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봐봐, 역시 이번에도 내 생각이 옳았어!"
20C의 많은 사회학자들은 인터넷의 발달이 사람들의 화합을 더욱 강화시켜줄 것이라 기대했었다. 모두에게 개방된 인터넷은 마치 칼라와 같이 서로의 생각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준다.
물론 21C가 20년이나 흐른, 지금을 살고 있는 우리들은 지난 세기 사람들의 기대가 얼마나 허망한 판타지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인터넷이 칼라라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만 작동시킬 수 있는 너무나 간편한 칼라였다는 것이 문제였다. 사람들은 '각자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칼라를 열어둔다. 그 밖엔? 다크템플러처럼 자비 없이 신경삭을 끊어버린다. 차단 차단 차단...
일전 '교집합 운동'을 운운하면서 열중에 셋이 다르고 일곱이 같으면 덮어놓고 뛰어가서 연대해야 한다고 누차 피력한 바 있으나 실제론 열중 아홉이 같아도 하나가 어긋나면 바로 차단이 들어간다. 인터넷이라는 '칼라'는 너무나 간편해서 무려 수천만의(영어를 할 줄 알면 수억의) 사람들 중 정말 당신과 99% 이상 일치하는 사람들을 손쉽게 찾아준다. 때문에 당신은 "당신과 무려 10% 씩이나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을 피곤하게 상대하고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응 차단~
이제 더 이상 전선은 좌파와 우파 사이에서만 형성되지 않는다. 좌파끼리, 우파끼리도 서로를 적대한다.
물론 일전에 필자는 좌파와 우파 내에도 무수한 다름이 있음에 같은 좌파, 같은 우파 내에서도 치열한 정합성 투쟁(?)이 있어야 함을 어필한 바 있다. 그러나 지금 온라인 공간에서 일어나는 양상은 조금 다르다. 간단하게, "응, 너 차단~"의 세계에선 치열한 정합성 투쟁 같은 것이 일어날 수가 없다. 좌파건 우파건 그저 '내가 아닌 사람들'은 다 이상한 사람들일 뿐이다. 그들을 치열하고 피곤하게 상대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그저 피해버리면 그만이다.
나와 같음이 철저하게 검증된 사람들만을 모아놓은 나만의 공간 속에서, 나는 그저 "내가 옳았다."는 것을 끝없이 검증, 확인받으며 자위한다. "맞워요! 저도 님과 똑. 같. 이 생각해요^^" "여윽시 이번에도 내가 옳았어! 봐봐. 남들도 다 그렇게 생각하잖아ㅎㅎ"
...
이 상황이 끝없이 심해지면, 종국엔 사회 구성원들이 더 이상 서로의 존재를 이해할 수 없는 상황까지 치닫게 된다. 단순히 저 사람의 의견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저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를 수용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수용할 수 없게 된다.
그 끝은 보지 않아도 뻔하다. 말에 의한 소통이 불가능해지면 필연적으로 총과 칼이 등장할 수밖에. '칼라'가 없을 때만도 못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