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게 전쟁이다.
요즘 나와 우리 축복이를 가장 잘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 축복이는 6개월 이유식이 시작한 뒤로부터 지금까지 쭉 잘 먹지 않는다. 처음에는 이유식이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가 했다. 내가 직접 만든 이유식이 맛없는 것 같아 7개월부터는 시판 이유식으로 전부 바꾸었다. (내가 이유식을 사다 먹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큐브틀이며, 도구며, 맥시멀리스트답게 전부 다 사다 나를 때까지는...) 이유식 브랜드도 바꾸고 질감도 바꿔보며 축복이가 이유식과 친해지길 기다렸지만 8개월이 되도록 쉽사리 친숙해지지 못했다. 보통 혀 내밀기 반사는 6개월쯤 없어진다는데, 축복이는 8개월이 됐는데도 숟가락이 입에 들어오면 혀를 내밀어 먹이기가 더 힘들었다. 9개월쯤 혀 내밀기 반사가 사라지고 좀 잘 먹나 싶었는데 한 번도 잘 먹은 적이 없으면서도 밥태기는 득달같이 오는 바람에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벌써 돌이 되었다.
긴장되는 저녁 식사시간, 오늘 먹은 양이라고는 고작 아침 50g, 점심 40g이었다. 돌아기의 한 끼 권장량 200g이다. 축복이가 신생아도 아니고 이 정도만 먹는다는 게 말이 되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조건 두둑히 먹여야 했다.
그러나 간절한 내 마음과는 달리 축복이는 먹을 생각이 없었다. 입을 그냥 다문 것도 아니고 '앙다물고' 이 식사시간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나도 그냥 밥상을 치워버리고 이 상황을 끝내고 싶었지만 축복이가 오늘 하루 종일 너무 굶었다는 생각에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축복에게 색다른 물건을 계속 쥐어줬다. 축복이의 주의를 끌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축복이는 잡기 싫다는 듯 계속 떨어뜨렸다.
그리고 김을 싸서 주면 먹을 때가 있었지만 저녁시간만큼은 김을 싸서 줘도 효과가 없었다. 그냥 봉지째로 의자 밑으로 날릴 뿐이었다.
이번엔 다양한 소리를 내보았다. 음메음메 젖소 소리, 도리도리 재밌는 소리, 반짝반짝 작은 별 노래... 아무리 내가 주의를 끌려고 해도 전혀 통하지 않았다. 내 입만 아플 뿐이었다.
과일은 축복이에게 치트키이다. 시판 퓨레를 사서 주다가 이마저도 질려하는 것 같아 숫제 갈아서 주스식으로 마시면서 밥을 주고 있다. 주스는 돌 전에 먹으면 안 좋다는 걸 알고 있어도 어쩔 수 없었다. 일단 입을 벌리게 해야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이제 어려워졌다. 며칠 전에 장염에 걸려 '과일은 당분간 금지' 권고를 받았던 것이다.
어떻게 먹이지?
그래도 먹여야했다. 결국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 하나. 새어나오는 한숨을 꾹 참았다. 핑크퐁 아기상어 영상을 켰다. 영상을 켜자 축복이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이이~~'하면서 (아저씨)소리까지 내며 웃었다. 그리고 핸드폰을 잡고 싶어했다. 하는 수 없이 쥐어주었다.
축복이는 홀린 듯 영상에 집중했고 나는 그 틈을 타 입에 마구 집어 넣었다. 그렇다고 입을 크게 벌리는 것 도 아니었다. 입도 정말 조금만 벌려 그 틈에 밀어야 했다. 축복이는 숟가락 앞쪽 끝 분량만 먹었다. 그래서 한 숟가락 분량을 세 번에 걸쳐 나누어 먹었다. 속도가 늦은 게 당연했지만 그래도 여유를 부릴 수는 없었다. 축복이가 관심이 흐트러지면 이마저도 입을 벌리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겨우 겨우 100g을 먹었다.
이건 권장량에 반도 안 되는 양이었다. 하지만 축복이 딴에는 많이 먹은 거라 입에 어떻게든 욱여넣은 내 자신이 나름 뿌듯했다. 하지만 불현듯 정신을 차리고 생각했다.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나는 지금 밥에 관심도 없는 12개월 아기를 데리고 영상을 보여주며 입에 쑤셔넣는 행위를 하고 있는 엄마였다. 평소에 내가 욕하던 그런 엄마의 모습이었던 것이다. (아, 물론 실제로 '욕'을 하진 않았다. 좋지 않게 생각했단 의미이다.)
출산하기 전에는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 다짐의 다짐을 했다. 어린 나이의 미디어 노출이 나쁜 걸 알면서 왜 그걸 그렇게 하느냐는 거다. 엄마들이 자기 편하자고 하는 일이라고, 나는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그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아기는 '내가 하는대로 된다'며 미디어 노출은 최대한 늦추리라 마음 먹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축복이의 미디어 노출시기, 빨라도 너무 빠르다. 이제 갓 돌 지났다. 이거 나 편하자고 하는 일인가? 글쎄,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유와 과정은 상관이 없게 느껴졌다. 도무지,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식탁 아래 바닥을 보니 참담했다. 주의를 끌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러져 있었다. 축복이의 옷은 이미 밥 범벅이었다. 축복이가 안 먹겠다고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는 바람에 떨어진 거였다.
정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게 맞나?
왜 우리 축복이만 이렇게 안 먹는지, 내가 무얼 실수한 건지, 아니면 축복이에게 문제가 있는 건지, 별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안 먹는다고 하더라도 영상이라도 보여줘서 먹게 하는 게 맞나 싶었다.
이 나이에는 안 먹는 게 안 먹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뇌 발달에도 악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어떻게라도 더 먹이는 게 맞긴 하다. 그런데 이게 반복된다면 나쁜 습관으로 굳어질 게 두렵다. 밥을 먹을 때는 엄마가 수많은 장난감을 대령해오고, 재미있는 영상을 보여주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면 어쩌나. 장기적으로 보면 손해도 만만치 않다.
내 육아는, 특히 식(食) 면에서의 육아는, 또 다시 미궁속으로 빠져들었다. 6개월 이후부터는 글을 거의 못 썼다. 어쩐지, 이유식 시작한 6개월부터는 글을 쓸 시간도, 체력도 남지 않았던 것 같다. 다 이 놈의 먹는 것 때문이다! 지긋지긋하다. 시간이 약이 될런지, 내가 열심히 방법을 찾아야 하는지, 아니면 그 둘 다가 필요한지 알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