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 : 정신문화관념
1.
꽤 오랫동안 '우스꽝스러운' 식사 습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테면 고기-야채볶음이 있다고 치자, 그럼 '맛없는' 야채들만 골라서 한 입에 몽땅 먹어버린 후, '맛있는'고기 부분은 아껴두고서 나중에 먹는 것이다. 이를 보고 형이 뭐라 한 적이 있었다. 너저분하고 천박하게스리 식사습관이 그게 뭐냐고. 그러자 내가 말했다.
"이거 옛날에 형이 그렇게 먹던 거 보고서 내가 따라 배운 거뿐이야."
그러자 형이 답했다.
"그래, '그 옛날'엔 나도 기껏해야 초등학생이었으니까. 근데 지금도 내가 너처럼 그렇게 먹던? 너가 지금 나이가 몇 갠데 '열 살짜리 형한테 배워먹었던 습관'을 아직도 못 고치고 그대로 따라 하고 있냐?"
2.
최초 컨텐츠 제작자가 어떤 의도로 작품을 만들었건, 작품이 문화시장에 풀리고 나면 그 순간부터 의미부여는 소비자의 몫이다. A를 의도한 작품이 소비자 손에 들어가서 A′, A″, 혹은 전혀 의도치 않은 B나 C로 변형되는 것이다. 2차 창작이 쏟아지고, ‘최초 창작자의 의도’는 무력해진다. 그리고 문화콘텐츠 제작자들은 이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는 문화예술계만의 일이 아니다. 인류 문명의 모든 사상과 전통들이 겪어온 일이다.
3.
[정서 : 정신문화관념]론을 말하며 누차 반복하는 지점이지만, 어떤 사상의 창시자가 A를 의도하며 한 사상을 편찬(?)했다 해도, 그 의도는 계승자들에게 있는 그대로 '계승'되지 않는다. 이는 칼라나 군체의식을 통해 원작자의 의도를 1:1로 이식시킬 수 없는 우리 테란의 종족적 한계이다.
간단하게, 오늘날 기독교가 뭔 짓을 하고 다니건 그건 예수의 잘못이 아니며, 후대의 유교체제가 어떤 모순을 겪고 붕괴되었건 그 잘못을 공자나 맹자에게 전이할 수는 없다. 반복하는 말이지만 '최초 창시자'는 그저 '흥미로운 발상거리'를 후대에 던져준 것일 뿐이며, '그 재미난 발상거리'에 어떤 살을 입히고 어떻게 변형시켜 후대까지 활용해먹을지는 철저하게 계승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이슬람 원리주의처럼 아무런 변형 없이 원형 그대로 이어감을 극도로 추구한다 한들, 그 역시 '하나의 선택'일뿐이다. 계승자들이 선택을 내린 것이다.)
사상의 평판은 원전이 아니라 계승자의 실천으로 결정된다. 원전은 참고자료일 뿐이고 그 원전을 어떻게 '지금 시대의 언어로' 해석하고 실천할지는 철저하게 계승자들의 몫이다. 그 실천이 거슬리면 평판은 나빠지고, 그건 창시자가 아닌 현재 계승자의 탓이다. 고로 페미니즘 역시 자신들의 이미지를 변호할 때 끝없이 (아무도 찾아보지 않는)주디스 버틀러 내지 시몬 드 보부아르를 들먹이기보단 지금 당신의 언어로, 지금 당신의 방식으로, 지금 당신의 실천을 해명해 보는 게 좋을 것이다. '백 년 전, 천 년 전 선지자들'이 뭐라 떠들고 다녔건 그것이 '오늘의 당신들'을 변호해 주는 건 아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지금 당신들이 어떤 언어를 쓰고, 어떤 행동을 하며, 어떤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있느냐이다. 계승자들의 ‘현재’가 사상 전체의 얼굴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