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더갈등을 분석하는 모 공이들 회원의 신박한 이론

권력은 생산역량 따위와 0.000001도 상관없이 별개로 존재한다.

by 박세환

일전 공이들 창립제때, 한 회원은 '유물론이 아닌 관념론 관점으로 젠더갈등을 분석하는 박세환식 시도'를 반박하며 '우파식 유물론(?)' 관점으로 젠더갈등을 설명하는 신박한 이론을 내어놓은 바 있었다. 그 내용 즉슨.. 오랜 시간 동안 남녀관계 속에서 남성은 생산활동을 전담하며, 여성은 그 남성이 만들어낸 생산물들을 소비하는 역할을 담당해 왔는데, 오늘날 남성들은 이 구도가 자신들에게 매우 부당하다고 느끼게 되었고 이러한 성별 역할분담에 대한 남성들의 불만이 작금의 젠더갈등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우파인 이 회원은 최종적으로 남녀노소계급 다 떠나 그냥 각자 자기가 자기 능력대로 생산해 낸 딱 그만큼씩만 소비하며 사는 소박한 자유지상주의-하비에르 밀레이준석 경제를 최종적인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좌파경제를 지지하는 나는 이런 결론에 동의하기 어렵지만 그럼에도 이 회원의 이론은 두고두고 고찰해 볼 만큼 신박하기는 했다. 관념이 아닌 유물이고 좌파가 아닌 우파라는 점에서 필자와는 완벽히 상극일 것 같으면서도 무언가 내가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어떤 생각과도 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었고 그게 특별히 더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이다.





구좌파식 유물론은 생산능력의 여부로 권력관계를 분석하곤 한다. 그리고, 진보좌파진영이 전통적으로 페미니즘에 우호적이었던 이유 역시 상당 부분 여기에 기인한다. 전통적으로 생산이라는 역할을 여성이 아닌 남성에게 부여했음이 바로 남성의 상대적 우위성을 보장해 준 것이라는 말이다. 반대로 '소비'라는 열등한 역할을 부여받은 여성은 남성보다 더 불쌍하고 가련한 존재로 여겨진다. 하지만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전통적인 구좌파의 관점에선 자본가는 생산활동을 하지 않는 존재이다. 구좌파는 자본가가 하는 '투자행위'를 '생산노동'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결국 자본가는 공동체의 건설적 생산활동에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으면서 생산활동에 전념하는 노동계급이 만들어낸 부산물에 멋대로 빨대를 꽂고 기생하는 기생충이라는 게 '그들'의 표준적인 시각이다.


그런데 생각을 해보자. 사회의 권력관계가 생산역량에 의해 결정된다는 구좌파의 전통적 관점에 의하면, 당연히 '낫과 망치를 든' 노동계급이 일개 기생충에 불과한 자본계급보다 우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 구좌파인들은 이렇게 답하곤 했다.


"바로 그것이 결국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노동자들이 승리하여 노동자가 주인 되는 공산주의가 도래할 수밖에 없다는 '과학적' 근거인 것입니다 동지!"



... 하지만 우리 모두는 역사의 실제 결말을 알고 있다. 그들이 말 한 해피엔딩(??)따위는 오지 않았다. 처 털린 건 자본주의가 아니라 공산주의였고 여전히 수많은 노동자들은 자본가에게 급여를 받으며 그들의 지시 하에 일하며 살아가는 중이다.




이 모순에 대한 내 오랜 생각은 이러했다. 간단하게, 한 사회의 권력관계를 분석함에 있어 생산능력이 누구에게 있느냐 따위는 0.00000001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아무짝에 설명력 없는 무의미한 변수 따위를 잡고 늘어지며 권력관계를 설명하려 했으니 구좌파 놈들 이론엔 항상 그렇게 구멍이 많을 수밖에ㅉㅉ


정말 중요한 변수는 생산에 누가 얼마나 기여하느냐가 아니라, 그렇게 생산된 결과물에 대한 처분권(소비권)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의 여부이다. 개미가 열심히 땀 흘려 벌어놓은 생산물들을 함부로 약탈해 가도 되는 권한을 누가 가지고 있느냐는 말이다. 차피 이 세상은 생산활동에 건설적으로 전념하는 이들이 아니라 그 생산물에 함부로 손대로 약탈하고 도둑질하는 자들이 천년만년 잘 먹고 대접받도록 디자인된 곳이다. 적어도 내 삶의 경험에 의하면 그러했다. 그리고, 이렇게 관점을 생산능력이 아닌 처분권(소비권)으로 돌려놓고 보면 노예-주인, 평민-귀족, 노동-자본에서 어쩌면 근래에 벌어지고 있는 남녀 젠더갈등까지 이 모든 인류문명의 관계설정들이 훨씬 더 잘 설명된다. 적어도 이미 실패가 확정된 구좌파의 이론보다는 말이다.



다시 말 하지만 권력관계 분석에 있어 생산역량 따위는 0.0000001도 중요하지 않다.

오직 남이 힘들게 벌어놓은 결과물을 마음껏 약탈해 가도 되는 처분권(소비권)의 여부만이 무궁무진하게 나 홀로 신성하고 중요하다.


그리고 바로 이 대목이, '박세환식 관념론을 반박한다는' 그 회원의 신박한 이론과 묘하게 교집합을 이루는 지점인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처분권(소비권)을 단순히 유물적인 요소로만 생각하지 않는다. 공동체의 인정과 배려, 관심, 존중, 연민과 공감 같은 [정서 : 정신문화관념]의 요소들까지 바로 그 처분권(소비권)의 항목에 들어간다고 보는 것이다. 그렇게 놓고 보면 이 신박한 이론을 애써 유물론이나 관념론 하는 문제로 딱 부러지게 나누려 할 필요도 없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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