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당탕탕' 돌잔치가 끝났다. 내가 하는 일에는 늘 '우당탕탕'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나이 30 먹고도 이렇다는 게 좀 슬프기도 하다. 다시 태어나면 좀 달라지려나.
원래는 직계가족끼리의 식사였기에 큰 부담없는 자리였다. 그러나 나는 사진, 그놈의 사진을 건지겠다고 드레스에, 메이크업에, 스냅촬영에 여러 군더더기를 붙이는 바람에 부담이 큰 자리가 되었다. 뭐 아무튼 간에 어쨌거나 돌잔치는 잘 끝났다.
하지만 돌잔치가 끝난 밤 정작 여운이 남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바로 엄마의 얼굴이다.
어제부터 긴장돼서 잠도 잘 못 잤고, 피곤이 밀려오지만 나는 쉽게 잠에 들 수 없다. 지금껏 키워주신 엄마, 엄마가 제일 보고 싶다. 제일 얼굴이 아른거린다. 돌잔치날까지도 나를 걱정스럽고 또 대견하게 봐주시는 눈, 두둑히 챙겨주시는 현금과 돌반지와 돌팔찌. 그 사랑을 어떻게 갚을수 있을까. 일 년 내내 아기와 씨름하며 고생한 걸 보니 30년 동안 우리 엄마는 어떻게 나를 키운 건지 가늠이 안 된다.
그런데 남편에게 내가 엄마에게 곱지 않은 말투를 쓴다고 했다. 나는 엄마를 막 대한 적이 없는데 그런 말을 들으니 내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너무 그런 말투가 일상이라 내가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 같다. 미안함이 밀려온다. 손녀 돌잔치라고 바리바리 짐을 싸고 몇 날 며칠부터 준비하고 화장하고 예쁘게 꾸미고 오셨을 우리 엄마.
새가족을 꾸리고 보니 정말 가족밖에는 남는 것이 없다. 가족이 최고다. 친구들은 돌이라고 말해봤자 축하메세지 하나 보내지 않는다. 나에게는 천사같은 아기지만, 아무리 친한 친구더라도 그들에게는 남이 자식일 뿐이다. 어찌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젊은 날들 친구나 지인에게 절절 매며 내 시간과 돈을 얼마나 기꺼이 나누어주었는가. 그때였으니 가능한 일이었고 순수한 마음이 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반면에 내 지난 20대 때, 가족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보냈는가. 손에 꼽는다. 나는 알아주는 밖순이였으니까.
그게 얼마나 부질없고 못난 짓이였던가. 도대체 어디서 재미를 찾고 무엇을 찾아 헤맸던가. 실망스럽기도 하지만 그게 당연한 건데, 내가 이 진리를 너무 늦게 깨달은 것 같다.
우리 가족, 우리 엄마.
이게 전부다.
내가 잘되고 성공했을 때 기뻐해줄 사람,
힘든 일을 당했을 때 진심으로 같이 울어주는 사람.
우리 가족 뿐이다. 엄마가 되어 가족을 꾸려보니 이제야 알겠다.
자식을 1년 키워보니 느낀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우리 엄마가 얼마나 힘들었을지를.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다.
엄마에게 편지 한 통을 써야겠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철없던 지난 날들을 반성하며.
우리 축복이가 또 나를 이렇게 키워주었다.
고마워, 천사같은 우리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