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은 어떻게 ‘그들’의 복수가 되었는가

정서적 궁핍과 사회적 배신의 기록

by 박세환

좌파의 이상은 사람들의 총의를 모은다. 물리적이든 정서적이든 공공의 에너지를 한데 모아 약자를 보호하고 균형을 맞추자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엔 항상 딜레마가 따라붙는다.


“그렇게 모은 ‘원기옥’을 누가, 어떻게 쓸 것인가?”


북유럽처럼 부패하지 않은 깨끗한 사회에서는, 모두의 입장을 최대한 수렴하여 '그 총의'가 가장 납득할 만한 목표에게 납득할 만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그 결과 모두가 부러워하는 가장 이상적인 공동체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소수가 영향력을 독점한 부패하고 타락한 사회에선, '총의'는 가장 목소리 크고 배부른 대감 놈들이 '약자 코스프레'를 하면서 즈들끼리 나눠 처먹기 위해 조작하는 자산이 된다. 그래서 이런 사회에서 좌파경제는 별로 신뢰를 받지 못한다. 공공의 총의고 나발이고 그딴 거 그냥 가진 것들이 더 나눠 처먹기 위한 사기쇼에 불과하니 개짓거리 집어치우고 걍 각자도생 하자는 주장이 더 각광받게 되는 것이다.(그렇게 이준석이 다크호스로 떠 오르..) 필자가 누차 강조해 왔던, "저조한 사회적 신뢰" 말이다.


문재인 정권 초창기시절, 당시 여론조사에 의하면, X대남도 그렇게 '극우'적이지 않았다. 물론 페미니즘은 그때도 싫어했지만 '좌파경제'에 대한 어느 정도의 기대를 보이기도 했다. 이는 당시 여론조사로도 입증되는 부분이다.(오래돼서 지금은 못 찾겠다. 미안..)
그렇게 '그들'도 자신들의 총의를 문재인의 원기옥에다 모아 주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여성계는 그들을 악마화했고

대기업 재벌은 건들지도 못하는 정부는 영세업자만 먼지 나게 두들겨 팼으며

부동산은 폭등해 민주화세대만 부자가 되었다


그렇게 8년이 지난 지금, X대남들은 '과거와 조금 달라진 입장'을 보이고 있다.

많은 X대남들이 좌파경제를 지지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제 공공, 균등, 평등과 같은 단어를 경멸하며, 약육강식 적자생존 각자도생과 같은 개념에 호의를 표명한다. 그리고 이준석에 환호하지.


... 나는 두고두고 이 8년에 이가 갈린다.
사람들이 원기옥을 만들어줬을 때, 그걸 ‘누가’, ‘어떻게’ 썼어야 했는지 그 판단과 분배에 실패한 것이다.

그렇게 쌓인 실망감이 ‘정서적 결핍’을 누적시켰고, 그 누적된 결핍이 새로운 위악의 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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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는 아직 이 상황이 되돌릴 수 있는 비극이라고 믿고 싶다. 하지만 그전에 한 가지 분명히 거쳐야 할 과정이 있다. 작금의 주류 헤게모니가 X대남들을 '극우'라는 수식어로 손쉽게 비난하기 전에,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해 한 번쯤 '정서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구석에서 웅얼중얼대는 그들의 말속에서 숨겨진 고통의 흔적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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