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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찍은 백일 사진: 200일 사진 찍고 왔어요!

234일 차 아기 육아일기

by P맘한입
백일 사진을 147일째 날 찍으면 잘 찍을 수 있을까?

축복이가 발달이 빠른 편이 아니라 범보의자에 잘 앉지 못해서 최대한 늦춘다고 늦춘 게 147째 날이었다. 그러나 축복이는 그때까지도 앉는 게 미숙했고, 집으로 부른 출장 촬영은 아쉬움만 가득 남기고 마치게 되었다. 사진 결과물도 당연히 아쉬웠다. 앉는 게 버거웠던 축복이는 밝은 표정을 지을 수 없었고 '어어, 내가 넘어가네' 하는 다소 당황하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으니까.

147일에 찍은 백일사진, 웃지 않는 아기에게 배운 것


그렇게 백일은 까마득히 지나고 200일하고도 30일이 지날 무렵, '백일 사진을 지금 찍으면 참 잘 나오겠다' 싶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백일 사진이라고 쓰고 200일 사진이라 읽어야 할 사진이 되겠지.



친구가 추천해 준 돌 스튜디오에 문의를 하니 100일 사진(즉 내가 이번에 찍는 200일 사진)과 돌 사진을 묶어서 세트로 찍으면 할인이 된다는 말에 그렇게 하기로 했다. 일생에 한번뿐일 돌 사진을 찍을 곳으로는 한옥 스튜디오가 끌렸지만, 100만 원이 족히 넘는 가격이었다. 그런데 200만원도 훨씬 넘게 주고 찍은 결혼식 사진만 봐도 도통 펼쳐 보지를 않는다. 아기 꺼니까 결혼식 사진보다는 더 꺼내볼 것 같긴 하지만, 한옥은 아무래도 욕심인 것 같아 가성비 좋은 스튜디오로 결정했다. 친구가 찍은 사진을 보니 결과물도 좋아 보였다.


그래, 200일 사진 찍어보는 거야!




D-day, 촬영 당일.

백일 촬영 당시, 사진의 퀄리티를 좌우하는 건 딱 하나, 아기의 컨디션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나서 축복이의 컨디션을 맞추기 위해 MBTI 유형 P답지 않게 계획을 짰다.


10시 20분~: 아기가 깨있어야 함

11시 35분~40분: 수유

11시 50분: 집 출발

12시 20분: 차로 출발 (차에서 자야 함)

1시 20분: 도착 & 수유

1시 30분: 옷 고르기

2시: 촬영 시작


정말 이토록 시간을 치밀하게(?) 계획하는 건 내 사전에 드문 일이었지만 계획을 짜고 나니 안심이 되고 뿌듯했다. 이 맛에 J들이 열심히 계획을 짜는구나.


#P맘의 돌발상황1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변수가 생겼다. 내가 충분히 치밀하지 못했던 탓에 생긴 변수였다. 오늘은 아기 뿐 아니라 부모도 촬영을 하는데 내 머리가 너무 어중간해서 예쁘지 않았던 것이다.

평생 남는 사진인데...

그런데 이 사진이 평생 남는다고 생각하니 미용실에 가서 손을 좀 보고 기왕이면 세팅된 상태에서 촬영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생각이 왜 지금 날까!


새벽부터 10시에 운영하는 미용실 중에 평점이 괜찮은 곳을 찾기 시작했다. 다행히 집에서 3분 거리에 괜찮은 미용실이 있었고, 커트를 하고 드라이도 받았다. 그러고 나자 다음 시간표 맞추기가 촉박했다. 하지만 집에서 남편이 축복이를 데리고 고군분투해 준 덕분에 가까스로 시간을 맞출 수는 있었다.




#P맘의 돌발상황2

교통 상황 덕분에 첫 번째 돌발 이슈에도 늦지 않게 스튜디오에 도착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아침에 일어나서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는 것이다. 2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었다.

촬영하다가 당 떨어지면 어떡하지...
이번 사진은 꼭 성공해야 하는데...

근처 빵집에서 뭐라도 사서 차에서 먹기로 한다. 또 굳이 찾으려니 빵집은 보이지 않고, 계산줄은 길고, 시간은 지나고... 애가 탔다. 결국 시간이 촉박하여 산 빵을 다 먹지도 못하고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다행히 늦지는 않았다.




드디어 촬영 시작!

계획대로 차에서 푹 잔 축복이는 컨디션이 최상이었다. 바로 옷을 입고 촬영하기로 했다. 그런데 이때 또 예기치 못한 일이 생긴다.


#P맘의 돌발상황3

축복이의 옷이 없다. 분명히 촬영기사님이 스튜디오에 구비된 옷이 있다며 편하게 오라고 하셨는데, 마음에 드는 옷이 없었다. 옷의 색깔과 종류가 많지 않았는데 우리 축복이에게 어울리는 옷은 없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그나마 괜찮은 옷을 골랐는데, 갈색이었다. 축복이는 밝은 색, 그중에서도 하늘색이 어울리는데 얼굴을 죽이는 옷을 입고 사진을 찍었다.


그 상황에서는 웃어넘기려고 했지만, 사진 결과물을 보니 더욱 아쉬움이 남는다. 옷 좀 챙겨갈걸... 어떻게 이렇게 준비가 부족했을까! 앞의 돌발상황 두 가지는 운이 좋게 어떻게 잘 넘겼지만 세 번째 돌발상황은 꽤 타격이 컸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축복이는 세상 밝은 얼굴로 촬영을 시작했다. 내가 백일사진 때 하고 싶었던 터미타임 사진도 잘 찍었다. 엄마, 아빠가 함께하는 가족사진을 찍을 때도 방긋방긋 웃어주니 속상한 마음이 사르르 녹아내렸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20분 정도가 지나자 축복이는 급격히 집중력을 잃었다. 안 그래도 싫어하는 모자를 자꾸 씌우려고 하니 자꾸 표정은 굳어갔고, 카메라 렌즈가 아닌 다른 사물을 보기 시작했다. 역시 아기들 사진은 이래서 찍기가 힘든가 보다.




대망의 백일상 사진 컨셉. 백일 사진의 꽃이었음에도 가장 아쉬웠던 컨셉이라 기대가 되었다. 하지만 이미 이때 축복이는 인내심이 거의 바닥난 상태였다. 그리고 147일 차 때보다는 허리의 힘이 생겼지만, 아직 완전히 앉지는 못하는지라 범보의자에서 역시나 갸우뚱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표정에도 그때와 비슷하게 불만스러운 감정이 드러나 보였다.


축복이의 급격한 컨디션 악화로 인해 촬영을 급하게 종료할 수밖에 없었다. 1시간 반만이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아쉬웠지만 그래도 초반부에 방긋방긋 웃는 사진을 남길 수 있었던 건 만족스러웠다.





두 번째 백일사진을 마치며


나의 준비성 부족한 성격은 이런 날 여지없이 빈틈이 드러난다. 나름 준비를 한다고 하는데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더 보완할 점이 보인다. 미리 머리를 했더라면, 아기 옷을 미리 구매해 뒀더라면, 기왕 늦게 200일 사진 찍는 거 조금 더 늦게 찍었더라면 기왕 찍는 거 더 잘 찍었을 수 있었을 텐데... 후회되는 부분들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어찌 잘 흘러간다. 그게 다행이면서도 아쉽다.


생각해 보면 나는 무슨 일이든 한 번에 잘하는 경우가 드물고 한 번 해보고 그다음에 보완을 해서 더 잘하는 스타일이다. 그전에는 준비를 하더라도 뭔가가 엉성하고 세세히 준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내 초임교사 시절이 유독 우당탕탕거리고 힘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 번에 끝나고 마는 스타일의 일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기회가 없으니까. 이번의 퍼포먼스가 마지막이라는 생각은 나를 압박하고 스트레스받게 한다.


왜 그럴까. 처음부터 잘하면 참 좋을 텐데. 참 무서운 건, 이제 나는 엄마라는 거다. 축복이는 한 명이고 둘째 계획은 전혀 없다. 둘째가 생긴다 하더라도 축복이는 한 명이므로 나의 미숙함으로 축복이에게 실수를 하면 그건 돌이킬 수가 없다는 거다. 그래서 더 두려움이 생긴다. 엄마로서 정말 더 갖춰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그래서 고가의 한옥스튜디오를 예약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한 번뿐인 촬영이 망쳐지면 너무 속상할 테니까. 망치지 않으려면 준비를 세세히 잘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압박으로 다가온다. 이래저래 나는 내 성격에 맞는 스튜디오를 잘 예약한 거 같다.


다음엔 진짜가 온다...!


이제 돌사진 촬영이 남았다. 이게 100일, 200일 사진 촬영보다 더 중요하다. 두 번의 경험을 토대로 더 세세히 미리부터 준비해서 만족스러운 사진을 얻으리라!


오늘 사진의 결과물은 다소 아쉬움이 남지만, 그래도 가족끼리 이렇게 사진을 찍으러 온 자체가 좋은 추억이 될 것 같다. 우리 부모님과도 조만간 사진 한 장 남겨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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