 이상 가볍지 않게 될 것을 생각하니 좀 아쉬웠다.





숟가락을 놓자마자 울음을 그치는 우리 딸...

동물원 산책 후 우리는 아웃백으로 향했다. 우리의 추억이 있는 곳이라 결혼기념일에 오기에 괜찮다며 기대를 했다. 그런데 식당에 도착해서 음식이 나오는 순간부터 축복이가 갑자기 울기 시작했다.


잠이 오는지 축복이는 많이 울었다. 축복이를 달래고 있자니 스테이크와 파스타는 차갑게 식어만 갔다.

결국 남편은 구석으로 가서 축복이를 달래고, 나만 식탁에 덩그러니 남았다. 남편은 나라도 맛있게 먹으라고 했지만 축복이가 멀리서 우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음식이 넘어가지 않았다.


이 음식을 지금 먹으라면 너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ㅠㅠㅠ


남편의 노력에도 축복이는 쉽사리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렇게까지 울진 않는데 의아할 정도였다. 아마 젖물잠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으니 많이 화가 난 모양이었다.


나는 급한 대로 축복이가 좋아하는 부스럭거리는 종이를 손에 쥐어줬다. 바로 아웃백 식기를 넣어두는 종이. 아웃백 테이블 위에 세팅되어 있는 종이 말이다. 새로 보는 종이이고, 부스럭거리는 게 마음에 들었는지 종이를 한참 만지고 물어뜯었다. 그 종이가 축복이에게 효과가 있는 바람에 그제야 남편은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이미 음식은 다 식은 뒤였다. 파스타는 다 불어서 먹을 수 없게 되고 고기도 맛이 덜해졌다. 우리는 그렇게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배가 불러 포크를 내려놨다.


그때였다. 축복이가 잠이 든 것은....


우리의 식사가 끝나자마자 기가 막히게 잠든 축복이... 결혼기념일 식사도 아기와 함께라면 뭐 없다. 이 또한 추억으로 남으리...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