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듣지 않던 소리를 들리게 만들려는 지난한 과정
이재명 정부의 젠더관을 두고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데, 그동안 '페미계'와 가장 치열하게 부딪혀 왔던 이들 중 한 사람으로서 이 부분에 대한 생각을 말해 보자면
여전히 기성 제도권 정치판은 페미니즘으로 가득 차 있다고 본다. 여성의 구조적 차별 어쩌고는 당연한 전제로 여겨지며, 이재명 정권이라고 해서 이러한 본질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럼에도 눈여겨볼 만한 대목이 전혀 없지는 않은데, '기류'가 조금 바뀐 듯 한 냄새는 분명 있다.
"여전히 연약하고 가련한 여성들이 사악한 냄져 압제자들에게 억압받고 수탈당하고 있다는 게 바람직한 현실 인식이지만 그럼에도 남자가 아주아주 쬐~~ 끔은 불편할 수도 있을 수 있는 부분이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도 0.00000001만큼은 고려해 보겠습니다."
그들이 보내는 신호는 속삭임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이건 무시할 수 있는 변화가 아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이제 “저 한남 놈들”의 눈치를 조금은 보기 시작했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메갈-워마드의 난' 이후 10년 동안 우리가 싸워온 시간들이 아주 미세하게나마 균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물리물질실질보다 정신문화관념을 중시해 온 사람으로서 나는 이 ‘눈치 보기’라는 변화에 작지만 중요한 의미를 부여하고 싶다.
물론 만족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변화이다. 하지만 이런 작은 성과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스스로를 축하할 수 없다면 사람은 심적으로 지치게 되고, 그렇게 지친 사람은 다음 10년을 결코 버텨낼 수 없다. 이 싸움은 불꽃처럼 치솟는 한 방의 싸움이 아니라, 지치지 않는 꾸준함의 싸움이다.
쨋든 우리는 ‘아무도 듣지 않던 소리’를, 적어도 “무시하면 위험하다” 정도로는 끌어올린 것이다. 지난 10년의 싸움을 견뎌온 우리들은 이 미세한 틈을 기뻐할 자격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