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의 진짜 무기는 탱크가 아니라 정서

리버럴 엘리트들이 내다 버린 '대안우파의 감정'은 이제 푸틴의 무기

by 박세환

패권국의 군사적 깡패질 '조차도' 일종의 [정서 : 정신문화관념]을 중심으로 해석하려 시도 중이다. 간단하게, 그 나라가 미는 정신문화관념적 가치가 범 세계적인 주류 헤게모니로 떠오르면, 그 나라는 그 기운?을 믿고 '깡패짓'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1991년 걸프전은 서구 자유민주주의체제가 냉전의 승리자임을 보여주는 신호탄이었다. 뒤이은 2001 이라크전, 아프간전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정점을 보여주는 사건이었고 말이다. 냉전 이후 서구 자유민주주의 질서가 절대선이라는 '보편화된 인식'속에서 서방은 아무 데나 '민주주의를 배송'했고, 이 '민주주의 택배 배송기'들은 별 다른 큰 비판을 받지 않았다.(비판이 있었어도 무시 가능한 수준이었다.) 비판이 두렵지 않으니, '자유민주주의'는 마음껏 폭주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2010년대 중후반, 서구 정치권에 대안우파들이 준동하기 시작한다. 페미니즘, PC주의, 리버럴 엘리트들의 위선에 염증을 느낀 대중들이, 역으로 전근대적 가치 - 왕과 신, 전통, 혈통과 같은 가치들에 목소리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푸틴이 겨냥한 틈이었다. 이 틈을 타 러시아는 '전근대 복고주의 : 잊혀졌던 봉건사회적 가치'를 내세우며 자유민주주의를 벗어난 또 하나의 헤게모니 축을 구축하게 된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전쟁..




아마 푸틴은 전쟁을 일으키며 크게 3가지의 카드에 기대를 걸었을 것이다.


1. 러시아의 '자칭 세계 2위' 재래식 군사력

2. 핵무기 보유 6천 발

3. 러시아를 추종하는 전 세계 대안우파 여론들


이젠 온 천하가 다 알겠지만 저 중 1번은 별 그다지 효용을 입증하지 못했다. 러시아군은 도로에서 전차가 퍼지고, 보급도 엉망이었으며, 드론에 털리고, 바그너에 뒤통수까지 맞았다.

핵무기야 뭐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효과를 보는 것이니 디폴트이고

가장 핵심적인 건 3번.


러시아가 전파한 메시지는 간단했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는 거짓과 위선으로 점철된 시대착오적 질서다. 자유민주주의는 페미피씨 난동으로 이미 충분히 타락했으며, 우리 러시아의 전쟁은 그 타락을 멈추기 위한 문명전쟁이다. 이제 우리는 페미피씨 난동으로 피폐해진 서구 리버럴 체제를 버리고, 왕과 신의 질서 속 전근대로 회귀해야 한다.”


이 프로파간다는 서구 대안우파에서 상당한 반향을 일으켰다. 미국, 영국, 프랑스 등지의 보수우파 인사들 사이에선 러시아의 입장에 은근한 동조를 보내는 이들이 적지 않았는데, 러시아는 종래의 구좌파 반서방주의 진영에 더해 우익 종교 보수주의 진영까지 '아군'으로 확보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러시아의 편이 된 이들은 "침공하는 러시아보다 방어하는 젤렌스키가 더 나쁘다"식의 발언들을 대놓고 뿌려대며 러시아의 입장에 동조를 표명했다.


이러한 구도 속에서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는, 원하든 원치 않든 '리버럴 헤게모니의 마지막 수호자'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서방 정치인들은 자국의 우크라이나 지원을 갈수록 꺼려하게 된다. "왜 리버럴 전쟁에 우리 돈을 써야 하지?"라는 친러 대안우파들의 반발때문에 말이다.


결국 우크라이나를 향한 지원은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고, 서구의 지도자들은 자국 내 친러 대안우파세력의 압력 속에 우크라이나의 절반을 러시아에 양도하는 대안을 수긍해가는 중이다. 페미피씨 리버럴 거부감으로 인한 범 세계 대안우파 준동과 친러 우파세력 형성이라는 변수가 없었다면, 재래식 군사력과 핵협박 만으론 결코 가능할 수 없었던 러시아의 정치외교적 승리인 것이다.

(그리고 이 상황은, 어떤 면에선 20년 전 서구식 자유민주주의가 한창 잘 나갈 적에 서방 국가들이 여기저기 함부로 깡패짓 하고 다녀도 별 다른 제재를 받지 않았던 시절의 리버스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우크라이나 전쟁의 흐름 양상을 거진 다 맞추어낸 사람으로서, 저 1, 2, 3번의 카드 중 가장 중요한 변수로 보았던 건 바로 3번(친러 대안우파세력의 범세계적 발흥)이었다.


전쟁은 총으로만 이뤄지지 않는다. 정서로 싸우고, 이미지로 승부가 갈린다. 그리고 이 전선에서 가증스러운 푸틴놈은 꽤 괜찮은 판을 짠 셈이다. 아마 푸틴 스스로도 '3번'이 가장 만족스러울 것이다. 1번은 예상보다 망했고, 2번은 그냥 들고만 있는 폭탄이지만, '3번 : 정서적 패권의 재구성'은 지속 가능한 전략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 친러세력에게 이 전쟁은 서구식 자유주의 질서의 몰락을 전제로 한 ‘역헤게모니 혁명’의 시작이었고, 그 한복판엔 그동안 외면받아 온 감정과 정서, 즉 문화전쟁의 서사가 있었다.


하지만 주류 미디어는 이런 '정서 : 문화전쟁'의 측면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3번'을 말하는 순간,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아간 페미피씨 엘리트 지배층의 실책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론이 침묵하든 말든, 이 ‘정서적 자산’의 효과를 똑똑히 확인했을 푸틴은 앞으로도 이 정서의 힘, 대안우파의 동원력을 더욱 전략적으로 활용해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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