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의 틀에 갇혀버린 이슬람의 문화상품들
문학적 재능이 일천하여 감히 펜을 들지는 못했지만, 언젠가 대서사시를 써 보고픈 욕심은 있다. 그리고 만약 정말 쓰게 된다면, 그 서사의 테마는 다소 의외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슬람 종교의 역사에서 가져오고 싶다.
이슬람의 서사는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나 불교 등등 다른 많은 종교적 서사들이 주로 교훈과 계몽에 초점을 맞춘다면, 이슬람의 서사는 좀 다르다. 거기에는 삼국지적인 무용과 의리, 난세 무인들의 흥망성쇠의 면모가 있다. 전장에서 서로를 향해 창을 겨누는 무사들처럼, 진득하고 비극적인 인간의 드라마가 담겨 있다.
아마 중동의 무슬림들, 특히 남성들이 그렇게나 이슬람에 깊이 빠져드는 이유도, 이 무인적 서사에서 오는 ‘맛’ 때문일 것이다. 칼과 피, 배신과 의리, 그리고 (신을 향한) 충성을 외치는 서사. 그 서사에는 생존과 명예가 있고, 그것은 종종 진리 그 자체보다도 매혹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그 매혹적인 서사를 작가의 눈으로 재창조하고자 할 때 시작된다.
이슬람은 극도로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종교다. 이슬람 역사를 문화상품화하려는 시도는 늘 종교 율법이라는 가이드라인의 검열에 걸리고,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바로 종교적 모독으로 몰려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상상과 창작에서 신성모독과 응징의 영역으로 넘어가는 것이고, 여차하면 창작자의 목숨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까지 각오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건 그들 입장에서도 안타까운 일이다. 예컨대 삼국지의 경우 후대 창작자들이 수백, 수천 가지 변주를 내놓으며 오늘날의 ‘삼국지 문화시장’을 만들어냈다. 모에화 된 여포가 돌아다니고, 게임과 드라마, 영화가 쏟아져 나오면서 유교적 가치와 동아시아적 세계관을 세계로 알려나갈 여지도 더욱 커지게 되었다. 만약 삼국지를 문화상품화할 때마다 청학동 유학자들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면 지금 같은 폭넓은 대중문화 확산이 가능했겠는가!
하지만 이슬람은 창작자들에게 종교적 감시와 제한을 강요하는 체계를 유지해 왔고, 이는 그들의 역사가 현대 문화시장에서 풍부한 콘텐츠로 재생산되기 어려운 이유가 되었다. 그들의 역사와 문화는 종교적 규제에 묶여, 철저히 신앙활동의 틀 안에서만 전파될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자랑하는 이슬람의 각종 문화들은, 이슬람권 내부에선 무게감 있는 전통이었을지 몰라도 이슬람 문화권을 벗어난 지역에서 상당히 안습하고 편협한 이미지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이슬람 세계 바깥사람들이 ‘이슬람’을 떠올릴 때 이미지가 왜 늘 '그러하'겠는가.
만약 '문화적 해석의 자유’를 이슬람 서사에도 허용할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지금쯤 모에화 된 선지자들과 젊은 무사들의 브로맨스 전기, 뭐 그런 괴랄한 2차 창작들이 줄줄이 나왔을지도, 동시에 이슬람 문화도 좀 더 다채롭게 세계에 전파될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들이 자신들의 폐쇄성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이는 언제까지나 평행우주에서나 가능할 무언가일 뿐이다.
+짤방 : 칼리프 알리. 시각적 이미지처럼 삼국지의 관우에 비견될법한 캐릭터이다. 그만큼 음양이 뒤섞인 다면성을 가지고 있고, 이슬람의 역사에서도 꽤 중요한 입지를 가진다. 죽은 뒤 신으로 추앙받은 삼국지의 관우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