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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협하지 않는 고집과 위대한 사상

'사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by 박세환

공자는 춘추시대 여러 나라를 유랑했는데, 이는 그가 한 '대감님' 아래서 자리를 잡고 뿌리를 내리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준다. 누가 좀 괜찮은가 해서 찾아가 녹봉을 받아먹다가 이내 '문제'를 알게 되고, 그러면 또 짐을 싸고 나와 다른 집단으로 갔다가 거기서도 '문제'를 깨닫게 되고, 계속 이런 식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보통 한 두 번 돌아댕기다 결국 한 곳에서 자리를 잡고 "세상 보기도 좋고 먹기도 좋은 떡이 어딨냐 다 거기서 거기지" 이렇게 뿌리를 내리게 되는데 공자는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어느 특정 대감님 아래서 뿌리를 내리려면 불가피하게 타협하고 지록위마 하며 비위 맞추기를 좀 해야 하는데 그러기엔 자신이 가진 사상적 고집이 너무 강했던 거지. 어느 분야에 있어 자기 기준이 너무 명확하다 보면, 그 분야에선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 아래에 있을 수가 없는 법이다. 공자는 '남이 세워준 옳고 그름의 틀' 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어딜 가도 뿌리내리지 못한 채, 계속해서 고생고생 유랑생활만 하다 보니 결국 이에 지쳐 떨어져 나가는 제자들도 생기고 아무튼 그러했다.


아이러니한 점은, 결국 물리물질실질적인 기반을 갖추지 못한 채 떠돌다가 끝난 공자의 그 '자기만의 기준'은 '유교'라는 거대한 사상체계로 발전하여 이후 2500년이 넘도록 동북아시아의 정신문화관념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점이다.


만약에 공자가 적당히 타협해서 그냥 눌러앉는 스타일의 사람이었다면, '유교'라는 거대한, 독자적인 사상체계를 만들어내 이러한 엄청난 (사후) 영향력을 가질 수 있었을까? 아마 '치세의 능신'까지는 가능했더라도 거대한 사상의 시조까지는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어떤 거대한 사상체계라고 하는 것들은 대부분 어느 조직 어느 대감 아래서도 타협/적응을 할 수 없었던 고집스러운 신념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에.



인류의 정신문화관념을 뒤흔든 거대한 사상체계들의 창시자들을 보면 '대감님 아래 뿌리를 내리고 녹봉을 받아먹던 이'가 없다. 거적때기를 두르고 평생 유랑만 할지라도, 남의 아래 있지 않았던(혹은 못했던) 이들이 그런 사상을 만들어낸다. 적당히 타협하고 고개 숙이고서 지록위마 하며 뿌리내렸던 이들에게서 그런 거대한 사상이 탄생했던 예는 찾기 어렵다. 다시 말 하지만 그들은 '치세의 능신'까지만 가능했을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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