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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슈미르 전면전은 인류가 감당할 수 없는 싸움일 것

전쟁은 파괴할 뿐 교정하지 않는다

by 박세환

1.

인도와 파키스탄이 휴전에 합의한다고 해서 카슈미르의 위기가 완전히 종료된 건 아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카슈미르의 숨결을 지켜보아야 한다. 불씨는 여전히 남아있고, 그 땅은 여전히 세계 최대의 화약고 중 하나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긴 하다. 설령 그것이 일시적이라 하더라도, 잠시나마 총성이 멎은 건 희망의 신호 정도는 된다.



2.

그간 이슬람세계가 보여준 어떤 행보들 때문인지 많은 이들이 파키스탄에 무척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나는 인도 쪽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좀 해보고 싶다.


'인도 푸틴'의 정치적 행보는 여러모로 '러시아 모디'와 닮아있다. 종교에 기반한 전통 보수주의를 강조하고, '정치의 본질은 적과 아군의 구분'이라는 칼슈미트적 문법에 충실하다. 국내외의 적을 산정하고서 그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민중의 지지를 이끌어낸다. 가부장적인 권위를 과시하기 위해 '적'으로 설정된 이들을 향한 군사행동에 매우 적극적이다.

테러에 대한 불분명한 책임을 상대국에 뒤집어 씌우면서 과감한 군사행동을 일으키고, 상대국의 생명선인 인더스강 수자원에 대한 차단을 시도하는 모습은 여러모로 2022년 '러시아 모디'의 행보를 연상케 한다.


간단하게 본론을 말하자면 이거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러시아 모디' 행보를 우리가 긍정할 수 없다면, 파키스탄과 무슬림 공동체를 향한 '인도 푸틴'의 행보도 긍정하기 어렵다. 테러 책임을 외치며 강물 줄기를 끊어먹는 '인도 푸틴'의 행보를 긍정하면서 우크라이나의 탈나치화를 외치는 '러시아 모디'를 비난한다는 건 다소 모순처럼 보인다.


물론 2025년 '인도 푸틴'의 행보가 2022년 '러시아 모디'의 행보보단 조금 더 신중하긴 하다. 2022년 '러시아 모디'의 과격한 선택이 어떻게 고립을 불러오는지에 대한 나름의 학습이 있었을 수도 있고, (적어도 서류상으로는) 아예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약골이었던 우크라이나와 달리 파키스탄은 인도 입장에서도 꽤 껄끄러울 정도의 국력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파키스탄은 우크라이나와는 달리 핵을 포기하지 않았다!

여하간, '인도 푸틴'과 '러시아 모디'의 차이란 '딱 그 정도'이다.



3.

소위 '진보'라 하는 이들이 '공격받는 이슬람권'을 실드 치려 할 때마다 달라붙는 태클? 들이 있다. LGBT를 비롯한 소수자 인권에 그렇게 신경 쓴다는 '진보'가, 성소수자를 탄압하는데 누구보다도 앞장서는 이슬람권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관대하냐는 문제제기가 바로 그것이다. 멀리 갈 거 없이 당장 필자 스스로가 그런 식의 문제제기에 누구보다도 앞장서왔던 사람이기도 하다. 필자의 글을 오래 보아왔던 이라면, 필자가 위의 문법으로 '민주진보'를 공격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았을 것이다.


이슬람 특유의 전근대성에 대한 필자의 입장은 단호하고 명확하다. 근대를 넘어 현대가 제시하는 가치기준에 명백히 어긋나는 이슬람의 일부 관습들은, 국제사회가 개입을 해서 정정을 요구해야만 한다. "우리는 너희가 아니니 우리 내적으로 어떤 비인권적 관습이 있다 한들 너희는 그런 우리를 존중해야만 한다."라는 그런 문화상대주의의 궤변을 '진보'가 더 이상 용인해 주어선 안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구분되어야 할 지점이 있다. ‘비판’과 ‘침공’은 엄연히 다르다는 것이다.

전근대성을 비판하는 것과, 그 전근대성을 명분으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은 좀 많이 다른 문제다.


20년여 년 전 부시의 전쟁은 바로 그 혼동이 낳은 참사였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이슬람 세계를 ‘해방’시키겠다며 이라크와 아프간을 침공해 무수한 불덩이를 쏟아부었다. 그래서 그 결과는? 수많은 죽음과 폐허를 거치며 더욱 극단화된 반서방주의. IS와 알카에다라는 괴물이 전쟁의 상처 위에서 끔찍한 몸을 일으켰고, 그토록 토벌하려던 탈레반은 오히려 더욱 강화되어 되돌아왔다. 결과적으로 전쟁은 이슬람권을 '교정'시키지 못했다. 전근대성의 극복 같은 건 어디에도 없었고 오히려 그들의 종교적 집착과 분노는 더욱 강화되었다.

전쟁은 진보를 낳지 않는다. 오히려 반동을, 그것도 극단적인 형태로 되돌려 줄 뿐이다.



그래서 오늘날 미국에는 좌우에 걸쳐 부시의 전쟁을 비판하는 매우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당연히 그 사람들이 알카에다나 탈레반식 이슬람 근본주의 행보를 옹호하는 건 아니다. 이슬람의 전근대성에 대한 비판과 별개로 좋은 결과를 장담할 수 없었던 무모한 군사행동과 그에 의한 희생을 슬퍼할 뿐이다.


4.
인도의 군사적 적대행각이 '이슬람' 파키스탄을 더 선진 진보적인 국가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공격을 당한 이슬람권은 항상 더 강경하게, 더 극단적으로 변해왔다. 현대사에서 이골이 날 정도로 반복되어 온 패턴이다.

아니, 애초에 이슬람권이 아니라 하더라도, 어떤 나라가 침공을 당해서 착해(?) 진 사례 자체가 역사 속에서 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 멀리 볼 것도 없이 푸틴이 우크라를 침공해서 우크라이나를 “더 나은 나라”로 만들었는가? 애초에 러시아 같은 나라가 타국의 비도덕성을 질타하며 남을 도덕적으로 교정시키네 어쩌네 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인데 '그런' 플랜이 먹힐 리가 없다. 마찬가지로, 인도 역시 타국의 인권을 교정할 만큼 도덕적으로 우월한 국가가 아니다.


외부의 폭력은 내면의 민주주의를 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와 종교적 광신, 민족주의의 방패 속으로 도피하게 만든다.


5.

파키스탄의 인구는 우크라이나의 7배이다.

인도의 인구는 러시아의 10배에 이른다.

그리고 카슈미르 '지역'의 크기는 한반도 전체와 맞먹는다.

만약 저들이 카슈미르에서 진짜 각 잡고 총력전에 돌입한다면, 그 전쟁의 파장은 6.25 정도는 가뿐히 능가할 것이다.


2차 대전 당시 2억이 좀 안 되는 인구를 가졌던 쏘오련은 그 인구 빨로 밀어붙여서 나치를 무너뜨릴 때까지 2500만에 이르는 인명피해를 감내해야만 했다. 그리고 지금, 2차 대전 당시 쏘오련보다 결코 진일보하지 않은 인권의식을 공유하는 인도와 파키스탄 이 두 적대적 국가가 '스탈린과 같은 마인드로' 자국민을 전선에 갈아넣기 시작한다면 그 피해는 어느 정도 일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이미 가자와 우크라이나에서 지칠 대로 지쳐있는 인류는 그 파장을 감당해 내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는 인도와 파키스탄 두 나라 모두 핵보유국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된다. 당연히 둘 다 그저 '인구만 갈아 넣다가'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끝없는 소모전을 하다 보면 결국 누군가 '꿀리는'쪽이 나올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들은 '버튼'을 누르게 될 것이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저들의 인권의식은 2차 대전 당시 쏘오련보다 결코 앞서 있지 않다. 인도와 파키스탄 간에 이 이상의 긴장상황이 있어선 안되며, 인류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들의 충돌을 막아야만 하는 이유이다.


6.

인도와 파키스탄의 충돌은 인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정치적 야욕들이 만든 불필요한 지옥이다.

카슈미르의 전선을 고조시키는 모든 정치적 의도들은 그들이 누구이든, 명백히 비난받아야 한다. 전쟁은 인류를 교육시키지 않는다. 전쟁은 인류의 오만에 값을 매기는 방식일 뿐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 대가가 너무도 비쌀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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