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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세환 Apr 22. 2020

'땀 흘림'에 대한 예찬

수단과 목적

살아감에 있어 최종적 목표는 결국 '게으르고 나태해지는 어떤 상태'일 수밖에 없다. 

왜 돈 벌려고 아등바등거리는가? 돈 많이 벌어서 좀 편하게 늘어져 살아보려고ㅇㅇ. 건물주를 왜 부러워하는가? 건물 임대료 받아먹으면서 편하게 호의호식하니까. 자동차는 왜 발명했는가? 먼 거리 좀 편하게 이동하려고. 리모컨은 왜? TV 에어컨까지 다가가서 직접 버튼을 눌러야 하는 수고를 감내하기 싫으니깐ㅋ

언제부턴가 어린아이들의 꿈이 "돈 많은 백수"가 되어있더란 이야기 역시 사실 납득하지 못할 바는 아닌 것.


물론 우리의 현실은 '완전한 나태함'을 누리기에 충분히 풍족하지 못하며, 고로 우리는 오늘도 아등바등 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하루에 12시간씩 주말도 없이.

모두가 나태한, 나태해도 되는 삶의 상태까지 도달하고 싶어 하지만 그럴 여건이 안되어 하루 12시간씩 주말 없이 아등바등 거리며 살게 되는데, 이 삶에 찌들다 보니 나타나는 여러 폐단(?)중 하나가 바로 '고통 그 자체에 대한 예찬'이다. 


간단하게, 열심히 노력하고 고통을 감내하며(몸이 망가지고 건강을 잃을 정도로..) 살아가는 그러한 상태를 어떤 편한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목적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가 멋지고 훌륭한 것이란 식으로 자위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원래 이렇게 고통스럽고 힘들게 살아야만 하는 거야!"

"몸과 마음이 편해지면 정신적으로 망가지게 되어있어!"

"하루 12시간씩 주말 없이 이렇게 사는 것이 바람직한 거야."

"복지에 찌든 서양놈 들은 나태해서 블라블라"


'힘겹고 고통스러운 삶'이란 테마가 다른 좋은 어떤 상태(게으르고 나태해도 되는)에 다다르기 위한 과정적,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로 좋은, 바람직한 목적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이다. 


필자가 얼라때 보았던 '날아라 슈퍼보드'라는 만화의 한 인상 깊은 일화는 아직도 가슴속에 남아있다. 그 이야기를 좀 해 보련다. 


...



어느 여왕이 있었다. 이 여왕은 자신의 나라를 "모든 국민들이 놀고먹을 수 있는 엄청난 경지"로 끌어올린 뒤 국민들에게 놀고먹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끝까지 이를 거부하고 '무언가 땀 흘리며 사는 삶'을 고집하며 여왕의 명에 거역했던 이들이 있었고 여왕은 이들을 강압적으로 탄압한다. 결국 '즈엉이로운' 주인공 일행이 여왕을 무찌르고 국민들을 '땀 흘리며 살아가는 상태'로 해방(?????????)시키면서 이 일화가 끝이 난다.  


… 국민들이 놀고먹기만 하는데도 나라가 망하지 않고 돌아갈 수 있는 상태로 만들어놨다는 것은 보통의 통치력으로는 부족한 일이다. 엄청난 기술개발과 산업 자동화가 필요했을 것이며, 사회주의적인 강도 높은 재분배 역시 성공적으로 수행했을 것이다. 거의 모든 나라들이 동경하지만 도달하지 못했던 이 상태를 여왕은 도달시켰던 것이고, 여왕의 나라는 말 그대로 지상 천국이 되었다.


물론 (그럴 필요가 없어졌음에도) 애써 '땀 흘리는 삶'을 포기하지 못한 병X들을 총칼로 탄압하려 했다는 부분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주인공 일행이 여왕이 이룩한 국가 시스템 자체를 해체시킨 것 역시 과연 잘했다고 할 수 있을까? 로봇들 다 때려 부수고 "놀고먹어도 돌아가던 나라"에서 다시금 "땀 흘려 일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나라"로 되돌려 놓은 게 잘한 거라고??


어쨌든 이 일화는 주인공 일행 병X들이 "사아람은 모름지기 힘들고 어렵게 땀 흘리며 살아가야 하는 법이여~"하면서 틀틀거리며 종결된다.   




'먼 나라 이웃나라'에는 공산주의 국가의 놀라운 비효율을 비꼬는 인상적인 일화가 하나 나온다. 공산국가의 어떤 공장이 있는데, 이 공장은 생산 할당량을 다 채워서 더 이상 노동자들에게 시켜먹을 일이 없었다. 그러나 "모든 노동자는 열심히 일 해야 하며, 그 대가로 배급을 받는 것"이라는 당의 준칙을 따르려면 일이 없어도 무언가 일을 만들어해야만, 억지로라도 땀을 흘려야만 했다.


결국 공장에선 노동자들에게 생산품에 대한 조립과 해체를 반복할 것을 요구한다. 노동자들은 아~~ 무런 의미도 없이 멀쩡한 생산품에 대해서 붙이고 뜯고를 반복하였고 결국 '하루 8시간 땀 흘림'이라는 당의 요구를 충족시킨 뒤 배급을 받아 간다. 


이것이 바로 '(게으름이라는 궁극의 상태로 나아가기 위한) 효율' 그 자체가 아닌, 땀 흘리고 고통받는 힘겨운 삶 그 자체에 대해 과도한 의미를 부여할 때 나타나는 현상들이다. 

'땀 흘리고 고통받는 힘겨운 삶'이라는 테마 자체가 너무나 숭고해지다 보니 땀 흘릴 필요가 없는데도 땀을 흘릴 구실을 억지로라도 만들어내야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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