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세환 Mar 20. 2020

응보 감정

상벌의 엄정함

감옥에서의 삶이 열악한 것은, 감옥에서의 삶을 충분히 유복하게 해 줄만큼의 돈이 나라에 없어서가 아니다. 감옥에 들어갔다는 것은 그만큼의 잘못을 지었다는 의미이며, 감옥 삶의 열악함은 "남들보다 못한 짓을 한 이는 마땅히 그만큼 불행해야 한다."는 '응보' 원리의 결실인 것. 간단하게, 설령 나라에 돈이 넘친다 하더라도 감옥의 삶은 너무 풍족해선 안된다.


문제는 이 정서가 경제에까지 이어질 경우 발생한다. 

이를테면, 시장경제 하에서 누군가의 성공과 실패는 그 개인의 노오력과 처신의 결과이며, 고로 세상이라는 거대한 시험 속에서 '낙제점'을 받은 이들은 응당 그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하며, 그 개개인의 상벌(?) 결과치에 대해 국가가 관여하여 조정하려 해선 안된다는 류의 사고방식. 이런 사고방식은 정말 생각 외로 강력하여 '차이'를 줄이려는 좌파의 분배정책에 사사건건 반대급부로 다가온다.

(이 과정에서 보통 "복지는 도둑질! 강탈! 무임승차! 호혜성 원리 위반!" 등의 어휘가 동원된다.) 


...


늘 말 하지만 시장에서의 성패는 결코 한 개인 처신의 '순수한' 결과라고 말할 수 없다. 개인의 성패는 개인의 외적, 내적 요인의 엄청난 영향을 받는다. 간단하게, 어느 사회에서 크게 성공해 영웅이 된 어떤 인물은 다른 시공간 다른 부모 하에 태어났으면 일개 하찮은 거지로 삶을 마감했을 수도 있다.  

때문에 "개인의 성패는 그 자신의 처신 결과임으로 그 자체로 정당하다."는 류의 관념을 필자는 상당히 싫어한다. 


좌파는 어떤 사람이건 범죄자만 아니라면 설령 실패자라 하더라도 최소한의 생존조건을 사회로부터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승리자는 일방적으로 많이 가져갈 수 없다. 그는 자신의 승리로 인해 발생하는 엄청난 이득중 일부를 반드시 약자, 패배자들의 생존을 위해 내어 놓아야만 한다.)


때문에 상투적인 시장논리와는 달리, 좌파의 세계에선 누군가가 너무 약하고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는 것이 그 사람에게 최소한의 재화를 공급해 주어야 할 이유가 되는 것이다. 

(순수한 시장원리에선 아주 불쌍한 사람이건 유복한 사람이건 그가 '내어놓는 만큼' 그에 해당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받아갈 수 있다. 불쌍한 사람이건 나발이건 타인을 위해 아무것도 내어놓지 못하는 이는 그 어떤 재화와 서비스를 받아갈 수 없으며 결국 굶어 죽게 된다.)

  


작가의 이전글 '계시'에 대한 또 다른 해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