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는 정말 우리를 자유롭게 하는가?

'생존 제약'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자유'의 공허함.

by 박세환

태고 자연 상태의 삶에 대한 동경은 다양한 이데올로기에서 다양한 이유로 칭송되어 왔는데, 자유주의자들 역시 오랫동안 국가질서가 있기 이전 단계의 원시적 삶을 동경해왔다.(18C 초기 자유주의 철학자들이 ‘자연’을 얼마나 자주 언급했던가!)

자유주의자들은 세상 모든 부자유가 다 ‘공적질서’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식으로 종종 주장하곤 했다. 당연히 그 공적질서의 주체로써 정부가 탄생하기 이전의 삶은 필경 다 자유롭고 아름다우리라.

… 정말 그러한가?


감상적 자유주의자들은 원시인들이 어느 특정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끝없이 돌아다님을 자유로움의 상징으로 보고 동경하곤 했다. 대단한 착각이다. 원시인들에겐 다른 곳으로 이동할 자유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한 곳에 오래 머물 자유가 없었던 것이다.

식량의 습득이 사냥과 채집에 불구했을 단계의 인간은 넉넉한 식량을 찾아 끝없이 이동을 해야만 했다. ‘생존’이라는 냉혹한 목표는 그들에게 ‘정착할 자유’를 앗아가 버렸다.(유목민들의 삶은 아직도 이 상태에 머물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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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식의, 생존에 의한 불가피한 자유 상실을 ‘생존 제약’이라고 부른다. 당신이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해야 하고, 하기 싫은 출근을 해야 하며, 보기 싫은 상사를 만나야 하고, 재수 없는 사장의 비위를 맞추어야 하는 이 모든 것이 생존 제약으로써의 부자유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정부가 있건 없건 대다수의 생명체는 이런 식의, 생존 제약에 의한 부자유 속에서 살아간다.


그리고 이건 사상으로써 자유주의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물론 이 부자유로부터 다소 떨어져 있는 이들도 있다. 생존 제약을 충분히 커버할 만큼의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이 보통 그러하다. 이들은 이미 쌓아놓은 기반이 너무 튼튼함에, 온갖 ‘병크’를 뿌리고 다녀도 어지간해서는 굶어 죽거나 맞아 죽을 일이 없다.


이러한 지위가 오래가면 갈수록 이에 반비례하여 현실감각은 상실되는 경우가 많은데(주변의 견제(?)를 받지 않으니까) 아예 태어날 때부터 한평생 생존 제약을 거의 받지 않았던 사람의 경우, 중년의 나이에도 실로 경이로울 정도로 철없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스스로의 문제의식이 아닌 멋으로 특정 이데올로기를 지지하는 사람들을 비하할 땐, 경멸의 의미로 그 이데올로기 앞에 ‘패션’을 붙이곤 하는데, 이들이 보통 그 대상이 되곤 한다.)


여하튼 중요한 점은, 삶이 더 자유롭거나 혹은 덜 자유로운 것은, 생존 제약이 커버될 만큼의 무언가(돈, 권력, 능력, etc)를 당신이 얼마나 보유하고 있느냐의 문제인 것이지 애초에 자유주의라는 사상이 얼마나 퍼져 있느냐 따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막말로 생존 제약을 커버 칠 만큼의 역량이 되는 사람일 거면 사우디나 부카니스탄에 살아도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당장 하루하루의 삶을 걱정해야 하는 (‘자유’의 대국) 미국 빈민촌의 삶은 어떠한가? 오늘도 할당된 필로폰을 적재적소로 보내기 위해 경찰의 눈치를 실실 살펴야만 하는 그들의 삶이 당신의 눈에는 자유롭게 보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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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18C이후 자유주의가 우리의 자유 증진에 정말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했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자유주의 이전의 전근대식 삶 속에는 생존 제약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상한 자유 제약이 많았다. 이를테면 전통적이며 봉건적인 금기로 인해 특정 색깔의 옷을 입어선 안 된다던가 특정 장소를 이용할 수 없다던가 하는 것들 말이다. 물론 이런 식의 전통적이고 봉건적 제약들은 오늘날 소위 근대화된 나라들에선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늘 하는 말이지만, 자유주의의 극단으로써, 포스트모던을 신봉하는 신좌파들은 여전히 세상에 ‘종교적이며 봉건주의적 잔재’가 너무 많아 사람들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식으로 지적 사기를 시도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해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들의 밥줄이 끊길 테니 말이다.


그러나 사람들도 바보가 아니라서 그런 식의 주장은 (한국을 포함한, 이미 사회문화적 자유가 거의 달성된 제1 세계에서) 나날이 설득력을 잃어가고 있다. 사람들이 느끼기에,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전근대적 자유 제약이란 기껏해야 동성애와 같은 젠더와 섹스 문제에 극히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나머지는? 다 경제적 압박으로 인한 생존 제약이다. 이 상황에서 경제를 말하지 않는 포스트모던 신좌파들의 목소리는 더 이상 의미를 가지기 힘들 것이라 본다.


결과적으로 포스트모던 신좌파들의 영향력은 오늘날 빠른 속도로 대안 우파세력들에게 이전되고 있는 중이다.

+프롤레타리아트 계층의 생존 제약을 제거하는 것에 있어 자유주의 사상은 거의 아무런 긍정적 역할도 하지 못한다. 기껏해야 자본가들의 경제적 자유를 무제한 옹호함으로써 하위계층의 삶을 더욱 팍팍하게 만드는 데 일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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