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년 전 멕시코 토착문명 대안우파(?) 이야기

인권과 공존을 거부하는 사람들

by 박세환

멕시코의 전설과 역사가 뒤섞인 흐릿한 시간 속에 등장하는 톨텍 문명의 왕 '토필친 케찰코아틀(멕시코 원주민들의 위대한 신 케찰코아틀의 이름을 따 온 것이다.)'은 다소 이례적인 지도자였다. 멕시칸 토착문명의 상징? 즘 여겨지는 그 잔혹한 인신공양을 중단시키고, 전통의 이름으로 행해지던 피의 의식을 멈추려 했던 시대를 앞선 인권주의자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 말로는 별로 좋지 않았다.


전해지는 이야기들은 대체로 같은 결말을 향하고 있었다. 토필친은 결국 전사집단과 갈등을 빚었고, 그들은 깊이 뿌리내린 폭력의 전통—포로를 전쟁 제물로 바치는 인신공양—을 지키기 위해 왕을 몰아냈다. 이들은 토필친이 “사랑과 평화, 인권”이라 외치던 이상주의를 견디지 못했다.

토필친을 몰아낸 자들은 다시 인신공양을 부활시켰다. 사람을 제물 삼는 이러한 구습은 코르테스가 도착하기까지 이어졌고, 우리가 기억하는 멕시코 토착문명의 음산한 이미지는 바로 이 '복귀한 과거'의 유산이다.




나는 한동안 이 설화를 쉽게 납득하지 못했다.

토필친은 ‘사랑과 평화, 인권’을 실천하려 했던 인물이었다. 반면 그를 몰아낸 전사 집단은 ‘피와 죽음, 폭력’을 대변했다. 어떻게 이러한 명백한 선악구도에서 후자를 지지한 이들의 세력이 그렇게 막강할 수 있었을까? 이게 무슨 디아블로 스토리에 나오는 '트라빈컬의 몰락'이나 악마에게 넘어간 호라드림 이야기도 아니고, 실재한 역사라고?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특히 최근 들어 나는 이 이야기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동의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그 맥락이 불가능하지는 않겠다는 정도의 납득 말이다.


오늘날 세계 정치의 이분법적 풍경을 보자.

'리버럴 vs 대안우파'
이 구도 속에서 보통 누가 ‘사랑과 평화와 인권’을 주장하고, 누가 ‘힘, 질서, 위계, 폭력’의 이미지를 갖는가?


예전 나의 질문이었던 “어떻게 ‘피와 폭력과 죽음’을 상징하는 진영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는가?”는 오늘날 대안우파현상을 마주하는 세계의 민주진보인들이 보이는 당혹감과 흡사하다.


"어떻게 그 잔인한 극우 파쇼, 낡아빠진 전근대 봉건적 잔재들을 그리워하는 이들이 세상에 이렇게 많을 수가 있는가!?"


하지만 '우리'는 그 반대편의 심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지 않은가. 완전히 동의하진 않더라도 그러한 심리가 형성된 메커니즘을 이해는 할 수 있는 말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위선'을 거부하고 ‘정직하게 악한 것’ 쪽으로 끌리게 되는지. 피와 죽음, 독재, 군홧발, 고문, 총살 내지 약육강식, 약자도태, 승자독식, 무한경쟁과 같은 '위악적' 우익 심리가 어째서, 어떻게 형성되는지.

어쩌면 천년 전 멕시코인들의 '정치'에서도 비슷한 메커니즘이 작용했던 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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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닌 게 아니라 (정보를 접한 지 오래되어 정확히 기억하는 건 아니지만..) 저 사랑과 평화의 토필친 시대에도 정말로 사랑과 평화로 넘쳤던 건 아니고, 동서고금의 다른 통치자들이 늘 그러했듯 '뒤로는' 조지고 담그고 드럼통 태우고 할 거 다 하면서 겉으로만 '사랑과 평화~' 했던 거라는 주장을 접했던 바 있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가 위의 역사(?)를 '이해'해보는 건, 어쩌면 조금은 더 쉬워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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