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면 공부부터 하고 오세욧!"이라는 반박이 아무짝에 쓸모없는 이유.
+세 줄 요약
1. AA주의 사상은 사랑과 평화를 강조하는 좋은 사상이다. 하지만 자칭 '지지자'라 하는 이들은 사랑과 평화의 팻말을 차고서 몽둥이로 사람들을 패고 다녔다.
2. 그럼 '사랑과 평화'가 아닌, '몽둥이를 들고 다니며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모습'이 AA주의 사상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로 각인된다.
3. 이 상황에서 "일부이단"이니, "원전은 다르니 공부하세욧!"이니 하는 방식으로 AA주의 사상을 변명하는 건 무의미하다.
유명한 철학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모든 이해는 오해다.”
누군가 A라는 표현을 했다 하더라도, 그 말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자신의 경험과 정서에 따라 A′, A″, 혹은 전혀 다른 B나 C로 변형시켜 이해한다. 언어의 의미는 수신자의 정서와 경험이라는 필터를 거치며 변형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사과’라는 단어를 떠올려도, 사람들 머릿속에 그려지는 사과의 색, 크기, 맛은 제각각이다. 우리는 칼라의 프로토스나 군체의식의 저그가 아니기에, 발화자의 원래 의도를 1:1로 이식하는 일은 불가능한 것이다.
원전의 가르침을 중시한다는 '종교'들도 예외가 아니다.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은 모두 야훼라는 동일한 ‘원전’에서 출발했지만 이해가 달라 실천이 갈렸고, 그 결과 종교가 분열했다. 기독교는 동방정교와 가톨릭으로, 가톨릭에서 개신교가, 그 개신교는 다시 수십 갈래로 나뉘었다. 개신교의 이탈로 충격을 받은 가톨릭은 '통합된 하나'를 더욱 강조했지만 신도수가 14억이 넘어가는 지금, 가톨릭도 받아들이는 이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테면 한국이나 남미의 가톨릭은 종종 진보적인 색채를 띤다. 반면 영미권 가톨릭은 한국 장로교회 이상으로 매우 보수적이다. 그리고 남미권 이민자들을 통해 '남미식 가톨릭'이 미쿸까지 넘어갔을 때, 미쿸 본토 가톨릭들은 남미식 가톨릭이 가진 이질적인 모습들에 종종 놀랐다고 한다.
이슬람도 예외는 아니다. ‘절대 분열 불가’를 외쳤지만, 무함마드 사후 100년도 안 되어 수니와 시아로 갈렸고, 시아는 또 수십 종파로 쪼개졌다. 수니 역시 해석 방식에 따라 4 학파로 나뉘지만 게 중 어느 게 무함마드의 생각과 일치하는지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리고 불교 또한 대승/소승, 교종/선종/천태종, 심지어 원불교까지 끊임없이 분화했다.
기독교 이야기를 초큼 더 해 보자. 구약성경에 따르면 돼지고기, 조개, 새우는 금지 식품이며, 이자를 받는 금융업은 철폐되고 부동산 거래도 막아야 한다. 노예제는 일정 조건 하에 ‘주님의 뜻’으로 허용된다. 그러나 이 규율을 그대로 지키는 종파는 없다. 교황청조차도 말이다. 그저 다들 만만한 동성애 때리기에나 목숨을 걸지만, 정작 그 와중에서도 인간에게 자신의 형제자매를 심판할 권리가 없다는 말씀은 또 애써 외면한다.
모든 원전은 계승자들에 의해 필연적으로 '오해'되고, 아무도 ‘있는 그대로'를 믿고 따르지 못한다. 좀 세게 말해서 각자 꼴리는 대로 믿는다는 것이다. 그렇게 ‘원전의 진짜 의도’는 계속 퇴색하고, 이해와 오해가 뒤섞인 실천만 남는다. 종교는 원전의 말씀에서 벗어나면 ‘이단’이라 몰아붙이지만, 실상은 자신들부터 ‘오해한 이해’의 총체였던 것이다.
원전을 철석같이 신봉한다는 종교들조차 이러할진대 다른 정치사회 이념들이야 오죽하랴. 자유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 공리주의, 자본주의, 공화주의 등등 말이다.
각 진영이 자랑하는 ‘원전’은 대체로 좋은 말뿐이다. 하지만 전술했듯 아무도 그걸 제대로 읽거나 지키지 않는다. 모든 이들의 이해는 언제나 오해이며, 바로 그 오해가 실천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정치사회 논의장에서 특정 사상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건 언제나 그 사상의 원전이 아니라 '오해된 실천들의 총합'이다. ‘원전’이 아니라, 그 사상을 믿는다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보여온 언행들 말이다. 그러니 “일부 이단의 헛짓거리로 일반화 말고 우리 사상 원전부터 공부하고 오시죠” 따위의 방어 논리는 아무짝에 쓸모없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의 위대한 선지자 주디스 버틀러' 께서 어떤 좋은 말씀들을 남기셨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래서 페미니스트들이 말씀을 어떤 방식으로 '실천'해 왔느냐 인 거지. 유교, 기독교, 불교, 사회주의, 자유주의, 페미니즘 모두 원전은 대체로 ‘좋은 말씀들’ 투성이지만 누차 반복했듯 그 원전은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다. 심지어 믿는다고 말하는 당신들 조차도!
많은 사람들이 페미니즘을 싫어하게 된 이유는 버틀러를 안 읽어서가 아니라, 버틀러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벌이는 실천 때문이다.
원전은 늘 오해 속에서 소비되고, 오해 위에 쌓인 실천이 곧 그 사상의 얼굴이 된다. 이러한 현실을 무시한 '원전은 무죄니 아무튼 우리도 무죄’식 논리전개는 공허한 자기 위안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