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서로를 믿어야만 작동하는 체제는 지속 불가능하다.
어떤 신좌파 내지 무정부주의자가 “우리가 먼저 무장을 해제하면, 다른 나라들도 따라 무장을 내려놓고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될 것이다.”라고 주장한다면, 여러분 대부분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왜? 상대의 선택은 나의 선택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타자의 무장 해제는 나의 무장 해제와는 아무런 인과적 연관이 없는 ‘독립 변수’라서 내가 무장을 풀었다고 상대도 그러리란 보장이 없다. 많은 경우 그런 비대칭은 오히려 더 큰 비극으로 귀결되곤 하는데, 평화를 약속한다는 로마의 사탕발림에 넘어가 자발적으로 무장을 해제한 뒤 멸망한 카르타고가 매우 좋은 사례라 할 수 있다.
현실의 국제정치는 "내가 하면 너도 할 것이다."식의 나이브한 상호주의를 감당할 만큼 낭만적이지 않다. 모두가 평화를 원하지만 누구도 군대를 포기하지 않는 데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일본은 '공식적으로' 군대를 가지지 않지만 자위대가 사실상 군대의 기능을 수행한다.)
진정으로 모두의 무장을 해제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만들고 싶다면 필요한 건 자발적인 무장해제 같은 게 아니라 모두에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세계정부일 것이다. 세계정부가 강제력으로 보장하지 않는 평화란 불안정하고 믿을 수 없다. 군사 문제만 그런 게 아니다. 지구적 문제들—환경 보호, 기후 변화, 전염병 대응, 위험한 기술의 통제, 무기 개발—이 모두 비슷한 문제성을 공유한다. '모든 나라가 함께해야' 의미가 있는데 문제는 '모두를 함께하게 만들 수 있는' 강제력이 없다는 것이다. UN과 같은 국제기구는 그저 가벼운 권고 정도나 할 수 있을 뿐, '정부'라 부를 만한 강제력을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UN과 국제기구들에게 '정부'라 부를 만한 강제력이 있었다면 지금 세상이 이 지경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강제력이 없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운 환상이 또 있는데 바로 '항구적인 자유무역 체제'이다.
냉전이 끝난 직후 신자유주의자들은 ‘항구적 자유무역’의 이상에 깊이 심취해 있었다. 모든 국가가 장벽을 허물고 관세 없이 물자가 오가며, 효율성과 분업의 극대화를 통해 전 인류가 공동번영에 이를 수 있을 것이라는 이상. 하지만 지금 우리는 그 이상이 얼마나 허술한 낭만이었는지를 체감하고 있다. 그럼 그들의 이상은 왜 한계에 봉착했을까? 단지 바다 건너 금발머리 할아버지의 정신 나간 변덕질 때문이었을까? 그럼 그가 아니었다면 인류는 자유무역 시스템은 계속 유지될 수 있었을까? 글쎄?
무역을 하다 보면 “이 무역 구도 속에선 우리만 손해 보는 것 같아.”라고 느끼는 나라가 나온다.
“이 물건은 우리밖에 못 파니까, 무역 끊는다고 협박해 볼까?”와 같은 유혹을 느끼는 나라도 언젠가는 반드시 생기게 된다.
아쉬움이 극에 달아 궁지에 몰리면 결국 사람은 버튼을 누르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식으로 하나 둘 이탈자가 발생하면 연쇄 반응은 순식간이다. 이건 강제력에 의거한 세계정부의 보장이 없으면 언젠간 일어날 수밖에 없었던 수순인 것이다. 세계정부의 감시가 존재하지 않는 자유무역은, '자발적 무장해제와 항구평화'처럼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신뢰게임일 뿐이다.
WTO는 강제력을 가진 세계정부가 아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조심스레 '권유'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지금 세상은 그런 '조심스러운 권유'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 한계점에 임해있다.
미쿸이 아니더라도 신자유주의 자유무역 체제에 불만을 가진 나라는 많았다. 다만 그동안은 미쿸의 영향력에 눌려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지 못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 미쿸'에도 자유무역 체제에 불만을 가진 이들이 늘어났고, 결국 신자유주의자들이 꿈꾸던 ‘자유무역의 천년세계’는 허물어지게 되었다. 정신 나간 금발머리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었다 해도, 언제라도 깨지기 쉬운 결함 많은 판타지였기 때문이다.
+'그 결함 많은 판타지'에 너무 집착하면 안 된다던 경제좌파의 경고는 3류 음모론 소설질 피해망상이 아니라 선견지명이었던 거고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