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진웅을 키운 '90년대'에 관하여

응답하라, 낭만으로 포장된 폭력의 90년대는 정말 아름다웠는가?

by 박세환

한국의 80년대는 용서받지 못한다. 사악한 군부 독재자가 지배하던 암흑의 시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날 정신문화관념 헤게모니를 쥔 민주진보인들은 다큐멘터리, 영화, 서적 등 거의 모든 문화 매체를 동원해 한국의 ‘저주받은 80년대’를 끊임없이 소환하고 응징한다.(ex : 서울의 봄)


반면 90년대는 민주화와 산업화라는 두 국가적 과업이 달성된 환희와 해방, 도약의 시대로 기억된다. 그리고 문화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민주진보인들은 '응답하라 1994'와 같은 문화작품들을 통해 90년대를 향한 노스탤지어를 끝없이 분출한다.

그런데 정말 그랬는가? 90년대는 어둠과 절망의 80년대와 대비되는 환희 넘치는 시절이었는가?




나는 종종 한국의 90년대를 진보적 사회문화관념의 폭발기라는 점에서 서구의 70~80년대와 비교하곤 했다. 서구의 7080 시절 마약과 난교, 무규범적 일탈이 ‘자유’와 ‘저항’의 상징으로 미화되었던 것처럼, 한국 90년대에도 유사한 흐름이 있었던 것이다.



깡패, 조폭, 건달을 주인공 삼은 '친구'나 '주유소 습격사건'같은 영화들이 공전의 히트를 치고, 날라리 정신을 미화한 '반항하지마' 같은 만화는 청소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항 정신이라는 미명 아래 살인범 신창원이 국민적 영웅으로 소비되고, 많은 청소년들이 장래희망으로 의사, 과학자, 대통령이 아닌 깡패, 건달, 조폭을 제시하 그런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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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기 가장 노골적으로 공격받았던 덕목 중 하나는 ‘모범’이었다. 규율을 지키고, 성실히 살고, 상급자의 권위에 순응하는 태도가 자라나는 청소년들 사이에선 조롱과 멸시의 표적이었던 것이다. ‘모범생’은 지탄과 조롱의 대상으로, 규율을 따르고 예의를 지키는 태도는 ‘찐따’라는 낙인의 시작점으로. 그렇게 껄렁거림 건들건들 날라리적 미덕을 체화하지 못한 아이들은 또래집단 내에서 손쉬운 먹잇감이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학교폭력이 발생했다. 그렇게 많은 ‘박세환들’이 피어보지도 못한 채 스스로 삶을 포기했지만, 이러 풍토는 좀처럼 문제시되지 않았다.


“애들이 크다 보면 싸울 수도 있지.”

“그걸 못 이겨내서 자살하는 건 나약해서 그런 거야.”


그 시절 소년원 근처에도 안 가본 청춘이 어디 있냐는 심금을 울리는(?) 사자후는 바로 이러한 시대정신의 연장선에서 나온 것이다. 조진웅 역시 당시 이랬던 시대적 흐름에 휩쓸렸던 생각 없는 1인이었으리라..


"조폭의 으리! 깡패의 우정! 크으~ 취한다!"





내가 문제 삼고자 하는 건 조진웅이라는 ‘개인’이 아니라 그런 삶을 ‘멋’으로, 젊은 날의 ‘낭만’으로 포장해 주었던 90년대의 시대정신 그 자체이다. 하지만 지금 조진웅이라는 개인을 향한 수많은 문제제기들은 '90년대'라는 시대 자체를 향한 문제의식까진 확장되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개인만 악할 뿐 시대 자체는 무죄로 남는 거고 그렇게 조폭 건달 일진들을 낭만적 영웅으로 만들어준 90년대의 수많은 작품들은 여전히 명작으로 남아 있다.


대체 언제까지 90년대는 까방권일 것인가? 언제까지 80년대만 비난받고 90년대는 예외로 남아있을 것인가? 90년대가 만들어낸 또 다른 폭력들이 심판받게 될 날은 언제 찾아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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